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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해 흘러나오는 가늘고 긴 끈
어느새 틈을 비집고 달려온다
시간의 소리들이 귓속에 쳇바퀴처럼 돌고
수없이 많은 이명 속으로 사라지는 저음
 
뱉어 놓은 언어들이 종이처럼 구겨지고
어느 세상의 틈을 비집고 새어 나왔는지
어디쯤에서 나를 알고 단번에 달려 나온 것인지
 
다른 세상을 걸어 다니는 말들의 세상
속을 들여다보는 일에 눈 따위는 없다
열두 개의 버튼으로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며
숨어 있는 수많은 얼굴들이 혼선되지 않은 채
또박 또박 나를 향해 걸어 나오고
웅크리고 앉아 있던 말들도 서둘러 대답한다
 
귀로만 볼 수 있는 세상
통화버튼 안의 수많은 얼굴들을
엄지손가락 하나로 조용히 열어보는 걸음으로
걸어갈 수 없는 길이 이렇게나 많이 있었다니


■시작노트: 엄지손가락만한 세상에서 우리는 오늘도 통화버튼을 누른다. 언제나 새롭게 마주할 동그란 언어를 기대하면서 발로 걸어서 갈 수 없는 길을 나서고 살아서 움직이는 목소리이거나 문자로 내통한다. ※약력: 1967년 용인출생. 2011년 '시선' 등단. 2011년 용인문예창작지원금 수혜. 시낭송가. 한국작가회의. 창작21 회원으로 활동. 시집 <푸른 시절 안에 눕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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