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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대 불가사의 건축물
누군가 캄보디아를 '조상의 음덕으로 사는 나라'라고 했다. 1,000년 전 대제국을 건설했던 그들의 조상이 남긴 유산은 최빈국 캄보디아 경제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앙코르와트의 도시 캄보디아 씨엠립은 우리의 천년고도 경주와 닮았다. 발길 닿는 곳 마다 옛 제국의 영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 일명 천상의 여신으로 불리우며 앙코르와트 곳곳에 부조되어 있는 압사라. 압사라는 궁중 무희로 추정된다.


전쟁 등으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훼손
사원 곳곳 부조 정교함엔 감탄사 절로
검증 안된 복원에 부작용 생겨 아쉬워

 

 

우리나라의 택시 격인 '툭툭'을 타고 도착한 앙코르와트 사원 건물은 천년을 산 거북 등의 화석처럼 거무튀튀하다.

 앙코르와트는 11세기 후반 앙코르 왕조의 수리야 바르만 2세 때 지었다. 오랫동안 밀림에 뒤덮인 채 세상에 알려지지 않던 이 거대한 유적을 1860년 식물학자 앙리 무오가 발견했다. 그 후 세상에 알려져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파라오 등과 함께 세상에 가장 신비로운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해자 안쪽 한 변이 4㎞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과 서쪽으로 넓은 수로가 있다. 독특한 점은 서쪽 면이 정면으로 자리한 것이다. 앙코르와트 외곽을 둘러싼 해자는 바다를, 성벽은 히말라야 산맥을, 그리고 높이 솟은 사원은 수미산을 상징한다.

 앙코르와트는 지금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다. 스스로 깨지고 무너진 게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망가졌다. 인도차이나 반도가 독립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몰아들면서 사원은 인위적으로 폐쇄되어 베트남군과 크메르루지군 간의 도시 전 현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무기에 의해 파손되거나 점령군의 약탈 행위로 사라졌거나 손상된 유적이 전체의 70%를 차지했고 대부분 복구 불가능 상태가 되었다.

 앙코르와트는 건축학도나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가 봐야 할 고대 건축의 학습장이기도 하다.
 사원의 주요 건축물들은 웅대한 방추형 중앙 사당탑과 탑의 동서남북에 십자형으로 뻗은 익랑, 그것을 둘러싼 3중의 회랑과 회랑의 네 모서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의 중심이며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은 사람들이 일일이 쌓은 돌로 된 산인데 높이 59m의 중앙사당탑의 탑 끝에서 3중으로 둘러싼 회랑의 사각탑 끝은 선으로 연결해보면 사각추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앙코르와트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들은 부조들이다. 그 옛날 누구의 손에 의해 이런 작품들이 탄생했는지, 보고 또 보아도 터져 나오는 것은 감탄사뿐이다. 놀라움의 이유는 그 정교함 때문이다. 얼굴, 표정은 물론, 눈동자가 말하고 있는 욕망, 안타까움, 체념, 기쁨 등이 생생하게 여행자의 마음에 전해진다.

 1층 회랑 벽면에 동서남북 각 면에 새겨진 부조가 압권이다. 입구에 해당하는 서쪽 갤러리 코너 두 곳에 힌두설화와 업적을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모두 11개의 벽화에는 당시 힌두교인 으로서의 크메르 백성들이 지키고 배워야 할 모든 덕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조는 사암의 벽면을 양각으로 파서 새겼는데, 도저히 수천 년 전 돌을 파서 세공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윤곽이나 형태가 매끄럽다. 조각이라기보다는 한편의 그림을 마주하는 것처럼.
 하지만 부조는 훼손됐다. 수많은 압사라(여인)들의 몸은 여행객들의 손에 의해 더럽혀졌고, 종교적인 이유로 건물 내 대부분의 조각 신상들의 목은 잘려나갔다. 

