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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한실마을. 한실 마을은 색깔이 다르다. 여름이 끝난 자리 연두와 초록이 물러간 여백을 가을빛이 채워가고 있었다. 오지의 삶을 순리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의 눈빛은 맑다. 예전 같으면 10여일 전부터 명절 준비가 한창일 시골이지만 팔순을 넘긴 노인들이 대부분인 한실 마을의 추석은 그저 '기다림' 하나면 충분한 듯 보였다. 그래서그런지 한실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다가올 추석, 고향을 찾아올 자식들을 기다리며 추석맞이에 들떠 있었다.

   
▲ 반구대 암각화를 지나 차 한대가 겨우 다닐만한 꼬불꼬불한 산길 마지막 급 커브를 돌아 나오면 산골짜기에 숨어있는 울산의 오지, 마지막 고향으로 불리는 한실마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창균기자 photo@ulsanpress.net

1962년 사연댐 건설로 사라진 마을 등뒤로
반구대 지나 꼬불꼬불 산길따라 가다보면
지금도 소키우고 군불때는 오지 한실마을
마을에 남은 노인들 기다림만으로도 설레

40도를 오르내리는 등 한여름 폭염은 뒤로하고 선선한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한다. 지독하게 무더웠던 여름은 가고 언제나 올까 걱정했던 가을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 가을이 무르익지 않아서인지 설익은 감은 단맛과 풋내가 함께 묻어 나온다. 그래도 가을이고 추석이다.
 한실마을은 1962년 박정희 정권이 조국 근대화의 첫걸음으로 울산공업단지를 조성하기로 결정한 후, 공업용수를 대기위해 거대한 인공 댐인 사연댐을 건설하면서 대부분이 사라졌다. 당시 100여호 600여명의 주민들 대부분은 마을을 떠났고, 그래도 고향에서 살겠다는 사람들이 물에 잠기지 않는 마을 위쪽으로 이주해 다시 마을이 생겼다.

# 갈수 없는 수몰지역 애잔함 남아
1962년부터 1965년 사이에 건설된 사연댐은 높이 46m, 길이 3000m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였다. 이때문에 너른 들판 위에 우뚝 서 있던 대곡초등학교는 차오르는 물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기름진 농토도 깊은 물속에 잠들었다.
 한실마을은 반구대를 지나 차 한 대가 겨우 다닐만한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십여분를 달리면 만날 수 있다. 산속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에는 17가구가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 한실마을 최고령자인 안봉순(89)할머니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인 안봉순(89) 할머니는 열아홉에 시집와 현재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안 할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 마침 둘째 아들인 박성길(68)씨가 와 있었다.
 울산 시내에 사는 박씨는 창호지가 떨어졌다는 할머니의 전화에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안 할머니는 수몰지역에서 살았다. 조상들을 모신 마을을 차마 떠날 수 없어 남았다고 했다. 집이 물에 잠기기 전 뜯어와 조립(?)해 새 보금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박 씨는 "방이 두개밖에 안 되는 좁은 집에서 7남매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면서"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가족들 모두 북적거리며 살 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며 웃었다.
 박 씨는 "명절이면 식구들이 다 모이는데, 이게 다 어머니가 고향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지 않겠느냐"며 "어머니가 오래 동안 건강하게 지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현재 한실마을에 살고 있는 17가구 중 토박이는 7가구밖에 되지않는다. 그나마 모두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안 할머니 집을 뒤로하고 마을을 거닐다 소울음 소리가 들리는 집이 있었다.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소를 키우는 장봉금(70)할머니 댁이다.
 밭을 메다 소에게 여물을 주기위해 집으로 돌아 왔다는 할머니에게 "추석준비 안 하세요" 물었다.
 할머니는 "시골의 추석이나 도시의 추석이 별반 다를 게 없다"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막 시집왔을 때는 한 일주일 전부터 추석준비를 시작 안했나. 음식 만들어 처마에 메주 엮듯이 음식 담은 소쿠리들을 메달아 놓으면 정말 명절 분위기 났었는데. 요즘은 음식도 차례 지낼 만큼만 하고 또 김치냉장고 같은 게 있으니 미리 준비할 필요도 없고… 참 편해졌제"
 장 할머니는 사연댐에 물에 잠기고 한실마을로 사람들이 이주한지 약 1년 여만에 마을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소를 키워 자식들 대학까지 다 시켰다는 장 할머니는 지금 황소 한 마리를 겨우 돌보고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이어서 마음대로 짐승을 키우지 못하는데다가 나이가 들면서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에도 장 할머니댁은 시끌벅적할 모양이었다. 친척들이 다 모이기 때문이다.
 장 할머니는 "우리가 큰집이라 친척들이 다 여기로 온다"며 "우리 아들은 이집을 절대로 팔지 말라한다. 도시에 살다보니 가끔은 이런 시골에서 하루 이틀 자고 가는게 좋다고 말하더라"고 말했다.
 여물주기를 마친 장 할머니는 마당에 펴 놓은 고추를 뒤집었다. 추석에 올 자식들과 친척들에게 나눠줄 고추란다.

   
▲ 박수성(85) 할아버지가 고향에 돌아올 자녀들에게 나눠줄 콩을 고르고 있다.

# "토박이들은 떠나고 외지인들은 청정지역이라 몰려들어"
사연댐 호수 가까이 가지못하도록 설치한 휀스를 따라 걷다 박수성(85)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머니와 둘째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할아버지는 외지인인 기자를 보고 사연댐을 향한 원망을 쏟아냈다.
 "저 건너에 우리 어른들 산소가 다 있는데 배를 못 띄워 몇 년 째 가보질 못하고 있다. 자기들은 성묘도 가고, 차례도 지내면서 우리는 왜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식수 보호도 좋지만 명절때라도 가 볼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실마을에서 평생을 사셨다는 박 할아버지는 "예전엔 명절이 되면 마을에서 장구치고 징치고 하는 풍물도 있었는데 몇년전부터는 다들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런 것도 이젠 없다"며 "토박이들은 대부분 도시로 나가거나 늙어서 죽어 사라지는데, 외지인들은 여기가 청정지역이라고 들어오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그래도 추석이 되면 찾아 올 손주들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는 할아버지는 "내가 5남매를 봤는데 다들 결혼도 하고 해서 손주들도 함께 오는데 시끄럽고 정신없다"며 "마을도 나처럼 늙고 기운이 떨어져 가는 것 같지만 추석이나 명절엔 예전같이 사람사는 기분이  난다"며 웃었다.

 추석을 일주일여 앞둔 한실 마을. 전을 굽고 한바탕 신명나게 놀 풍물을 준비하는 등의 모습은 볼수 없었지만 고향을 찾아올 친척들과 자식들에게 나눠줄 고향의 맛을 준비하는 손길은 바빴다.
 울산 가까이에서 우리가 시골이라고 부르는, 지친 심신을 달래줄 수 있는 고향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 가을 채소 키우기에 여념이 없는 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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