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후면 반구대암각화 주변에 발굴조사가 시작된다. 문화재청이 반구대암각화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허가해 국보 지정 이후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뤄진다. 사연댐으로 수몰된 지역이 많아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암각화 주변을 제대로 발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호미자국 하나 불허할 것 같았던 문화재청이 가변식 물막이를 수용하고 주변지역 발굴조사까지 실시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고집을 넘어 아집에 가까운 독선적 행정이 이만큼 여유를 갖게 된 연유가 무엇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반구대암각화의 온전한 보존과 학술적 가치를 구명하는 데는 큰 다행이라 여겨진다.

 이번에 발굴하는 지역은 반구대암각화를 중심으로 상부 50m, 하부 50m, 그리고 전방 50m이다. 상당부분이 물에 잠겨 있어 발굴조사의 방법이 문제지만 물을 빼고 제대로 발굴한다면 그동안 전설처럼 떠돌던 제2 반구대암각화나 선사인들의 흔적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7,000년 전 선사인의 삶의 흔적이 이번 기회에 일부라도 모습을 드러낸다면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물론 그 개연성은 충분하다. 반구대암각화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불행하게도 사연댐에 수몰된 이후의 일이다. 발견 당시에도 계절은 겨울이었지만 반구대암각화 앞쪽은 배를 타고 가야할 정도로 물길이 가로막혀 있었다. 발견과 함께 주변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면 지금과 같은 보존 논란이 첨예화되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지만 문화재 관계자들이 그 당시만 해도 암각화의 중요성이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이제는 보편화된 이야기지만 반구대암각화는 바다와 육상 생물을 모두 새겨 놓은 진귀한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의 유래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반구대암각화의 학술적 가치는 세계적인 석학들이나 인류학자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세계적으로 암각화를 연구하는 이들은 그림으로만 보던 반구대 암각화를 하나같이 눈앞에 놓고 그 숨결을 느껴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동안 문화재 당국은 자연상태의 훼손은 어떤 것도 안된다는 논리로 형상변경이나 발굴조사를 외면해 왔다. 이제 반구대암각화가 그 비밀의 문을 연다. 상하 50m, 전면 50m 라는 한계를 가진 주변조사지만 발굴과 탐사를 통해 7,000년의 비밀이 드러날 수도 있기에 벌써부터 심장이 뛰는 소리가 다르다. 7,000년의 세월은 인류사 전체를 놓고보면 보잘 것 없지만 암각화와 인류의 문화유산을 중심에 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연해주의 사카치아랸, 이탈리아 발카모니카, 스웨덴 타눔, 아프리카 나미비아, 탄자니아 콘도, 아르헨티나 리오 핀투라스 등 모두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암각화다. 모두 나름대로 보존이 잘 된 암각화지만 훼손상태가 심각한 곳도 있다. 특히 관광지가 된 암각화는 비록 물에 잠기는 곳은 없지만 인위적인 탐조시설이 들어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암석과 현대의 인공미를 연결한 곳이 대부분이다. 또 한가지, 이들 암각화에 나타난 그림들은 대부분 조악하다. 무엇보다 단순한 형상의 나열이나 상징화된 이미지의 반복이 이들 암각화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물론 고래그림은 없다. 해상과 육상 동물이 함께 그려져 있고, 사냥술과 생활상이 세밀하게 묘사된 암각화는 반구대암각화가 유일하다. 그런데 말이다. 앞서 열거한 대부분의 암각화가 주변에 또 다른 암각화를 갖고 있고, 선사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흔적을 남긴 점은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7,000년 전의 한반도는 지금과 다른 환경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반구대암각화가 위치한 대곡리 인근까지 해안선이 올라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과 주변의 토기 제작 흔적을 미루어 볼 때, 집단적인 선사주거지역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개운포 인근 세죽마을에서 7,000년전 선사인의 생활도구들이 패총과 함께 발견된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죽마을과 대곡리가 해안선으로 연결됐고, 이들이 7,000년전 이 땅의 주인이었다면 그 흔적은 반구대암각화나 패총 말고도 더 많은 것을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우리 선조들의 한무리는 시베리아 바이칼 지역에서 출발했고, 또다른 무리는 폴리네시안 계열의 남방 해양 쪽에서 유입됐다는 이야기는 가설의 수준을 넘어선 사실이다. 많은 학자들이 시베리아에서샤먼(무당)에 대한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우리 민족과의 유사성을 찾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는 만큼 남방지역의 문화적 유전인자를 찾아가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시베리아 시스키스키 암각화에서 발견되는 육상동물의 모습과 사냥술이 반구대암각화의 원형이라면 고래잡이의 원형은 바다 쪽 어느 지점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바로 반구대암각화가 해양문화와 북방문화의 절묘한 교차점이기에 그렇다. 그 흔적의 일단이 이번 발굴조사로 드러난다면 춤을 출 일이지만 적어도 그런 기대 하나쯤 가지고 이번 발굴조사를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은 울산시민 모두의 즐거움이지 싶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