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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바로 서고 바로 앉고 바로 걷기가 힘들어졌다. 아니 바로 서고 앉고 걷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무심하게 일어나고 앉고 서고 걷고 하던 지극히 기초적인 이 행위들이 이리 어려울 줄을 예전에 미처 몰랐다. 병원에서는 너무 많은 시간동안 욕심과 편함을 탐닉한 탓으로 몸을 지탱해줄 근육들이 사라져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병원을 찾을 때마다 겪는 난처한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누워보세요' 라고 간호사가 말하면 나는 분명히 바로 눕는다고 누웠는데 '아니, 바로 누워보시라니까요' 이런다. 늘 겪는 문제지만 당혹스럽다. 내가 바로라고 생각하고 누운 자세가 바르지 않다면 어떻게 바른 자세를 취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머무적거리고 있으면 의사 선생님은 내 두 다리를 잡고 한쪽으로 이동을 시킨다. 그런데, 그 '바로'라고 고쳐준 자세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내 몸은 다시 두 발과 엉덩이를 조금씩 이동해 내가 생각하는 편한 자세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걸 보던 선생님은 몸이란 편한 자세를 고집하는 성질이 있어 몸이 뒤틀어지고,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젖혀져도 통증만 따라오지 않으면 그 자세를 고집하는 것이 몸의 속성이라고 웃는다.

 '바르게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깨를 바로 펴고 턱을 당겨 고개를 바로 하고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자연스럽게 팔을 앞뒤로 흔들며 발뒤꿈치부터 땅에 닿게 내딛어 새끼발가락부터 엄지발가락 차례로 닿게 걷는다면 이것은 일단은 이론상 바른 걸음걸이다. 그런데 또 다른 바로 걷기의 문제를 만났다. 어느 날 초저녁 버스를 타러가는 길에 한 남자 취객과 서로 비켜서려다 정통으로 마주 서고 말았다. 민망하여 피하려는 내게 그 취객은 한 걸음 물러서서는 대뜸 '똑바로 걸으시오' 하고 삿대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정작 비틀거리며 걸어온 사람은 그 취객인데 나더러 똑 바로 걸으라니. 처음엔 무섭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서 잽싸게 피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까지 그 사람 말이 잊히지 않았다. 처음엔 비틀거린 사람이 누군데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서서히 그럴 수도 있겠다, 본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보를 한 것이고, 앞에서 걸어오던 늙은 여자의 둔하고 어설픈 걸음걸이가 똑바르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단 긍정적인 생각에 이르렀다. 내가 바로 걸었다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고, 다른 사람 눈에는 똑바른 행보가 아닐 수 있겠다 싶었다. 더구나 요즘은 치료과정에 있지 않은가.

 바른 행보를 알려면 초기불교의 성인이 되기 위한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 팔정도(八正道)에 기대볼 필요가 있겠다. *올바르게 본다(정견正見) *올바르게 생각한다(정사유正思惟) *올바르게 말한다(정어正語) *올바르게 행동한다(정업正業) *올바르게 노동한다(정명正命) *올바르게 노력한다(정정진(正精進) *올바르게 깨닫는다(정념正念) *올바르게 집중한다(정정正定)

 이 여덟 가지 바른 행보를 위해선 가장 먼저 '올바르다'란 말뜻을 알아야 실천할 수 있겠다. '올바르다'란 말은 옳고 바르다는 말이다. 문제는 실천 자체도 어렵겠지만 무엇보다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바른 것인가를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실천할 수가 없다. 여러 과정의 수행이 필요한 지극히 어려운 말씀임에 틀림없다.

 좋은 글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어느 날 우연히 여우가 지네를 만났다. 여우는 지네의 걸음걸이가 이상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각되어서 한 마디 했다. '지네야 너는 발이 그렇게도 많은데 어떻게 해서 엉키지도 않고 잘 걸어갈 수가 있는 거야? 어느 발부터 내딛는 거지? 그 많은 발들이 내딛는 순서는 있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네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걸었던 발의 순서와 걷는 방법을 떠올리게 되었다. 앞을 보고 걷던 지네는 발을 내려다보고 어느 발이 먼저 나가는지 발은 어떻게 들어 올리고 있었는지 확인하느라 발이 엉키고 말았다한다. 물론 생각하는 동안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으리라.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내 것으로 만들어 의식 없이 행할 경지에 이른 것에 대해서는 무심히 행하는 것이 바른 행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파스칼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할 정도로 생각은 인간에게 중요하지만 이 생각이란 것이 오히려 독이 될 때도 있다. 쓸데없이 생각이라는 것을 보태면 지네처럼 발이 얽혀 살아가는 일이 수고로워질 것이란 이야기다. 결국 무심시도(無心是道) 즉 무심이 도인 것이다.

 어쩌면 내가 잊었거나 잃어버린 바른 자세들을 생각해내려 했기 때문에 더 힘들고 어려운지 모르겠다. 바른 자세에 대해 요즘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이것을 죄 받아들이다 보면 평생 걸어오던 내 길이 지네발처럼 더 뒤엉킬지 모른다. 뚜벅뚜벅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싶을 뿐이다.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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