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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7월 부산시가 79년만에 개방한 경남 양산의 법기수원지.
어릴적 투명하고 반짝이는 비눗방울 하나에 정신없이 따라다니던 기억이 있다. 오색빛깔을 띠며 하늘로 날아가는 비눗방울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계속 이 모습을 보고자 하염없이 불어댔다.
 그런데 비눗방울은 한순간에 '팡'하고 사라져 버렸다. 비눗물이 바닥났을 때는 더이상 영롱한 방울들을 볼 수 없었다. 터질듯 말듯한 비눗방울은 그렇게 하늘위로 날아가 추억이 됐다. 
 

 그 곳과 처음 마주했을 때는 위태로운 비눗방울이 떠올랐다. 분명히 아름답지만 금방 사라져버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비눗방울과 닮아 있었다.
 지난 2011년 7월 부산시가 79년만에 개방한 경남 양산의 법기수원지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혹여나 이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리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일제 강점기 때 건설돼 2011년부터 부분 개방
상수원 보호구역 댐·수림지 등 2만㎡만 일단 공개
3.4㎞ 둘레길, 아직은 걸어보지 못하는 금단의 땅으로 남아

 

 그만큼 사람이 손 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연의 양기를 받아 곧게 뻗은 편백나무가 사람을 반겼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했다. 수원지를 알리는 도입부에서 바라봤을뿐인데 자연의 아름다움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개방된 지 약 2년이 지난 후여서 그런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발걸음이 잇따랐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았던 관광객들 탓에 또 다시 금단된 곳이 될까 위태로움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담양 메타세콰이어길 버금가는 편백나무 숲길
그러나 이런 걱정은 수원지에 들어서자마자 잠시 사라졌다. 여름을 맞아 초록빛으로 물든 수원지의 경치 때문이었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새벽녘의 나무들처럼 수원지 속 나무들은 반짝여 눈부셨다. 자연이 주는 설렘에 마음은 두둥실 떠올랐다.
 수원지 입구로 들어서는 편백나무 숲 길은 마치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을 연상케 했다. 우러러 보기에도 높은 편백나무와 히말라야시더(개잎갈나무)를 사이에 두고 걷는 길. 그 곳에서의 발걸음은 정말 가벼웠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은 뒤 위를 바라보면 바람과 한 몸이 된 피톤치드 향이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다독여줬다. 머리는 맑아졌고 기분도 날아갈 것 같았다. 그야말로 '치유의 길'이다.
 

   
수원지로 들어가는 하늘계단. 총 124개의 계단이 있어 124계단으로도 불린다.

#수원지 입구 124계단과 댐마루 산책로
숲길을 지나면 깔끔하고 예쁜 화장실을 발견할 수 있다. 개방하기 전에는 관사로 쓰였지만 개방하면서 화장실로 개조했다.
 편의시설이라고는 작은 화장실과 식수대가 전부인 곳이지만 자연이 주는 더 큰 선물을 받았기에 더 바랄 것도 없었다.
 화장실 맞은편에는 본격적으로 수원지에 들어갈 수 있는 하늘계단이 있다. 총 124개의 계단이 있어 124계단으로도 불린다. 계단 양쪽으로 하늘하늘 흔들리는 야생화를 두 눈에 담고 여치의 울음소리를 귀에 넣으며 하늘로 올랐다.
 

 계단 끝에서 환영인사라도 하는 양  우직한 반송(盤松)이 사람을 반겼다. 이 반송을 시작으로 댐마루 산책로가 펼쳐진다. 댐마루에는 우아한 모습이 일품인 130년된 반송 7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러갈래 줄기로 갈라져 펼친 부채 모양을 하고 있는 반송 아래에서 한 숨 쉬어가기로 했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법기수원지의 고요한 풍경이 마음을 더욱 차분하게 만든다.
 우측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취수탑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이 관광지가 아닌 수원지임을 깨닫게 해 주는 상징이다.
 숲에 둘러싸여 우두커니 서 있는 취수탑을 보며 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이 오래오래 보존 돼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댐마루 산책로. 길을 따라 130년된 반송 7그루가 심어져 있어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부산시, 지난해 둘레길 개방 보류
법기수원지는 1932년 완공 후부터 2011년까지 단 한번도 개방되지 않았다. 현재 개방된 곳은 수원지 전체 680만㎡ 중 댐과 수림지 2만㎡로 극히 일부다.
 우측 댐 아래로 보이는 석조 건축구조물은 취수터널인데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가 배여있다.
 출입구 상부에는 일제강점기 제3대, 제5대 조선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가 쓴 한문 '원전윤군생'이 돌에 새겨져 있다. 사이토 마코토는 독립운동가인 조선 총독을 지낸 이로서 우리 민족문화 말살정책을 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부산시는 지난해 7월 법기수원지 2단계 개방을 하기로 했지만 보류했다. 
 2차 개방에서는 수원지를 따라 도는 둘레길 약 3.4km가 열렸어야 했지만 상수원 보호 차원에서 개방을 연기하기로 했다.
 개방 보류에 따른 주민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기수원지는 150만t의 저수능력을 갖춰 하루 3,000~4,000t의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다. 
 법기수원지는 물 공급을 위한 곳이다. 2차 개방이 됐다면 많은 관광객이 더 좋은 풍광을 즐길 수 있겠지만 먼 미래를 내다봤을 때 이 쯤에서 자연을 옥죄는 일은 멈춰야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취수탑.

#수원지 내에선 물 외 취식 금지
청정자연을 머금고 있는 법기수원지를 방문하기 전에는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곳에서는 물 이외에 다른 음식의 취식을 금하고 있다. 시민들의 휴식을 위해 개방했지만 이 곳은 엄연히 우리에게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는 상수원이기 때문이다.
 부산 상수도사업본부는 시민의식이 높아져 상수원 보호 명목으로 출입을 막을 필요성이 낮아졌다는 판단으로 개방을 결정했다.
 

 높아진 시민의식에 기대해 이 곳에는 쓰레기통이 하나도 없다. 빈 손으로 왔다가 맑은 기운만 채우고 가면 된다.
 개방 이후 수원지에서 수거되는 쓰레기 양이 많이 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해가 갈 수록 높아지는 시민의식을 기대해보기로 한다.
 법기수원지 개방은 동계 11월부터 3월까지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하지만 하계 4월부터 10월까지는 한 시간 늘려 오후 6시까지 개방한다. 글·사진=김은혜기자 ryusor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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