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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가진 세계의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울산도 태화강이라는 강을 기반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태화강'이라는 이름은 고려 신종(803년)때 김극기의 글에서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태화사가 신라 선덕여왕 때(643년) 건립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시점에서부터 '태화강'으로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중국으로 떠났던 자장국사가 당나라 오대산 태화지 연못을 지나다 그곳의 신인인 용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자장은 귀국한 후 그에 대한 보답으로 울산에 절을 지어 복을 빌었는데, 그 절이 바로 태화사이다. 태화사는 태화강 용금소 인근으로 추정된다.


   
▲ 대곡박물관은 울산 태화강을 중심으로 신라시대에만 10개의 사찰이 존재할 만큼 불교 문화가 융성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은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울주군 상북 등억리 간월사지의 북쪽 3층석탑의 모습. 지난 1984년 발굴된 간월사지에서는 보물제370호인 석조여래좌상 등이 발견됐다. 이창균기자 photo@ulsanpress.net

석남사·간월사·백련사·장천사 등
울산서부지역 대표 불교유물 모아
대곡박물관서 내년2월까지 특별전

# 태화사·동축사 등 신라시대 10여개 사찰
앞서 진흥왕(540~576)때 창건된 동축사도 태화강과의 인연이 깊다. 동축사 창건 설화에 따르면 서축의 아소카 왕이 보낸 황철(黃鐵)을 싣고 온 배가 옛 울산의 지명인 하곡현 사포에 도착한다. 이 배에는 부처하나, 보살상 2구가 실려 있었다. 이를 안 진흥왕은 삼존불을 봉안하기 위해 동축사를 창건했다. 하곡현 사포는 태화강 하류로 추정되고 있다. 태화사와 동축사는 울산과 태화강이 우리나라 불교의 자긍심이라 할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닌다. 어디 그뿐인가.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신라 때 울산지역에만 10개의 사찰이 태화강을 중심으로 존재했음을 전한다. 울산대곡박물관(관장 신형석)이 최근 연구한 결과를 보면 삼국유사에는 태화사와 동축사 외에도 가슬갑사, 압유사, 혁목암, 혁목사, 반고사, 취선사, 영취사, 망해사 등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는 신라불교에서 울산지역의 위상이 얼마만큼 높았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선종을 도입한 도의선사가 신라 헌덕왕 6년(824년)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울주군 상북 가지산 자락의 석남사.
 울산대곡박물관이 지난  22일부터 열고 있는 특별전 '울산 태화강에서 만난 불교'는 태화강을 중심으로 꽃 피웠던 울산 불교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이 특별전에서는 조선시대 언양현으로 불렸던 언양, 상북지역과 경주에 속했던 두동, 두서지역에 있었던 석남사, 간월사, 장천사, 백련사에서 나온 불교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백련사라는 새로운 사찰이름을 처음 확인하고, 석남사 승탑하대석에 코끼리상이 조각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공개하는 의미도 있다.

# 울산 불교 문화 위상 방증
이번 전시는 울산의 불교문화 가운데 서부지역에 한정하여 (1)울산의 불교문화를 주목하며, (2)간월사와 간월사지, (3)장천사와 장천사지, (4)방리 폐사지-백련사, (5)석남사 등 5부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를 위해 울산대곡박물관은 석남사, 통도사 성보박물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등에서 유물을 대여했다.

 주요 전시물로는 『언양현 호적대장』(울산시 유형문화재 제9호), 간월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 『석남사 사적(石南寺 事蹟)』을 비롯한 전적류, 업경대(業鏡臺)·용가(龍架) 등의 불교공예품, 석남사 소장 신중도(神衆圖) 등의 불화(佛畵), 월하(月荷)계오(戒悟, 1773~1849)의 문집 목판 등 80점등이 있다.

   
▲ 간월사지 발굴에서 나온 석재들.
    연양현 호적대장은 조선 정조 때 작성된 것으로 간월사 승려들의 호적이다. 이 책을 보면 간월사의 승려 숫자는 1711년 22명이었는데, 이는 같은 시기 석남사 21명보다도 더 많은 것이다. 그러나 1777년,1798년, 1813년 승려의 수는 3명으로 크게 줄었다. 석남사도 1777년 7명, 1798년 8명으로 줄었다. 이 호적대장은 조선후기 신분제도의 변화 연구와, 불교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금동여래입상·금동보살입상 첫 공개
울산지역 사찰 가운데 최초(1984년)로 발굴이 이뤄진 간월사지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은 이번 전시회에서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 소형불상은 동아대학교가 발굴을 진행하면서 간월사지 금당터에서 발굴한 것으로 그동안 동아대 석당박물관에 보관돼 있었다. 부식 정도가 심해 세부 표현은 알 수 없지만 옷주름, 대좌 등을 볼 때 제작시기가 8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간월사지 출토유물은 1984년 발굴조사 이후 울산에서 공개된 적이 없었다.


