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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 선생님 그곳에서 평안하신지요?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지 어느덧 43년이 흘렀습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우리나라는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광복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찾아온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온통 폐허의 잿더미에 불과했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의 모범국가로 발돋움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부해졌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기틀이 확고해졌습니다. 문화와 예술의 품격도 한층 높아졌습니다. 대한민국의 일등이 곧 세계 일등이라는 등식도 성립되고 있습니다.

 일등의 자리를 수성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분야에서 세계 일등을 향한 연구와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압축성장을 기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기적의 밑거름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국민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중심에 외솔 선생님의 후손인 울산사람들이 있습니다.
 허허벌판의 땅에 공장을 지어, 전국 팔도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오늘의 부를 일구어냈습니다. 작은 차이를 뛰어넘어 큰 울산 건설이라는 길에 마음을 하나로 모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소통이었습니다. 원활한 의사소통이 없었다면 같은 목표를 향한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통의 도구는 말과 글이었습니다.
 다른 말, 다른 글을 썼다면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고, 그 만큼 목표를 향한 발걸음은 더딜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글인 한글을 목숨처럼 여겼던 외솔 선생님의 한글사랑이 곧 나라사랑이고 겨레사랑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일제의 갖은 위협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외솔 선생님의 결기와 용기에 존경과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외솔 선생님 사후에 목숨과도 같은 한글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데 대해 참으로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한글을 통해 우리의 얼과 혼을 가르쳐야 할 국어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경쟁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영어사전과 일어사전은 갖고 있어도 국어사전을 갖고 있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요즘 현실입니다.
 우리의 말을 쓰기보다는 외국어를 잘 하는 것이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굳이 외국어를 쓰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외국어를 남발하는 외국어 사대주의가 팽배해있습니다.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 어린이들의 혀를 성형수술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외솔 선생님이 살아서 이런 광경을 보셨다면 어떤 꾸지람을 내렸을지 참으로 답답한 심경입니다.

 반면에, 인도네시아 찌아지아족은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할 공식언어로 한글을 채택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라의 격이 높아지면서 상당수의 국가들이 한글을 배우는 과정을 만들고 있습니다. 유엔도 한글의 창제원리를 담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했으며, 국제공용어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안에서는 멸시와 천대를 받고, 바깥에서는 우수성을 인정받는 한글의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집니다.

 그나마, 최근 한글을 지키고 널리 보급하는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된 것도 이 같은 요구와 바람이 통한 결과입니다. 외솔 선생님을 비롯하여 한글을 목숨처럼 여겼던 선열들에게 조금은 면목이 서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울산에서는 한글을 문화와 예술과 접목시킨 축제도 열렸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 열린 행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의 소중함, 한글을 지키기 위해 애써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외솔 선생님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열려 더욱 값지고 의미있었습니다.

 "한글이 제대로 서야 나라가 제대로 선다"는 주옥같은 선생님의 말씀이 한층 깊어진 이 가을날 더욱 가슴에 새겨집니다.

 한글을 창제했던 세종대왕의 마음, 한글을 목숨처럼 여겼던 외솔 선생님의 한글사랑이 활짝 꽃필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하겠습니다. 외솔 선생님, 그곳에서 안식을 누리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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