 복원작업이 이뤄진 도서관이라 불리는 건물은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듯 보였다. 옛 구조물의 석재와 다른 생경한 적재로 복원한 탓에 조화를 잃었다. 어떤 곳은 철근을 넣은 콘크리트로 복원하는 바람에 복원된 벽면이 갈라져 녹슨 철근이 보이기도 했다. 유적물 복원을 검증되지 않은 현재의 기술로 시행한 대가인 것이다. 반구대암각화의 보존에도 시사 하는 바가 컸다.

 앙코르와트 주변에는 야소바르만의 1세의 프놈바켕, 자야바르만 7세의 바이욘사원과 따프롬사원 등 다른 왕과 관련된 사원들도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사원들을 앙코르와트 입장권만 갖고 있으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 효심 가득한 따 프롬 사원

   
▲ 앙코르와트의 정점인 중앙 사당탑의 웅장한 모습. 아래는 거대한 석재 수조다. 이 사당탑 주위 4모서리에 탑이 있다.

앙코르 와트에서 약 1㎞ 떨어져 있는 따 프롬 사원을 만나기 위해서는 정글 같은 울창한 나무숲을 한참 달려야 한다. 처음 만나는 따 프롬 사원은 폐허 그 자체다. 하늘을 찌를 듯 한 스펑나무가 육중한 무게로 사원 지붕을 억누르고, 한편으로는 기둥이 되어 사원을 지탱하고 있었다. 거대한 거미줄 같은 뿌리는 벽을 파고들어 사원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따 프롬은 안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툼 레이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따 프롬 사원은 지금 복원이 한창이어서 내부가 혼란스러웠다.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성벽과 나무들이 연출하는 신비로운 매력들이 사라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많은 이들이 이 나무들의 숨통을 끊는 순간 따 프롬의 생명도 다할 것이라 경고 한다. 지난 천년 유적 곳곳을 파고든 나무는 사원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지탱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펑나무는 본래 인도네시아에서 자란 나무다. 새가 사원을 지나가면서 스펑나무 씨앗이 섞인 배설물을 뿌리고, 이곳에서 자라게 됐다는 것이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다. 뿌리가 습기를 찾아가는 것이 특징인 이 나무가 물기를 머금고 있는 사암을 파고든다는 것이 학자들의 말이다. 스펑나무를 휘감고 있는 것은 나무를 먹고 사는 이엥나무다. 그래서 스펑나무가 죽으면 이엥나무도 함께 죽고, 사원도 천천히 허물어져 간다는 것이다.

 반면 앙코르와트는 스펑나무로 인한 훼손은 전혀 없다. 학자들은 앙코르와트는 최고품질의 석재를 사용해 새들이 씨앗을 옮겨도 미끄러져 내릴 뿐 싹을 틔우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품질이 떨어진 석재를 사용한 다른 사원들은 대부분 스펑나무로 인한 훼손을 피하지 못했다.
 따 프롬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헌정한 사원이다. 한때는 사원 중앙탑에 500㎏에 달하는 금과 35개의 다이아몬드, 4만여 개의 진주 등이 장식돼 있었다고 한다. 약탈로 모두 사라졌지만.

   
▲ 따 프롬 사원의 석벽을 삼킬듯한 스펑나무의 뿌리.

 프롬 사원에는 '통곡의 방'이 있다. 생전에 효도를 하지 못한 자야바르만 7세가 가슴을 치며 한을 풀었다는 곳이다. 통곡의 방 한가운데서 가슴을 치면 '쿵∼'하는 소리가 무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일종의 공명현상이란다. 하지만, 그저 내뱉는 소리에는 어떠한 떨림도 없다.

 따 프롬 사원을 나서는 길, 귀에 익은 선율이 들린다. 바로 '아리랑'이다. 캄보디아 곳곳에 뿌려진 지뢰 때문에 노동력을 상실한 이들이 모여 구걸을 위해 연주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시절 정신대로 끌려왔다가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캄보디아 오지에 정착한 여인이 부족민들에게 가르쳐 주었고, 이것이 알려지면서 한국을 상징하는 곡이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신들의 고향, 캄보디아 씨엠립에 한국의 정령들도 슬픈 사연을 안고 그렇게 살아있었다.
 글·사진=강정원기자 mikang@

 

 

   
▲ 중앙 사당탑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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