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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필자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50대의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하다. 1998년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함이 우리 군에 격침됐다. 침몰한 잠수함을 인양해서 확인해 보니 가관이었다. 조사 결과 잠수함에 있던 필름과 서류, 그리고 주민증 등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과 관련된 증거들이었다. 이후 국정원은 민혁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고 하영옥, 김영환 등이 조직원으로 지목됐다. 그 때 드러난 인물이 이석기다. 당시 민혁당 서열5위였던 이석기는 3년간 도피생활 후 2002년 5월에 검거됐다. 그 인물이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사면 복권됐고 민주당과의 야합으로 우리 정치권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 그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란 신분을 이용해 전력 공급 중단 시 방송·통신의 대응 매뉴얼이나 한국형 발사체 조기 개발 관련 보고서 등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정부에 요구해 상당수를 손에 넣었다.

통진당의 실체를 아는 이들은 놀랄 일도 아니지만 녹취록과 후속 반응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경악하고 있다. 이석기 의원이 이끄는 지하 혁명조직이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종교 시설에서 가진 비밀 모임의 대화 내용은 간간히 보는 북한 중앙방송 수준이다. 이석기 등 참석자들이 대한민국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북한이 대한민국을 공격하면 자신들이 선봉에 나서서 우리 주요 기간 시설을 습격·파괴하는 방안을 논의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부인하던 통진당이 태도를 바꿨다. 전날까지는 이 모임 자체를 부정하다가, 녹취록이 공개되자 "이석기 의원을 강사로 초빙해 정세 강연을 듣는 자리였다"고 했다. 이석기는 직접 나서 녹취록 자체가 국정원의 날조라고 주장했다. 한술 더해 이번에는 첩자가 있었고 그 첩자를 국정원이 거액에 매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빨갱이'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부담스럽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댄데 '빨갱이' 운운하느냐고 당장 돌팔매질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빨갱이'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엄연히 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마취제처럼 복용한 반공세대들에게 '빨갱이'는 피를 끓어오르게 할 만한 단어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빨갱이'는 그런 따위의 통치이데올로기는 아니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사회적 인물 유형이 '빨갱이'다. 음지에 숨어서 국가 전복을 모의하고 환한 날엔 넥타이 질끈 올려 매고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어 보이는 이들이 '빨갱이'다. 야합이든 불륜이든 가리지 않고 국회 입성의 날을 준비하고 목적을 이룬 후엔 가차 없이 순혈주의로 빨갛게 물들이는 이들이 '빨갱이'다. 실체가 드러나면 우선은 부인하고 여론을 살핀 뒤 협잡과 뒤집어씌우기로 패악을 떠는 이들이 '빨갱이'다.

한 국가의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국가안전의 시스템이 굳건하게 유지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계층의 서로 다른 의견들이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는 유기적인 기능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빨갱이'는 정상적인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을 비틀고 싶어 한다. 스스로 상대의 약점에 기생해 끊임없이 문제를 야기하고 이를 양분으로 세포번식을 해나가는 속성이 '빨갱이'의 유전인자다. 진보가 '빨갱이'로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은 진보의 속성이 안일함과 나태함의 뒤통수를 때리기 때문이다. 한방 맞고 정신을 차리는 사회는 '빨갱이'의 준동을 허용하지 않고 진보와 결합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한방 맞고 나서 왜 맞았는를 두고 멱살 잡고 부대끼는 사회는 진보의 옷으로 위장한 '빨갱이'의 준동을 양성화하는 꼴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난번 제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통합진보당이 벌인 부정투표 이야기와 그들의 '빨갱이' 이미지 청산과정을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종북세력이 한창 주가를 올렸던 지난 1990년 중반,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종철씨가 최근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에 대해 몇가지 평가를 내렸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향해 던지는 종북세력이라는 단어는 유연한 표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에게 종북이라는 말이 오히려 약하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수령론과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대한민국을 북한처럼 만들자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이번에 드러난 녹취록은 생생한 그 증거가 됐다. 커튼 뒤에 몸을 감추던 인물들이 이제 넥타이를 매고 국가기밀을 요구하고 있다. 넥타이를 풀면 여전히 커튼이 가려졌고 그 뒤에서 '국가전복'을 이야기 했다.

세상이 변했다. 우리 사회가 유연해진 것인지 빨갱이와 종북의 구분법이 모호해졌다. 그 틈을 노린 그들은 민족이라는 이름의 감성자극을 특효약처럼 팔며 촛불로 세확산을 꿈꿨다. 밤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면 천하가 벌겋게 달궈지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뒤덜미가 잡힌 지금이다. 바람의 세기를 조절하며 다시 촛불을 쳐들 순간이 온다는 믿음이 깔린 발언이 쏟아진다. 협잡이고 매수다. 조작이고 탄압이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외친다. 바람이 분다. 잠시 촛불을 숨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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