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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100년만에 돌아온 양산 부부총 유물 특별전시는 양산유물전시관에서 내년 1월 12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양산시 북정동 양산유물전시관은 지난 15일부터'백년만의 귀환-양산 부부총(夫婦塚)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유물은 일제가 1920년 파헤친 후 도굴해 도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동 말안장과 부부의 목걸이 등 보물급 유물 68점. 양산시와 양산유물전시관은 지난 1년간 일본 도쿄박물관을 설득해 임대 형식으로 유물들의 고향 나들이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 신라귀족 또는 지방호족 무덤 추정
사적 제93호인 부부총은 양산시 북정동 고분군에 자리 잡고 있다. 특별전이 열리는 양산유물전시장과 직선거리로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이다. 부부총이라 불리는 것은 부부로 추정되는 유해가 같이 매장돼 있다. 시신 안치부 바닥에 남성과 여성이 나란히 누워있고, 입구 쪽에 순장자로 보이는 별도의 인골 3구가 있었다.
 

6세기경 조성 신라귀족·호족 무덤 추정
임나일본부설 증명 위해 조선총독부 발굴
1938년 도쿄박물관 반출 100년만의 귀향
내년 1월까지 양산유물전시관 무료 관람



 부부총은 횡구식석실묘(앞트기식돌방무덤)로 가로 5.4m, 세로 2.2m, 봉분지름 27m, 높이 3m 정도의 규모다.


   
▲ 곡옥몰걸이.
 무덤 구조상 6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분군 동쪽 높은 곳에서 서쪽 방향으로 일련번호로 10번째여서 '북정리 10호분'으로 불린다.


 북정동 고분군은 북정동 성황산 서쪽 산등성이 일대에 20여 기의 고분군으로 형성돼 있으며, 얕은 골짜기 하나를 두고 남쪽으로 사적 제94호인 신기리 고분군이 인접해 있다.


 입지적인 면에서 가야적인 특성을 보이는 반면 무덤의 형태나 형식은 신라적인 특성을 따르고 있다. 출토 유물은 경주지역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 부부총은 신라의 귀족이거나 신라왕조에 흡수된 양산지방의 호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에 있던 금관가야의 지배집단이 신라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양산지방으로 이주해 고분을 축조했다는 의견도 있다.

#일제강압기 조선총독부 강제 발굴
부부총의 발굴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 11월 13일부터 25일까지 13일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이뤄졌다. 총독부 고적조사위원인 우마즈카 제이치로(馬塚是一郞)와 총독부 직원 오가와 케이기치(小川敬吉)가 발굴 책임을 맡았다.


 일제의 고분 발굴은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학문적 뒷받침이 될 만한 증거를 찾아 그들의 조선 식민지화 정당성을 찾고자 하는데 있었다.


 임나일본부설은 야마토 왜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해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했다는 설.


   
▲ 금동관.
 하지만 정치적 의도에 의해 무작위로 파헤쳐진 고분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확증할만한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고, 유물에 대한 약탈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부부총은 이후 동아대박물관에 의해 1990년 4월 13일부터 9월 20일까지 약 5개월간 내부구조 확인을 위한 추가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 489점 달해
부부총 출토유물은 금동관을 비롯해 귀걸이, 목걸이 등 489점으로 보고돼 있다.


 남성은 금동관을 쓰고 은제허리띠, 금제귀걸이, 금제목걸이, 은제반지, 금동제신발 등을 몸에 치장했고, 자루 끝에 둥근 세 개의 환을 붙여 만든 세둥근고리자루큰칼이 좌우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여성은 자작나무 화관모를 쓰고 은제허리띠와 금제귀걸이, 마소노옥 팔찌, 은제팔찌 등의 장신구로 치장했고 주변에 작은 칼과 가위가 놓여 있었다.


 부장칸에서는 뚜껑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그릇받침 등의 다양한 토기류와 철제말발걸이, 청동제말방울 등 마구류가 나왔다. 


 이들 모두 일본에 반출돼 1938년 3월 조선총독부에 의해 도쿄박물관에 기증돼 현재까지 도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 금제굵은고리귀걸이.
 1958년 제4차 한일국교정상화회담 때부터 문화재 반환문제가 공식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1962년 제6차 회담 때 한국이 요구한 부부총 유물 환수는 도쿄박물관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한 채 1965년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기본조약이 조인되고 말았다.
 
#중앙 연계 정치세력 갖춘 인물 추정
무덤의 주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다양하다. 유물의 성격에 비춰, 당시 양산 일대에서 중앙과 연계된 강력한 정치적 세력을 갖춘 인물의 묘로 추정하는데 당시 삽량도독인 김서현 장군 부부의 묘라고 하기도 하고, 김서현 장군의 사위가 산성의 성주로서 백제군과 대치 중에 전사해 이곳에 묻혔다는 설도 있다.


 누구의 무덤인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단서는 없다. 하지만 부장유물을 통해 무덤 주인의 신분은 가늠해 볼 수 있다.


 가령, 허리띠꾸미개는 금제, 은제, 금동제로 나뉘는데 착용한 사람의 지위를 반영하는 것으로 금제는 왕족 이상이 착용할 수 있으며 이들은 은제와 금제도 소유한다. 금동제와 은제는 그 아래의 지배층이 쓴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 환수 새 출발점 기대
이번 특별전은 도쿄박물관과의 대여협약 체결로 성사됐다. 양산지명 600주년 해인 올해 전시관을 개관했으나 금조총과 함께 6세기 양산의 고분문화를 잘 보여주는 부부총 유물의 진품을 보여줄 수 없어 전시관 개관 전부터 적극적인 협의에 나서 이뤄졌다. 유물전시관 건립을 계기로 우리 지역 문화재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 제고와 시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이번 전시회는 출토 93년 만에 고향방문을 성사시켰다는 점 외에 세계 5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도쿄박물관이 한국의 기초자치단체가 설립한 박물관과 협약을 통해 진행하는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 바리 그릇받침.
 도쿄박물관에서조차 공개되지 않은 부부총의 유물을 한 곳에서 관람할 수 있는 첫 전시라는 점과 신라 고분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학계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부부총 출토 유물 중 최고로 치는 금동관이 운반과정에서 훼손될 우려가 있어 이번 전시에서 제외된 것을 비롯해 전시품이 부부총 출토 유물의 일부인 68점과 관련자료 20여 점에 그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환수가 아닌 대여여서 전시를 마치면 다시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는 점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회는 해외로 반출된 우리 유물들의 환수에 대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낳고 있다. 문의 양산유물전시관 055-392-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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