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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덜트(kidult)' 란 신조어를 들어 보았는가? 즉, 어른이면서 어린아이의 감성을 지닌 어른을 지칭하는 뜻이다. 현대인의 심리적 허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육십 칠십이 넘어도 마음은 늘 소년, 소녀, 이팔청춘의 그때를 잊지 못하고 마음 속에, 가슴 속에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시낭송은 그런 것이다. 내면에 잠자고 있는 추억이든, 사랑이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잠시라도 사회적인 부담과 존재론적 불안 등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 '숨'을 쉬게 하는 것이다. '숨'을 쉬는 그곳에는 감성이 있고 감동이 있다.
 독자적인 한편의 시가 낭송인의 소리를 통해, 수 천 수 만명을 감동하게 하는 묘한 매력을 전한다. 그것이 낭송이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아이들에게는 함축적인 언어가 상상력을 키우게 하고, 청소년들에게는 자신감과 어휘력 언어구사력에 많은 도움을 주며, 풍부한 사고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게 한다.
 또한 '낭송은 나를 오롯한 그릇에 정성으로 담아내는 음식이다.' 식재료가 아무리 많아도, 풍부한 맛을 내는 주인이 있어야 하듯이, 낭송인 마다 그 주인의 맛이 다 다르다. 그래서 시낭송은 정직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낭송인의 소리에는 정성과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탄생시킬 때처럼 정성으로 공손히 시를 맞이하고 낭송해야 한다고, 시낭송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일러 준다.
 가령 어떤 행사나 대회가 있을 때, 시낭송은 다른 장르와 다르게 낭송인이 소개되고, 이름이 불려 질 때부터 낭송이 시작되어, 제 자리로 돌아 갈 때까지 낭송의 연속으로 생각해야 한다. 정성으로 시를 낭송할 때 관객에게 전해지는 감동은 크다.
 

 지금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감동이다. 감동은 감성이다. 그 감성을 끄집어내는 일이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늘 삶 속에서 갈증을 느끼고, 그 갈증을 해소 해 줄 청정수를 찾는다.
 시낭송은 청정수 같은 것이기도 하다. 시낭송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속에 꿈을 그려주기도 하고, 내 속에 갇혀 있는 말을 시로 자유롭게 풀어내어 닫혀 있던 마음에 문이 열어준다.
 

 사람들은 시 낭송 하면 왠지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한다. 시를 만나는 것 보다 더 그렇다고 들 한다. 하지만 시낭송은 문자가 나오기 전부터 있었다면 믿겠는가?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아니 삶을 살아가면서 기쁨과 슬픔, 어려움과 시련, 고통, 고독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은 술집이나 노래방을 찾는다. 술 한 잔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 부르면 내 마음 속에 풀리지 않은 것들이 실타래 풀리듯 풀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속 쓰림과 함께 어제의 것들은 이미 나의 곁에서 이미 멀어져 또 나를 찾기 위해 헤매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시낭송을 만나보라.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스스로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만들어 가는데 인색하다. 나 자신보다는 상대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소리로서 전해지는 울림을 느껴보라.
 

 소리에는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에너지가 담겨 있다. 나는 시낭송을 하면서 나를 발견하고 마음 속에 자리한 기억의 창고에서 소녀시절 편지와 함께 김춘수의 꽃을 배달 받고 읽고 또 읽으면서 꿈을 꾸고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오늘도 시낭송으로 현대인의 그늘진 마음속에 소리 볕을 쬐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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