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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아리랑길'은 도심과 근교에 산재한 역사문화 유적지를 하나로 연결한 트레킹코스로 문화체험과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세 코스 총연장 16km로 지난해에 조성했다.
걷는 코스마다 스토리를 담은 해설 안내판을 설치해 역사문화 체험을 하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자연과 생태문화자원을 함께 즐길 수 있고, 강과  숲, 산이 어우러진 길 위에서
밀양 이야기와 문화유적지를 만나볼 수 있는 여정이다. 
 

   
밀양아리랑길 3코스의 시작점인 용두목.

#밀양아리랑길의 백미, 3코스
밀양아리랑길 1코스는 밀양 관아에서 시작하여 오리배선착장, 조각공원, 삼문송림, 야외공연장, 밀양교, 아랑각, 무봉사, 박시춘생가, 천진궁에서 영남루로 이어지는 도심형 구간으로 밀양의 대표적인 역사와 문화지역을 아울러 볼 수 있다. 6.2km로 약 2시간이 소요된다.
 밀양아리랑길 2코스는 밀양향교에서 시작하여 손씨 고가, 박물관, 봉수대, 추화산성을 둘러 충혼탑, 대공원을 둘러보는 산지형 코스이다.
 이 구간은 기존 등산객의 왕래가 잦으며 인근 도시에서도 쉽게 찾아와 짧은 시간에 밀양의 역사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4.2km로 약 2시간이 소요된다.


도심·근교 잇는 총 16㎞ 구간 트레킹 코스
코스마다 역사문화 스토리 담은 해설 안내
강과 산 어우러져 자연의 숨결도 고스란히

 

 밀양아리랑길 3코스는 용두목에서 시작하여 금시당 수변길, 금시당, 월연정, 추화산성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밀양강을 따라 유유자적 걸으며 밀양강의 풍치를 느끼면서 소나무 숲, 그리고 수려한 풍광 속에 정원을 조영했던 옛 선비들의 멋과 기운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신비로운 길이다. 5.6km로 약 3시간이 소요된다.
 밀양의 풍치를 즐길 수 있는 밀양아리랑 3길인 금시당수변 시작 길에 있는 용두보에서 바위와 어우러진 수려한 강 풍광과 맞닥뜨렸다. 굴곡을 그리며 좁다랗게 옛길이 이어진다. 밭을 일구었다는 석축 흔적들도 곳곳에 보인다. 
 

   
금시당 수변길.

 아카시아와 하얀 은사시나무가 숲을 이루고 시누대가 많이 자라 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가야와 신라의 접경 지역이었던 밀양은 10여 개의 산성이 있을 정도로 전투가 잦았는데 화살을 만들던 시누대가 많은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시야가 트여오고 적송들이 선비의 기개와도 같이 등장하더니 금시당이 나타난다. 금시당 선생이 심었다는 460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백송, 매화, 단풍나무의 조경이 정자와 어우러져 고궁에 든 느낌이다.
 

 금시당은 조선조 명종 때 좌승지를 지낸 금시당 이광진 선생이 학문을 닦고 수양을 하기 위해 1566년 창건한 별업이다. 밀양의 여주 이씨가 있기까지 공이 컸던 백곡 이지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는 백곡재가 정원 너머 바라보인다.
 두 건물은 양식과 규모는 같으나 방과 마루를 서로 반대로 배치해서 변화를 준 점이 눈에 띈다. 금시당 선생이 말년에 병환으로 거동을 못하게 됐을 때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난 이경홍 선생이 아버지를 업고 밀양의 명소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조선시대 전통 정원의 원형, 월연정
월연정은 한림학사를 지낸 월연 이태 선생이 기묘사화를 예견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1520년에 세운 정사(亭舍)이다. 담양의 소쇄원과 비교되는 월연정은 조선시대 전기의 대표적인 전통 정원의 하나로 바위에 붙어 자란 백송과 오죽, 진시와 같은 희귀한 조경수들로 기품이 서려 있다.
 절벽 바위에 돌을 쌓아 지대를 높여 사방 돌아가며 마루를 놓아 월연대를 세우고, 계곡을 사이에 두고 건너다보이는 곳에는 쌍경당 영역을 두었다. 정자들을 받치고 있는 석축의 오묘한 미에 심취한 후에야 월연정 일원을 제대로 보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물과 달이 함께 맑은 것이 마치 거울 같다는 쌍경당에 앉아본다.
 

   
위에서 내려다본 월연정.

 담을 터고 북천과 동천이 엉겨 만나 이루는 호수를 정원으로 끌어놓아 가슴까지 트여온다. 쌍경당의 멋은 무엇보다 강 언덕에 바위가 산재한 지형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지었다는 점일 것이다. 작은 돌을 쌓아 마당과 정원을 내고 돌계단을 두어 오르내리며 걷는 멋을 살려놓았다.
 지킴이처럼 대문 옆에 박힌 바위에 정감이 가서 만져보면 미소가 따라 인다. 월연대와 쌍경당을 잇는 쌍청교에 서 본다. 달빛에 비친 계곡물을 맞이하는 곳이라는 영월간과 족욕을 즐기던 바위 탁족암을 찾아보고, 낚싯줄 드리우는 수조대 자리를 짐작해보며 월연 선생의 일상에 멋스러움을 보물찾기하듯 찾아보기도 한다.
 
