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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울산에서는 '그림으로 쓴 역사책, 반구대암각화'라는 이름으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서울에서 열릴 때만 해도 이름이 '국보 반구대암각화, 물속에 잠깁니다' 였지만 울산시민들의 반감을 의식해 문화재청이 전시회의 명칭을 바꿨다. 명칭을 바꾼 것을 두고 문화재청이 그동안 가진 울산에 대한 왜곡된 시각의 수정이라고 섣불리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울산과 울산시민, 그리고 울산의 물문제에 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는 환영하고 싶다. 적어도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하려는 노력이나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의 깊이는 인정해야 할 대목이다. 반구대암각화를 문제의 중심에 두고 보존문제를 생각한다면 보존해법은 예상외로 쉽다. 그 출발이 국무총리실에서 제시한 카이네틱 댐(Kinetic Dam) 설치방안의 수용이라고 믿고 싶다.

 반구대암각화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본격화 된 것은 불과 10년전이다. 발견된지 40년이 넘는 반구대암각화지만 그동안 우리는 그 가치를 모른채 살아왔다. 암각화를 세상에 알리고 그 가치에 주목한 일부 학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도 반구대암각화는 자맥질을 반복한채 우리 문화유산의 사생아 취급을 받아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암각화의 묵은 이끼를 걷어내고 물 속에서 울음을 토해내는 고래를 건져올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울산시민들이었다. 슈미트 해머라는 무시무시한 도구로 암각화를 찍어내고 탁본을 명분으로 무수히 표면을 두들긴 연구자들의 이기심에 옐로카드를 꺼내 든 것도 울산시민이었다.

 문제는 이미 건설된 사연댐이었다. 물을 빼면 암각화가 살지만 시민들의 식수문제가 난감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생태제방이었고 물길 변경이나 터널식 구조변경이었다. 고민의 결과였지만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 모욕적인 언사도 들어야 했다. 대규모 토목공사 운운하며 사실을 왜곡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를 감수하면서 문제의 본질에 집중했던 것은 역시 반구대암각화가 가진 본질적인 가치 때문이었다.

 우리가 지금부터 집중해야 할 부분은 반구대암각화의 온전한 보존과 그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반구대암각화는 무엇보다 인류의 뿌리를 웅변하는 증거물이다. 실증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변변한 고대역사서 부재를 거론하며 이 땅의 역사를 단군조선 이후로 축소한 일본 황실의 어용학자들이 죽어도 부정할 수 없는 생생한 민족의 이동경로가 반구대 바위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지난 1971년 반구대암각화 발견 이후 많은 학자들이 암각화의 역사성과 상징성, 예술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에 대해 연구해 왔다. 학자들의 연구성과는 해가 거듭할수록 반구대암각화의 놀라운 가치를 돋보이게 하고 있지만 정작 국보 지정만 하고 뒷짐을 진 문화재청은 적극성이 없었다. 문화재청은 이제부터라도 뼈를 깎는 자세로 반구대암각화의 보존과 그 가치를 제대로 세상에 알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해서는 안 된다. 벌써부터 토목공사와 관련한 찬반론이 일고 있고 공법의 타당성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이번 절충안은 어디까지나 임시방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반구대암각화를 제대로 알려 인류사의 독보적인 기록물을 전 인류가 공유하고 보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반구대암각화를 기점으로 한 인류사의 확장이다.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함께 문화재 당국은 반구대암각화를 중심에 두고 한민족의 이동경로와 고대 인류사의 재구성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 단초는 무수히 많다. 알타이 지방을 기점으로 시베리아와 극동에 이르는 수렵문화의 유사성을 연구해야 한다. 그 하나의 단초가 시베리아 우르쿠츠크 인근에는 시스키스키 암각화다. 반구대암각화만큼 시련과 고초를 겪은 이 암각화는 반구대암각화를 새긴 사람들의 뿌리를 이야기해 준다.

 사실 이 암각화 이외에도 바이칼 인근 지역은 우리 민족과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한민족이 시베리아 바이칼 지역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시베리아에 들어와 샤먼(무당)에 대한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우리 민족과의 유사성을 찾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시스키스키 암각화는 불행하게도  1948년에 완성된 앙가라강 댐으로 인해 대부분 수몰됐다. 사슴과 사냥술을 묘사한 이 암각화는 반구대암각화의 원형이라 해도 될 만큼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시베리아-예니세이강 중류, 앙가라강-레나강 상류 지역부터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연해주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고대인류의 문화적 유전인자를 제대로 규명해 내는 일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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