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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도자기를 구경하고 제작체험을 할 수 있는 스페이스 223.

나른한 휴일 오후. 진득한 휴식에 지쳐갈 때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그러나 시곗바늘은 이미 오후 1시를 넘게 가리키고 있었다. 먼 곳을 향하기엔 어려운 시간이었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마실 장소가 없을까 하고 SNS에다 질문을 던져놨더니 한 지인이 기장 대룡마을을 추천했다. 울산에서 가깝긴 한데 대룡마을은 생소한 이름이었다. 평범한 마을이 나들이 장소가 될까 하고 의구심이 들 때쯤 지인이 또 다른 정보를 준다. 예술가들이 모여 마을을 이룬 곳이란다. 울산 남구의 신화마을을 상상하며 기장으로 떠나보기로 했다. 많은 기대를 하면 실망할 수도 있으니 몸도 마음도 가볍게.

 벽화·문패도 하나의 예술작품…마을 전체가 전시장
'다양한 체험 오감 충족' 입소문 타고 방문객 줄이어

# 시골 마을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예술 창작촌'
한낮 기온이 35도를 훌쩍 넘었던 날, 햇볕이 어찌나 뜨거운지 에어컨을 틀지 않고서야 참을 수 없는 무더위였다. 머리가 지끈할정도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쌩쌩 맞으며 속까지 달아오른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를 50여 분 달려 대룡마을에 도착했다.

   
방문객의 휴식장소 카페인오리.

 마을 입구는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창문을 열었더니 시골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난다. 차 표면의 뜨거운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올라 사방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의 아지랑이처럼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것이 여유를 느껴보라며 유혹하는 듯하다.

 10년 전부터 예술가의 마을로 꾸며져서인지 방문객도 여럿 보였다. 그도 그럴 듯이 마을은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가 완벽히 돼 있었다. 1인 1차 소유가 된 요즘 같은 시대의 필수 공간인 주차장이다. 20대는 여유롭게 주차할 수 있도록 널찍하게 조성 돼 있었다. 마음 편히 주차를 한 뒤 본격적으로 마을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예술가들의 마을치고는 평범한 시골 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다양한 예술작품이 눈에 띌 줄 알았는데 막상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을 골목 사이사이에 예술작품이 덩그러니 놓여있다면 인위적일 것 같았다. 대룡마을의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자랑이자 매력일 것이다. 마을과 자연스레 조화를 이룬 예술 작품들이 대룡마을과 하나가 돼 있었다.

 마을을 둘러보다보니 아트인오리, 오리공작소 등'오리'라는 이름이 붙어진 공간이 눈에 띄었다. 꽥꽥 오리인 줄 알고 오리를 키우는 마을일까 생각했는데 마을이 기장군 장안읍 오리에 있다해서 그렇게 지었단다.

 대룡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옛날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에 큰 용이 살아서 그렇게 붙여졌다. 하지만 지금은 땅으로 메워져 흔적만 남은 상태다. 그러나 마을을 둘러싼 신비한 전설은 마을 안에서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행정안전부의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국가지정 시범마을로 선정돼 마을의 명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 10여 년 전부터 모여든 예술가들, 마을에 색 입혀
대룡마을이 예술 창작촌으로 변모한 것은 약 10여년 전 예술가 김미희 씨가 부산에서 기장으로 이주하면서부터다. 부산에서 자리를 옮겨 도자기 공방을 차린 그는 분주한 도시를 떠나 조용한 작업공간을 찾다 이곳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매료당해 가족과 함께 이사를 왔다 .

   
 
 그와 같은 이유로 마을과 연을 맺게 된 예술가들이 많아졌다. 10여 년 전부터 하 둘 모여든 부산 지역 예술가들은 평범한 시골 마을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고 대룡마을에는 자연스럽게 예술 창작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 곳곳의 조형물들과 벽화뿐 아니라 집집이 선물처럼 걸린 문패도 그들의 작품이다.

 각종 예술품으로 꾸며놓은 공방 자체가 설치미술이자 전시장이다 보니 입소문을 타고 멀리서 마을을 찾는 발걸음들이 이어졌고, 작가들은 누구나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대룡마을에서는 야생화 체험과 논 체험, 농장 체험 등 여러 자연 체험과 테라코타, 도자 체험과 같은 다양한 예술 활동도 경험해볼 수 있다.

   
 
 마을에서 오리라는 이름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곳은 오리공작소다. 예술체험공간인 줄 알았더니 마을 사람들의 머리스타일을 멋지게 다듬어주는 동네 미용실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늘색 페인트로 깔끔하게 정리된 이곳 역시 하나의 갤러리처럼 보였다. 심지어 머리를 감겨주는 세면대마저 설치미술작품같이 보일 정도였다.

 이곳에서 나오는 엄마와 아이를 보면서는 다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마을임을 알아챘다. 예술작품이 모여 있어 특별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마을이다.
 
# 심성 고운 방문객 반기는 무인카페 '카페인오리'
마을의 상징 격이자 방문객을 위한 장소가 있다. 무인카페 카페인오리다. 이 카페에는 주인장이 따로 없다. 사람들의 양심에 맡겨 커피와 음료 등의 값을 지불함에 내고 냉장고에서 꺼내 먹거나 직접 커피를 타 먹는 방식이다.

   관리인이 따로 없어 너저분할 것만 같은 카페 분위기는 뜻밖에 빈티지하고 감성을 자극했다. 방문객들이 남기고 간 쪽지하며 각종 아기자기한 장난감,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보던 파란 날개의 선풍기까지. 더위에 지친 심신을 부드러운 감성으로 어루만져 줄 아늑한 공간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레몬 라임 맛 청량음료를 들이켰다. 꿀꺽꿀꺽 마시다 보니 아직 내지 않은 음료값이 떠올랐다. 3,000원을 카페 문 옆의 지불함에 넣었더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다른 방문객들도 하나둘 음료를 고르고 스스로 돈을 지불했다. 각박하게 사는 요즘 시대에 누구 하나 지켜보는 이 없더라도 양심을 지킬 줄 아는 고운 심성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곳이 이곳이다.

 카페에 앉아 내부를 구경하고 있으니 더위도 싹 가시는 기분이다. 도시에서는 시끄럽기만 하던 매미 소리가 여기서는 합창곡이라도 듣는 듯 하다. 한적한 분위기 속 새소리도 가득하다. 진짜 자연 속에서 편안히 쉬어간다.
 
# 미리 예약하면 다양한 농촌·예술체험도 가능
예술 창작촌인 만큼 갤러리는 빠질 수 없었다. 카페인오리 바로 옆에는 아트인오리 갤러리가 있는데 이곳 역시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귀여운 각목 인형과 나무로 만든 추상적인 예술작품 등을 전시하고 각종 소품을 판매한다.

 또 조각작업장이자 도자기 공방인 스페이스 223에서는 각종 도자기를 구경할 수 있으며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갤러리 밖 길가에는 다양한 설치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 철제로 제작한 발레하는 소녀와 사람의 표정을 표현한 이모티콘 설치물 등은 길과 어우러져 마을 내부를 안내한다.

   
 
 대룡마을에서는 예술체험 (목공예·도자기체험 등등)을 비롯해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미리 예약하고 가면 오감이 만족할 수 있는 농촌체험이 가능하다. 늦여름 더위에 심신이 지친 사람이라면 이번 주말,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줄 대룡마을 나들이를 추천한다.   글·사진=김은혜기자 ryusor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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