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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을 갈 일이 생기면 가기 전부터 마음이 몹시 바빠진다. 시야가 좁아서 시각장애 판정을 받은 후부터 생긴 버릇이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건 간에 출발과 도착할 때 마음 편하게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하고 가는 곳의 상황이 어떤지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심스레 혼자서 잘 다닌 편이었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낯선 길은 곳곳이 지뢰밭이라 내 다리나 팔에는 크고 작은 멍이 가시질 않았다. 우선 나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들이 걱정을 하니 이제는 사회배려자를 위한 도우미 제도를 이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진즉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장애를 인정하기 싫은 것만큼 혼자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스스로 해 보려는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사고는 한 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마음이 바뀌었다.

 서울에 갈 일이 생기고 열차표를 예매하면서 장애판정 후 처음으로 '도우미'를 요청했다. 열차 안의 좌석을 찾기가 가장 힘들었기에 자리만 찾아주면 되는 것이었다. 역무원은 '흰지팡이' 같은 팔을 내주며 친절하고 안전하게 나를 열차에 태워주었다. 서울역에서도 '도우미'가 나올 거라며 좋은 여행되시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열차가 도착할 무렵 승무원이 다가와 하차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옆 호실에 한 분을 더 모셔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나는 혼자 내릴 수 있으니 개의치 말고 그 분만 도와주시라고 정중히 사양했다. 내가 처음 이용해서 그렇지 역무원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건강이 지금보다 나았을 때 봉사활동을 다닌 적이 있었다. 큰 봉사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내 입장에서는 남다른 보람이 되기도 했다. 나중에 사회로부터 배려를 받아야 할 때를 생각해서라도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었었다. 빚을 지기 싫어하는 결벽증이 한 몫을 했을지도 모른다.

 '도우미' 덕분에 마음 편하게 여행을 하였지만 서울역에서 돌아올 때의 광경이 떠올라 씁쓰레한 기분이 남아있다. 서울역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복잡한 곳이지 않은가. 친구와 함께 도우미를 요청하러 갔을 때 이미 휠체어를 타고 있는 분들이 몇 분이나 대기 중이었다. 저 분들을 열차에 태우고 내리게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를 도와주러 나온 공익요원의 팔을 잡고 복잡한 역내를 빠져 나가는데 앞 서 가던 도우미가 장애우로부터 혼이 나고 있었다. 무언가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지만 너무나 당당하게 야단치는 것이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나를 안내하던 공익요원은 "저런 분들 의외로 많아요"라고 했다. 사회배려자로서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드는 나로서는 그랬다. 

 우리 집 승용차는 장애등록이 되어 있어 어딜 가나 전용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어느 곳을 가도 주차전쟁이라 할 만큼 차 대기가 힘들지만 남편은 내가 타지 않는 한 그 차를 장애인 전용주차장에 세우지 않는다. 그런데 주차를 편하게 하기 위해 가짜로라도 장애등록을 하고 싶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좀 편하게 가려고 꾀병을 부려서라도 119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도 보았다.

 정말 불편한 사람이 이용해야 하고 정말로 위급한 사람이 불러야 할 구급차가 이렇게 이용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유감스럽다. 그게 뭐 어떠냐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이지 않느냐고 되묻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을 보면서 건강하지 못한 시민의식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보통의 사람이면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을 우리는 상식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가 상식에서 점점 멀어져간다는 느낌은 비단 나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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