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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불마당 제당터에서 바라 본 주전 앞바다. 이 곳을 비롯한 바닷가 제당은 바다를 상징하는 할매신을 달래기 위해 바위가 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곳에 사당을 지어 할배신을 모셨다고 한다.

봉대산과 마골산을 뒤로 하고 동해안을 따라 펼쳐진 작은 어촌마을 주전. 주전(朱田)은 땅이 붉다는 뜻인데, 마을 이름처럼 주전의 토양은 주로 붉은 색이라고 합니다.
 주전은 조선 중기 정조 때 까지만 해도 산 아래 언덕 쪽의 주전리와 바닷가 쪽 주전해리(朱田海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산과 인접한 주민들은 주로 농업을, 바닷가 쪽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해 왔다고 합니다. 지금도 주전마을은 새마을 큰불마을 번덕마을 상마을 중마을 아랫마을 보밑마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들 마을은 위치에 따라 같은 듯 다른 삶의 형태를 가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생활 형태는 주전마을 만의 독특한 민간신앙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제당입니다. 

바다·산신 달래고 풍어 기원한 제당
한 마을에 10곳이나 있는 곳 드물어
동구, 문화 콘텐츠로 발굴 정비사업
상징물·둘레길 만들어 발길 잇게 해

 

#주민들, 인구 줄면서 제당 철거 표지석·당목만이
주전마을에는 보밑마을 제당, 건너각단 제당, 상마을 제당, 중마을 제당, 아랫마을 제당, 학교 밑 제당, 번덕마을 제당, 큰불마을 제당, 새마을 제당을 비롯하여 주전초등학교 뒤편 동사당(洞祠堂) 등이 마을의 곳곳을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제당들은 젊은이들이 하나 둘 떠난 후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제를 제때 지내기 어렵게 되자 주민들이 마을 회의를 거쳐 폐쇄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지난 2005년 경로당을 신축하면서 모든 제당의 위패를 경로당 2층에 모시기로 하고 제당을 철거해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제당은 모두 사라졌고 대부분은 터만 남아 있거나, 제당을 지키던 나무인 당목만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동구청이 사라져버린 제당터를 주전만의 특이한 문화 콘텐츠로 발굴하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제당터에 표지석을 세우고, 둘레길을 만들어 옛 제당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번덕마을 제당터를 지키고 있는 400년 수령의 곰솔.

 주전 옛길을 내려와 주전마을로 들어선 후 처음 만나는 제당터는 아랫마을 제당입니다.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지형을 하고 있는 이 제당은 성지방돌 제당으로 불렸으며, 주전마을에서 가장 영험한 제당이었다고 합니다. 주전마을의 제당 문화를 상징하는 이곳은 성지방돌 상징광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150㎡ 넓이의 상징 광장과 4m 높이 기념비와 주전마을 특산품인 전복모양 벤치 6개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성지방돌 기념비는 4개의 탑이 하나로 구성돼 있으며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옛 제당 터임을 알 수 있도록 기와지붕의 외곽선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기념비에는 주전마을의 옛 제당을 둘러볼 수 있는 마을 제당터 둘레길 코스와 이에 대한 설명을 첨부한 위치도를 새겨 놓았습니다.

   
당산나무인 곰솔 3그루가 남아 있는 큰불마당 제당터.

#할배·할매신 등 모셨던 신들도 제각각
아랫마을 제당을 지나면 주전초교 아래를 뜻하는 학교밑 제당과 주전항 북쪽 큰불마당 제당이 나옵니다. 어구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학교밑 제당 터에는 큰 바위 옆에 표지석만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주전항에서 북쪽으로 조금 지나면 만날 수 있는 큰불마당 제당에는 당산나무 곰솔 3그루가 남았습니다.
 이들 3곳 제당에 모신 이는 할배신이었다고 합니다. 이들 사당은 거친 바다인 할매를 달래기 위해 할배가 불쑥 바다로 튀어나간 바위에 세워졌습니다. 주전 마을 바닷가를 따라 점점이 늘어서 바다를 달래는 역할을 했던 제당이었던 것입니다.
 

 바닷가 제당이 할배를 모신 반면 마을과 인접한 숲속에는 할매를 모신사당이 있습니다. 산신을 달래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합니다.
 큰불마을 제당터를 지나면 새마을제당이 있는데, 이곳은 할매신을 모셨다고 합니다. 새마을제당터는 바다와 산이 맞닿아 있는 곳인데, 산사태나 홍수 등을 달래기 위해 산의 숲 속에 사당을 세우고 할매신을 모신 것이지요.

   
성지방돌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아랫마을 제당터.

#마을 대표신, 주전경로당 사당으로 옮겨 봉안
주전 가족 휴양지 남쪽에 위치 한 보밑마을 제당도 할매신을 모셨다고 합니다. 바다를 돌봐주고 마을의 주산물인 멸치의 풍어를 빌고, 멸치를 삼던 후리막을 돌봐주던 제당으로 보밑마을 중심에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금슬 좋은 할매와 할배를 동시에 모신 제당도 있습니다. 중마을 제당과 건너각단 제당이 바로 그곳입니다. 이들 제당이 위치한 마을 주민들의 생계수단은 농사와 어업이 비슷한 비중이었다고 합니다. 바다와 육지의 신을 동시에 달래야했기 때문이겠죠. 이 곳 역시 지금은 당목만 남아있습니다.
 

 사을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던 번덕 마을은 주전마을 중 가장 농업이 흥성했던 곳입니다. 이곳 사당엔 육지의 들을 관장했다고 믿은 할배신을 모셨습니다. 제당은 사라졌지만 이곳에는 '생명의 나무'라 이름 붙인 400년 된 곰솔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냥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드넓게 열린 바다와 주전마을을 내려다보는 눈 맛이 일품입니다.
 상리마을 제당은 주전마을의 가장 위쪽 톳재이산 구릉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산신의 성격이 강했고, 지금은 도로 때문에 흔적도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공동체 번영 기원하던 선조들 심성 오롯이
가장 늦게 만들어진 동사당은 흩어져있던 주전 마을의 신들을 대표하는 신이 머문 곳으로 주전초등학교 북쪽에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 대표신은 지금 주전경로당에 마련된 사당으로 옮겨 봉안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마을 곳곳에 신령을 좌정시켜 안정적인 정주공간을 꾸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주전마을처럼 한 곳에 10개나 되는 제당이 있는 곳은 드물다고 합니다. 
 

   
탑을 닮은 등대가 있는 주전항 포구.

 자칫 잊혀질뻔 한 주전만의 독특한 제당문화를 살려낸 지자체의 발상이 신선하지 않습니까. 비록 제당은 사라지고 없지만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빌던 우리 선조들의 고운 심성이 오롯이 전해집니다. 남아있는 당산나무는 공동체의 근원이자 신성의 중심이자, 오래된 시간성 속에서 크고 우람한 형태로 삶과 죽음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재생의 상징물입니다. 장맛비를 충분히 막아줄 만한 주전마을 제당 당산나무들의 너른 품에서 힐링 한번 어떻습니까? 주전마을의 이름다운 포구와 등대, 반짝이는 몽돌해변은 덤입니다. 글·사진=강정원기자 m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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