#추화산성 오르면 밀양시내 한눈에
월연정에서 25분간 산으로 올라가니 추화산성이다.
 1,430m 둘레의 추화산성은 해발 약 243m 추화산의 8부 능선쯤에 삼국시대 초기에 축조된 성으로 경남 기념물 제94호다. 재현해놓은 산성에 올라보았다.
 

   
추화산성을 따라 걷는 길.

 '아리랑' 배경의 설을 주장하기도 하는 '아랑'전설의 영남루 아동산이 밀양강 위에 떠있는 듯이 앉아 있다. 엉기며 흐르는 밀양강이 만들어내는 밀양시내 '물돌이동'도 제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 보인다.
 잘 보존되어온 석축 흔적들을 살피면서 시내를 조망할 수 있음에 관점을 두고 우측으로 방향을 잡는다. 삼사백 미터쯤 걸어 북으로 꺾어지는 지점에 들어서면 길 가운데 일렬로 박혀있는 성의 흔적이 나온다. 길 아래 내려가 단단하게 쌓아올린 돌을 어루만져보고 대략 성의 규모를 짐작해 보기도 한다.
 

  30분 정도 성의 윤곽을 따라 한 바퀴 돌며 솔향과 흙내음을 맡으며 걸을 수 있는 이런 산성길이, 밀양아리랑 길이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쁨이 되어 걸었는지….
 봉수대가 보이는 오르막길에서 왼쪽 시누대밭이 끝나는 곳에 우물이 있다. 옛우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삼국시대 어디쯤으로 점점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봉수대까지 구경하고 밀양대공원 표지판을 따라 내려오는 오솔길도 아주 쾌적하다.
 밀양시립박물관은 경남 도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공립박물관이다.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밀양 이야기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음에 걸음은 다시 가벼워진다. 글·사진=이수천기자 lsc@

   
추화산성에서 내려다본 밀양시가지.

[놓쳐선 안 될 주변명소]

#밀양연극촌·퇴로 고가마을
밀양연극촌은 폐교된 월산 초등학교 16,104㎡에 4,377㎡의 건물 규모로 조성된 종합 예술촌으로 1999년 10월 30일 개촌했다.
 이곳에서는 국내 최초·최대의 성벽 극장과 숲의 극장 등 야외 공연장과 우리 동네극장 등 실내 공연장이 함께 조성된 종합예술의 현장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밀양시내에서 5km 정도 떨어진 한적한 농촌마을인 부북면 가산리는 7월 24일부터 8월 4일까지 '연극, 전통과 놀다'라는 슬로건으로 제13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열린다. 밀양연극촌에서 한 편의 연극을 본 후 수려한 연꽃단지를 돌아보고, 가산마을 전망대에 올라 충경을 감상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밀양연극촌과 연접한 퇴로마을은 화악산 아래 자리 잡은 작은 마을로 여주 이씨 집성촌인 이씨 고가 마을이다. 저녁에는 고가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또한, 퇴로고가 마을 옆의 전통문화관에서는 김장, 된장 등 다양한 전통음식 만들기 체험 행사와 디딜방아, 널뛰기, 윷놀이, 투호 놀이 전통놀이 체험장이 함께 운영되어 농촌의 전통문화와 고가를 함께 체험할 수 있다.
 
#얼음골
얼음골 소설 '허준' 에서 허준이 스승 유의태를 해부한 밀양 얼음골. 한여름에도 영하에 가까운 온도를 유지하는 이 신비로운 골짜기는 천황산 북쪽 계곡에 자리한다.
 계곡에는 돌무더기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쌓여있는데 여름이면 그 틈새로 냉기가 올라온다.
 얼음골 안쪽에는 가마불협곡과 폭포가 자리한다. 태고부터 흘러내린 물이 암반을 깎은 형태가 가마솥을 걸어 놓은 아궁이 같다하여 가마불이라 부른다. 가는 물줄기가 굽어치는 것이 협곡, 질펀한 물줄기가 수직 하강하는 것이 폭포다. 음양의 조화를 이루듯 협곡과 폭포가 나란한 모습이 이색적이다.
 
#영남루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3대 명루로 손꼽히는 영남루.
 영남루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건축물로 보물 제147호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영남루는 팔작지붕으로 건물 기둥이 높고 웅대한가 하면, 화려하고 다양한 단청과 문양조각은 마치 회화 작품을 연상하게 한다.
 

 조선시대 밀양군 객사의 부속 건물이었던 영남루는 원래 그 자리에 신라시대에 세운 동명의 사찰과 작은 종각이 있었다. 고려시대 절은 없어지고 홀로 남은 누각을 1365년 공민왕이 새로지은 후 절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불렀다.
 조선시대 들어와 세조 때 중수하면서 규모를 크게 넓혔으며 선조 때 소실된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었고 마지막으로 헌종이 불에 탄 것을 다시 세워 지금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밀양읍성을 밟아보게 되는데 읍성 정상인 무봉대에 서보면 읍성으로써 중요한 기능을 감당했을 조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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