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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희는 줄다리기놀이이다.

 우리민족은 오래전부터 줄다리기놀이를 즐겨왔다. 줄다리기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도작문화권에 있는 대부분의 민족이 행해오고 있는데 이를 보면 발생 요인도 농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세시지 형초세시기와 당나라 봉연이 쓴 문견록에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이전부터 줄다리기가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이 후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놀이로 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즐겨 하고 있다. 우리의 줄다리기는 쌍줄을 사용하는데 대해,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외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암줄과 숫줄을 따로 만들어 행사장에서 결합시켜 당기는 것이 쌍줄이고 한가닥의 긴 줄을 마주 잡고 당기는 것이 외줄다리기이다. 우리의 쌍줄다리기는 외줄다리기 보다 훨씬 오락적 묘미가 있을 뿐만아니라 우리민족 특유의 여유가 있다.

 승부를 가리기 이전에 줄을 준비하고 어르는 행위는 유희적 기능과 함께 주술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대동놀이로는 가장 인원이 많이 동원되고 유흥도 가장 신명나는 전통적 민속놀이이다.

 울산에서도 오래전부터 줄다리기놀이가 행해져 왔는데 그 명칭이 별나다. 마두희라는 특유의 표현을 하고 있다. 울산 최초의 읍지인 학성지에 그 내력이 잘 나타나 있다. 줄다리기에 관한 기록물로는 학성지가 가장 구체적인 기록을 하고 있는 고서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만큼 당시 읍지를 편수하는 고을의 지도층에도 마두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두희라는 명칭은 동대산이 바다로 빠져드는 형세가 말머리 같은데 고을쪽을 마다하고 바다로 달려가니 음양오행설이 뿌리 깊게 내재되어 있던 시대라서 고을민들이 우려한 나머지 이의 구제 방편으로 줄다리기의 대동놀이를 빌어 고을 쪽으로 당기는 의식을 한 것이 마두희였다.

 이 얼마나 의미 있는 발상인가. 육중한 자연의 형세를 인간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기에 고을민의 우려하는 민심을 위로하는 요식행위를 대동놀이에 접합 시켜 당면 문제를 해결 하고자 했던 선인들의 민심 수습책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이래서 마두희가 여느 줄다리기와는 차별화 된다고 할 수 있다. 유희적 요소가 강한 오락적 줄다리기는 단순한 승부의 결과로 끝이난다. 그러나 마두희는 유희적 기능 이전에 하나의 거대한 의식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수백년 이어오던 전통적 민속놀이인 마두희가 1936년의 행사로 끝을 맺었다. 이 시기는 일제의 민족혼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민족적 성격이 다분하고 군중의 운집이 예상되는 행사는 남김없이 철폐 시켰다.

  이 후 전통의 마두희는 자취를 감추고 일본식 줄다리기인 승부욕에 집착된 외줄다리기를 운동회등에서 행해왔다. 각급 학교 운동회 때나 마을단위의 체육행사에 이 외줄다리기는 빠지지 않고 주 행사로 진행해 왔다. 단순한 경기로만 인식 하기에는 마음이 착잡하다. 수백년 이어온 마두희의 원형을 모른 채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중구청에서 마두희 복원에 관심을 가지고 지난해부터 이를 실행하고 있기에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올 가을에도 시연할 채비를 하고 있다. 아직은 원형의 복원에 미흡 하지만  다시 한번 박수를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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