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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옥주 시인

여든 할미가 노망들었다고 쑥덕거리쌌지만, 내가 해마다 발톱에 봉숭아물 들이는 거는 다 이유가 있는 기라, 열일곱에 시집와 가꼬, 그 다음해 내가 살던 마실이 물에 안 잠뵸나, 아직까정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거는, 시집도 안 간 처자들 맨치로 돌담마다 수줍게 피어나던 봉숭아꽃인 기라, 고때 가시나들 때깔 좋은 꽃잎 똑똑 따서 우물가에 앉아가, 돌빼이로 곱기 찧고 손톱발톱 봉숭아 이파리로 한나절을 싸맸다 아이가, 그라먼 고 아릿하고 가슴 콩닥콩닥 뛰는 꽃내가 골목을 지나 동구밖까정 등천하는 기라, 멀리 강 건너 마실 총각들 설레가 밤잠을 설치고, 고향이라 카는 그기 사람 사는 근본인데, 돌담마다 애기재기 피던 봉숭아꽃하고 깔깔 웃어쌌튼 동무들은 다 어데 간 긴지, 이 세상 어느 구석에 있기나 한 긴지, 이래 꽃물 들이고 나문 내사 마, 발톱마다 환하이 꽃등을 키고 밤마다 수십 질 물속 마실 댕겨오는 기라, 고향 가는 길 죽을 때까정 안 이자뿔라고

■ 할머니는 여든이 넘어서도 발톱에 봉숭아꽃물을 들인다. 밤마다 주홍빛 봉숭아꽃등을 켜고 수몰된 고향마을에 다녀오는 그녀. 굴곡진 발등이 꽃불을 밝히면 앵두나무와 우물이 어깨동무하던 뜰이 환하다. 눈을 감으면 더욱 생생해지는 그 길에서 꽃등을 앞세운 그녀! 오늘밤도 휘적휘적 젖은 바람을 끌고 물속 깊은 집으로 간다. ※약력-부경대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2008년 '서정시학'등단. 시집 <오후의 지퍼들>. <포엠포엠> 편집위원. beaokj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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