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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운영.
#작가소개
1971년 서울 출생으로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고려대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수학했다. 2000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소설 <바늘>로 등단했다. 2001년 제9회 대산문학상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이후 꾸준한 창작활동을 펴왔다.


 새로운 여성 미학의 선구란 평가를 받는 천운영의 소설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몸과 욕망의 문제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주로 훼손된 몸을 가진 여성들이며 이들은 육식성과 폭력성으로 대표되는 남성성에 비해 원초적이며 야생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인물들이다.


 천운영은 이러한 주인공들이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소설화해 사회의 문제점을 폭로한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독특한 배경 설정도 특징적이다. 그의 소설엔 독특한 직업이나 지역이 종종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를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치밀한 플롯을 통해 전개해 간다. 간결한 문체와 극단적인 묘사력 역시 그만의 기괴한 분위기를 만드는 장치다.


 2003년 신동엽창작상, 2004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소설집으로 <바늘>(2001), <명랑>(2004), <그녀의 눈물사용법>(2008), <엄마도 아시다시피>(2013)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잘가라 서커스>(2005)를 비롯,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사건을 모티프로 해 화제가 된 <생강>(2011)이 있다.
 
#에피소드
그는 지독할 정도로 취재를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최근 한 일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잘 가라, 서커스'의 조선족 이야기를 쓰기 위해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소설을 쓰는 건 누군가를 관찰하는 거죠. 취재 없이는 인일에 대해 쓸 수 없어요. 화장을 안 하고, 속이지 않고, 아는 척하지 않고 싶어요. 그게 소설에 대한 변함없는 태도예요"


 작가는 오는 7월에는 스페인 말라가로 떠난다. 6개월간 소설은 쓰지 않고 자신을 비워 올 작정이라고 한다. 자신을 비우고 오래 사유하는데서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묵혀서 오래 생각할수록 좋은 이야기가 나와요. 그래서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들이죠. 3년째 쓰고 있는 7년을 연애했던 내 이야기가 장편으로 나올 겁니다"

   
▲ 엄마도 아시다시피.
#최근 인기작
천운영의 새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엔 저도 모르게 자식에게 자신의 모습을 옮기는 엄마와 저도 모르게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는 자식 사이에 놓인 거울이 숨어 있다. 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건 익숙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고통스럽기도 해서 웬만해선 안 하고 싶은 일이다.


 소설집은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애도를 다룬 표제작으로 시작한다. 멀쩡한 아들은 정말 이상한 방식을 택해 어머니를 애도하지만 "어떤 죽음은 절대로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에 모두가 두말 않고 동의할 수 있기 때문에 아들의 희한한 짓이 오히려 더 가슴 아프다.


 엄마를 잃는다는 생각에 허한 마음으로 두 번째 소설 '남은 교육'으로 넘어갈 때 작가는 부모자식 사이를 덮은 사랑과 연민의 이불을 걷어내고 새파랗게 닦은 거울을 독자에게 내민다. 작가는 '엄마', 그 평생 그립고 숭고한 이름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의 이면으로 직진한다.


 거울엔 노여움과 심술이 덕지덕지 앉은 얼굴로 "인정머리 없는 년"을 연발하는 엄마가 있다. 미칠 노릇인 것은 엄마를 비추던 거울로 제 얼굴을 보면 그 심술과 억지가 고스란히 앉아 있다는 것이다.


 여자는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다른 종족이 된다. '엄마니까요'란 한 마디는 모두를 입 다물게 하지만 엄마가 된다고 해서 한 사람이 지니고 있던 어둠과 그늘이 녹아내리는 건 아니다.


 생명은 경이로운 것이고 여자를 엄마로 만들지만, 여자는 엄마이면서 동시에 매일 엎어지고 출렁이는 보통의 인간이다.


 엄마 속을 휘젓던 짐승이 딸의 마음에 건너오고(단편 '감은 눈 뜬 눈') 엄마는 딸이 저지른 끔찍한 사건을 마주한다.


 엄마는 "내가 원해서 낳은 애들이 아냐"라고 말한다('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 아이들도 원해서 태어나는 건 아니다. 각자가 자기 이름을 지우고 엄마와 자식으로 만나 불안하게 흔들리는 자리로 작가는 읽는 이를 강도 높게 밀어붙인다.


 진정한 엄마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이 엄마들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이, 어느새 그 엄마의 얼굴이 제 얼굴에 들어박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긴긴 인생, 서로의 못된 얼굴을 마주보면서 주저앉아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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