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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태국 푸켓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부부동반으로 간 나들이라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 않던가. 그 말이 딱 맞는 여행이 되고 말았다.
 도착한 날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새로 산 선글라스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 거기에다 보석상에서 진주목걸이를 사려는 나를 마뜩찮아 하는 남편 때문에 기분이 상해 버렸다. 바닷가에서 물안경과 모자도 잃어버렸다. 마음을 다잡고 즐거운 여행이 되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기분은 쉬이 풀어지지 않았다.
 

 가라앉은 마음과 달리 푸켓의 풍경은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배를 타고 도착한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나자 제비집을 채취하는 동굴로 안내됐다. 바닷가에 제비집을 짓는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집제비였고 이곳의 제비는 남방제비라고 불리는 바다제비였다. 그런데 왜 제비집을 채취한단 말인가?
 

 제비가 지은 집은 황제의 음식이 된다고 했다. 바다제비는 비바람과 적들의 침입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높은 바위 틈새나 동굴 속에 집을 짓는데, 해초와 생선뼈에 타액을 섞어 짓는다고 한다. 해초로 지어진 제비집이라면 요리의 재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 까마득히 높은 곳에 제비집을 지었던 흔적이 보였다. 동굴 바닥에는 제를 지냈던 흔적도 남아있었다. 제비집을 따기 위해 위험한 저곳에 올라야 했기에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을 터였다. 장대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목숨을 담보로 제비집을 따는 사람과 채취한 그것을 요리해 먹는 사람이 동시대에 함께 살고 있었다. 
 

 중국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건륭제는 아침마다 제비집 수프를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무병장수해 역대 가장 긴 재위기간을 누렸다. 그것이 제비집 수프 덕분이라고 믿었는지 서태후까지도 이 요리를 별미로 먹었다고 전해진다.
 

 황제가 먹었다는 진귀한 제비집 요리는 황제가 사라진 지금은 누가 먹는단 말인가. 구하기가 어려운 만큼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비싼 값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목숨을 걸고 제비집을 따 내리고 한쪽에서는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더욱 오래 살기 위해 제비집 요리를 먹는다고 생각하니 여행지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다. 그러잖아도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던 터였다.
 

 욕망은 채울수록 바벨탑을 쌓듯이 더 채우고 싶은 속성이 있다. 욕망의 커튼을 들춰보면 배려나 공존의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바다제비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집을 빼앗기는 바람에 한 번만 지어도 될 집을 또 다시 지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리하게 되어 급기야 제비의 타액에서는 붉은 피가 섞어 나온다고 한다. 높고 가파른 곳에 있는 것을 위험을 무릅쓰고 따 내리는 것은 사람들이다. 굳이 아니 먹어도 되는 것을 기를 쓰고 먹으려는 사람의 욕망이 놀랍기만 하다. 보금자리를 어렵사리 마련한 바다제비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생태계의 먹이사슬 구조를 생각해봐도 사람의 욕망은 지나치다.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 중에 삭스핀이 있다. 삭스핀은 상어지느러미로 만드는 음식이다. 상어를 잡아서 가슴과 등에 있는 지느러미만 싹둑 잘라내고 상어는 바다로 던져 버린다. 상어에게 지느러미는 방향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바다 속으로 던져진 상어는 더 이상 헤엄을 칠 수가 없다. 방향을 잃어 물길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상어는 피를 흘리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덩치가 큰 상어가 물속에 가라앉아 저보다 훨씬 작은 물고기들의 밥이 되니 바다 속에도 생태계가 교란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중간층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머리와 꼬리만 있는 꼴이다. 머리가 구십을 차지하고 꼬리들이 남은 열 개에 매달려 나누어야 하는 세상이다. 왕조시대는 끝났건만 슬프게도 모든 것이 세습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제비집 수프를 먹고 삭스핀을 먹는 머리들이나 절벽 위에 매달린 제비집을 따 내리는 꼬리들에게도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오르면 더 오르고 싶고 가지면 더 가지고 싶은 사람의 마음 앞에서 나는 얼마나 초연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신념이 절대로 바뀌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일까? 굳이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진주 목걸이를 가지고 싶었던 것도 욕망을 키우는 작은 씨앗일 수 있다. 하지만 '욕망의 전차'가 최고의 자리로 모시겠다고 내 앞에 선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명쾌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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