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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보자'라는 말은 무관심보다 무서운 관심이다.
 휴일 아침에 느지막이 눈을 뜬 나는 라디오를 켰다. 즐겨듣는 음악 프로를 하는 시간이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흐르더니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가 끝났다. 방금 끝난 불꽃놀이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차분한 목소리의 진행자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름에 듣는 '눈구덩이 이야기'였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아침이었다. 눈 내리는 날이면 동네 아이들과 강아지가 제일 좋아한다. 친구와 나는 일찌감치 눈싸움을 하려고 집을 나왔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우리는 강아지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헉! 한순간 친구와 나는 눈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어른 키만큼이나 깊은 구덩이는 밤새 눈을 받아먹고 감쪽같이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놀라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른 아침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구덩이를 빠져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졌다. 그 와중에 친구가 먼저 구덩이에서 탈출을 했다.

 나는 구덩이 속에서 친구를 올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당연히 잡아 줄 것이라고 믿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던 친구는 나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냉정하게 거절을 했다. "싫어, 네 손을 잡아 주다가 다시 구덩이로 빠지면 어떡해. 혼자 올라와 봐. 내가 올라왔으니 너도 분명히 올라올 수 있을 거야"

 화가 나서 친구가 몹시 미웠지만 잡아주지 않겠다는 데 별 도리가 없었다. 오기에 받쳐 낑낑대며 겨우 구덩이를 빠져 나왔다. 씩씩대며 친구를 노려보았지만 그도 미안했던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우리가 빠졌던 구덩이를 눈으로 다시 메우기 시작했다.

 구덩이는 친구와 내가 빠지기 전과 같이 길이 되었다. 우리는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건너편 미끄럼틀 뒤에 꼭꼭 숨었다. 저 멀리서 우리를 부르는 똘이 목소리가 들렸다. '두고 보자.' 우리는 똘이가 구덩이에 빠지는 것을 보기 위해 숨도 잠시 멈추고 기다렸다. 내가 구덩이에 대책 없이 빠졌을 때 얼마나 아찔하고 당황했던가. 올라오려고 얼마나 필사적이었던가. 그걸 뻔히 알면서도 똘이가 빠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조심해, 여긴 구덩이가 있어. 돌아가야 해"
 이렇게 말해야 옳지만 그건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말이다. 알려주지는 못할망정 눈으로 구덩이를 메워가며 나와 똑같이 당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세상 속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난다.
 우리는 무관심보다 무서운 관심 속에 살고 있다. 눈으로 구덩이를 메우는 고약한 심보나 시기와 질투도 사람 사는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함께한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나와 가까운 사람이 잘 나가면 괜스레 밉다. 나와 모든 게 어금버금 비슷할수록 더 그렇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허허거려도 속으로는 두고 보자며 어금니를 지그시 깨문다. 아닌 척해도 나 역시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텔레비전에 자주 얼굴을 비추고 전국을 순회하며 재밌게 강의를 하던 사람이 있었다.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바쁜 만큼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따라왔다. 그녀의 연봉이 얼마며, 한 번 강의하는 데 얼마라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돌고 난 며칠 후 그녀의 논문이 표절이라는 기사가 떴다. 눈 덮인 구덩이에 빠진 것이다. 화려한 불꽃놀이는 왕궁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잘 나갈 때일수록 매사에 조심하지 않으면 이렇게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미끄럼틀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 '두고 보자'라는 말은 무관심보다 더 무서운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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