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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석 대곡박물관장

올해로 울산은 정명 600년을 맞았다. 지명사적인 의미로 600년은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울산은 이름을 부여받은 600년 전보다 훨씬 이전에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온 고장이다. 반구대암각화가 말해주는 선사문화의 보고는 울산의 원시성의 증표이고 계변성과 반구동 유적지는 신라 천년의 국제항을 그대로 보여준다. 울산을 바로 알고 울산에 대한 정체성을 갖는 것은 바로 지역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광역시 울산 안에는 각 지역이 경험했던 역사적 사실이 곳곳에 풍부하게 내재되어 있다. 이를 잘 활용하여 지역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어, 울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할 시점이다. 앞으로 대곡박물관 신형석 관장이 들려주는 울산의 유물과 지명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같은 울산의 역사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본다. 편집자

▲ 언양은 삼한시기에 독자적인 정치체를 가진 세력이었으나 신라의 지방으로 편입됐다. 사진은 신라 왕실의 피서지로 이용됐다고 전해지는 천전리각석.

언양·상북·삼남·삼동 아우르는 언양현 삼한시대부터 존재
우시산국 중심 울주, 조선 태종때 울산으로 변경 지금껏 사용
두동·두서는 신라 왕경에 속하다 1906년이후 언양에 편입
조선시대 방어진은 울산과 별개로 호미곶 목장까지 관리

# 광역시 구성하는 다양한 갈래
대한민국 7대 도시로 성장한 울산광역시(蔚山廣域市). 광역시 울산은 올해로 16년째를 맞이했다. 지난 1997년 7월 15일 울산 시가지 일원과 울주군 지역은 울산이란 이름으로 통합되어, 광역시로 승격했다. 울산 역사에서 일찍이 이렇게 큰 변화는 없었다. 울산이란 도시는 현대에 와서 세계인이 놀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광역시 울산은 단일 지역 및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이루어진 도시는 아니다. 여러 지역과 갈래들이 모여 지금의 광역시를 구성하게 되었다. 울산이 앞으로 더 조화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런 갈래에 대해 좀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각 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 위에서 행정을 펼친다면, 보다 나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올해는 울산이란 지명이 고을 이름에 사용된 지 600년이 되는 해이다. 울산시는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울산 지명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다양하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울산이란 이름으로 인해 밀려나고 사라져 간 지명에 대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이해는 '울산 600년'의 의미를 찾는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쪼록 금년에는 지역사의 다양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기회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래에서는 광역시 울산을 구성하는 다양한 갈래와 그 속에서 밀려난 지명에 대해 좀 살펴보려 한다. 잠시 울산광역시 지도를 펼쳐 놓고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언양현(군)과 울산군
광역시 울산은 조선시대에 크게 울산군(蔚山郡)과 언양현(彦陽縣)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울산군은 임진왜란 종료 후에 왜적 격퇴의 공을 인정받아 군(郡)에서 도호부(都護府)로 고을의 격이 올라갔다. 언양현은 1599년(선조 32)부터 1612년(광해군 4)까지 울산도호부에 합속된 적이 있었지만, 그 외 시기에는 고을의 승격 없이 줄곧 별도 현(縣)으로 존속했다. 언양현은 현재의 언양읍이란 작은 읍이 아니라, 언양읍을 비롯하여 상북면·삼남면·삼동면 지역이 속했다.
 이곳 주민들은 울산과는 다른 고을의 백성으로 대대로 살아왔다. 언양현은 언양읍성(사적 제153호)을 중심으로 행정을 펼쳤고, 울산군은 울산읍성을 중심으로 행정이 이루어졌다. <언양현 호적대장>(울산시 유형문화재 제9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중인 <울산부 호적대장>과 비교되는데, 서로 다른 행정구역에서 작성되었던 자료들이다. 작천정(酌川亭)은 1902년(광무 6) 언양군수를 중심으로 언양 선비들이 작괘천 강가에 건립했던 정자이다. 언양의 지난 역사를 알지 못하면, 이 정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언양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삼한시기 언양 일원에는 거지벌(居知伐)이란 정치체가 있었다. 이후 신라의 지방으로 편입된 후에는 거지벌촌 또는 거지화현으로 불렸다. 거지화현은 경덕왕(742~765) 때 헌양현으로 바뀌었다. 고려 중엽까지 헌양현으로 불렸는데, 인종(1109~1146)대 이후에 언양(彦陽)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언양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1896년(건양 1) 13도제가 설치되면서 언양은 경상남도 언양군이 되었다. 그리고 1914년 3월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을 때 언양군은 울산군에 통합되었다. 이로써 언양현(군)이란 지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서부 울산지역 안에 언양 지역문화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울산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삼한시기 이 지역에는 굴아화(屈阿火)와 우시산국(于尸山國)이란 정치체가 있었다. 이들 읍락국가는 일정하게 성장하다가, 신라에 복속되어 지방으로 편제되었다. 신라 정부는 울산지역을 단일 행정구역이 아니라, 여러 개의 고을로 나뉘어 다스렸다. 이들 고을은 경덕왕 때 하곡현(河曲縣)·동진현(東津縣)·우풍현(虞風縣) 등으로 바뀌었다.
 그후 신라 말에 와서 호족세력 박윤웅(朴允雄)이 등장하여 울산지역을 통합했다. 박윤웅은 울산박씨 시조이다. 고려 초기 울산은 흥려부(興麗府)라 불렸는데, 이때 울산은 광역권으로 발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고려시대 울산은 울주(蔚州)로 불렸다. 큰 고을을 뜻하는 '주(州)'자 지명을 가진 고을이 되었다. 그런데 울주란 지명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1018년(현종 9) 울주에 방어사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일부에서는 이때를 그 시작으로 보고 있으나 확실치 않다.
 울주란 지명은 조선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1413년(태종 13) '주(州)'자 지명이 너무 많다는 태종의 지시로, 격이 높은 고을은 남겨두고 나머지 고을은 '산(山)'자와 '천(川)'자를 붙이도록 했다. 고을의 격이 군(郡)에 불과했던 울주는 여기에 해당되어 '산'자를 붙이게 되어, 울산으로 바뀌었다. 그 후 울주란 지명은 쓰지 못했고, 줄곧 울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울주가 울산으로 바뀌었지만, 옆 고을인 언양은 변함없이 같은 지명으로 불렸다. 
 1914년 발족한 통합 울산군은 18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새로운 울산군의 범위는 대체로 오늘날 광역시 울산의 범위와 비슷했다. 2014년은 언양과 울산이 통합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대곡박물관에서는 이것을 소개하는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두동면·두서면과 방어진 지역

