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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인 5월이 가고, 내 고향 청포도가 익어가는 6월이 왔습니다.
 5월은 가족과 관계가 있는 날이 유난히 많은 달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5월을 이제야 마음 편히 돌아볼 수 있어 한 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어린이날은 무사통과하고요, 어버이날에는 딸이 휴대폰으로 케이크를 보내 주었고, 군복무 중인 아들은 5박 6일간의 포상휴가를 왔습니다. 어버이날 아침, 출근을 한다고 자는 아들을 깨우니 정신이 없는 와중에 "잠깐 기다려"라고 하더니 책상에서 카네이션 두 송이를 아빠와 엄마에게 달아 주었습니다. 안사람은 아들이 꽃을 달아주자 인증샷을 찍었지만, 저는 괜히 부끄러워 "퇴근해서 달게"하고 카네이션을 두고 출근했습니다.
 

 출근을 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아들이 달아준 카네이션이 부끄러웠을까요? 물론 전혀 생각 밖이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저 역시 어머니가 계시는데 전화만 드리고 꽃은 달아주지 못했습니다. '형님과 조카들이 달아 주겠지'라고 생각만 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아직은 카네이션을 달 나이가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세 번째는 '내가 과연 좋은 아버지일까'하는 그 질문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세 번째 인 것 같습니다. 
 

 옛날 책이나, 옛 어른들의 말씀을 공부해 보면 효를 행하기란 쉽고도 어려운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효는 사람이 동물과 다름을 알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DNA입니다.
 한 번 볼까요. 사람과 동물도 자식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서 지극정성으로 키웁니다.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동물은 그렇게 키워준 부모를 잊어버리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늙으신 부모님께 그동안 자신이 받은 사랑을 그대로 돌려주려고 합니다.
 물론 돌려주는 자식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식도 있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돌려주지 못하면 동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바로 효의 실천 여부입니다.
 

 저는 최근에 좋은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그 책은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인 『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지음)』입니다. 한 대목을 볼까요.
 '이달에도 스무 날이 다 되어 가는 어제 오후에야 겨우 며칠 말미를 얻어 집에 올 수 있었다. 아버님께 퇴궐 인사를 드리고서는 바로 나의 작은 서재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건만 등촉이 방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책 속에 묻혀 사느라 늘 침침한 내 눈을 염려하는 아들의 마음이 먼저 다녀간 것이리라.'
 

 이 글을 읽으면서 알 수 있는 것이 효는 반드시 대물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부모님에게 먼저 효도를 하면 자식들도 그것을 보고 그렇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일 경우에도 자식들은 그렇게 행동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효는 내 자신이 부모님과 어른들께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덕무가 부모님께 효도를 하니 그의 아들 이광규와 할아버지의 병석을 지킨 어린 손자 이규경도 효를 몸소 실천했습니다.
 

 필자에게는 올해 팔십 한 살이 되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어르신들의 건강은 해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지난해 부터는 발걸음이 무거워져 걸으시면 힘들어 하십니다. 어머니의 발걸음이 무거워지면 질수록 저는 더 초조해집니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조금이나마 걸을 수 있을 때 더 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은데 그것이 어려울까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번 5월 달에 태화강에서 펼쳐진 봄꽃대향연을 어머니께 보여 드리기 위해 반가를 내었습니다. 어머니의 집 앞에 경로당이 있어 친구 두 분과 함께 꽃을 보려갔습니다. 세 분 다 걷는 것이 힘들어 아름다운 꽃들은 조금만 보고 의자에 앉아서 꽃들을 구경했습니다. 물론 당초 계획은 대공원의 장미꽃도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만 힘이 들어 장미꽃은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경로당에 다시 모셔다 드리고 나오려니 섭섭해서 아구찜과 막걸리를 배달해 드리고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를 하며 급히 돌아서 나오니 제 등 뒤로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제 보니 저 아들이 작년에 오리고기를 사준 아들이네"란 말에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키는 좀 작지만 참 ……"
 

 그 뒤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팔순생신 때 경로당에 나오시는 분들께 점심을 대접한 이야기에 어머니가 대답을 하셨는데 돌아오는 길 내내 '키는 좀 작은 아들이 어떤지' 그 뒷이야기가 내내 궁금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님께 물어볼 수도 없고.
 다만 제 바람은 어머니가 건강한 모습으로 내년 봄에도 더 아름다운 봄꽃놀이를 하러 가는 겁니다.
 듣지못했던 뒷이야기는 그때 친구 분들에게 이야기 할 때 들어 보렵니다. 당신의 키 작은 아들이 어떤 아들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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