▲ 조선시대 방어진은 울산과 별개로 호미곶 목장까지 관리했다. 사진은 방어진목장 지도

울주군 두동면·두서면 지역은 1906년(광무 10)까지 경주에 속했다. 이 지역은 경주부 외남면이었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쪽에 있는 언양군으로 편입되어, 두북면이 되었다. 이후 두북면은 두동면과 두서면으로 나뉘어졌다. 20세기에 들어와 이 지역 사람들은 언양군민이 되었다가, 얼마 후 울산군민으로 편입되었던 것이다. 
 지석묘(고인돌)의 존재를 보면, 이 지역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신라시기에는 왕경에 속했는데, 육부 가운데 사량부에 속한 지역이었다. 두동면 천전리의 울주 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은 사량부에 속한 왕실의 피서지였다고 볼 수 있다. 대곡댐 수몰부지의 삼정리 하삼정고분군에서는 고분 1,100기가 발굴조사되었는데, 이곳은 사량부의 한 지역집단의 묘지로 볼 수 있다. 또한 대곡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시대 생산유적 출토 유물을 보면, 경주 사람으로 살았던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동구 방어진 지역은 조선시대에 방어진목장이 설치되어 있었던 곳이다. 이 지역은 울산과는 별개 행정조직으로 운영되었다. 이곳에는 종6품의 감목관(監牧官)이 파견되어, 관리했다. 방어진 반도에 마성(馬城)을 축조하여, 말을 방목하여 길렀던 것이다.
 방어진목장을 남목(南牧), 포항의 호미곶에 있었던 목장을 북목(北牧)이라 하여, 울산의 감목관이 함께 관리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향후 행정구역 개편이 논의될 때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지역문화의 다양성 이해 과제
광역시 울산을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울산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지역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광역시 울산 안에는 각 지역이 경험했던 역사적 사실이 곳곳에 풍부하게 내재되어 있다. 이를 잘 활용하여 지역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어, 울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으면 한다. 울산 정명 600주년인 올해는 시민 모두가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가져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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