   
▲ 울산지역 사찰 가운데 최초(1984년)로 발굴이 이뤄진 간월사지에서 출토된 금동보살입상(왼쪽)과 금동여래입상.
 이번 전시회에는 그동안 상북 석남사에서 보관하고 있던 유물이 많이 선보인다. 4곳의 사찰 중 석남사가 유일한 현존 사찰인 탓이다. 석남사 소장 불교 문화재는 그동안 전문가에 의해 실태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이번처럼 많은 유물이 외부로 나와 전시된 적은 없었다.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목조업경대(木造業鏡臺)와 용가(龍架)다.


 염라대왕의 상징물인 업경대는 전생의 죄업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세유고 생전에 지은 죄를 모두 털어놓게 했다고 한다. 조선후기에 업경대의 조성이 활발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현재 전국 사찰에서 10여점만 전하고 있다.


 용가는 사찰 법당 안 서쪽 대들보에 매달아 놓았던 것으로,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이다. 재미있는 것은 반야용선에 매달려 있는 '악착동자'의 이야기다.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을 타기 전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다가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타지 못한 동자들이 배에서 배려준 밧줄을 붙잡고 매달려 극락으로 갔다는 것이다. 인근 통도사 등 대부분의 사찰 용가의 경우 동자 한명이 매달려 있지만, 석남사 용가의 경우 3명의 동자가 매달려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전시 이해 돕기 위해 '도록'도 제작

   
▲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 용가. 아미타여래가 다스리는 서방극락으로 인도하는 반야용선에 '악착동자'가 밧줄에 매달려 있는 것으로, 사찰 법당 안 서쪽 대들보에 매달아 놓았던 것이다. 목조업경대와 함께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울산대곡박물관은 전시 이해를 위해 150쪽 분량의 전시도록을 만들었다. 이 도록에는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조사·연구한 내용도 수록돼 있어 관심을 모은다.


 무엇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울산지역에 있었던 사찰이 10개소나 된다는 점을 정리해놓았다.


 또 대곡댐 건설로 수몰된 울주군 두동 방리 폐사지가 백련사(白蓮寺)라고 하는 문헌기록을 찾아내 정리했다. 폐사지에서는 건물터 6개동과 우물 1기, 배수로 2곳, 석열(石은列) 2곳 등 19개의 유구가 발견됐다. 사찰의 건립시기는 8세기 전반으로 추정되고, 조선중기까지 존속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대곡박물관은 이번에 백련정을 지은 최남복이 쓴 '백련정 기문'에서 이 사찰을 백련사라고 불렀음을 확인했다.


 이밖에 석남사 승려 월하(月荷)계오(戒悟)와 대곡천 유역에 백련정(백련서사)를 짓고 백련구곡(白蓮九曲)을 경영했던 도와(陶窩) 최남복(崔南復, 1759~1814)과의 교유 관계 조명 등이 눈길을 끈다. 최남복은 백련구곡 중 제2곡을 장천사의 침계루(枕溪樓)로 설정해 놓았다. 장천사 폐사지는 현 대곡박물관과 대곡댐 사이로 2000년 발굴조사에서 건물터 5동, 담장터, 배수로, 석조 등과 통일신라시대 연화문 막새 등이 출토됐다. 유물을 통해 장천사는  8세기 전반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했다.
 

#지역 불교문화 집대성한 전시행사 많은 관심

   
▲ 염라대왕의 상징물인 목조 업경대. 전생의 죄업을 비춰주는 거울로 업경륜이라고도 한다.
이번 특별전은 울산지역의 불교문화를 다룬 또 하나의 성과물로, 관련 분야에서 많이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한 지역의 불교문화를 집대성한 전시행사가 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어서 전국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실제 취재당일 문화재청 최선일 문화재감정위원 등이 대곡박물관을 방문해 전시 유물들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최 위원은 "그동안 연구자들조차 접근할 수 없었던 사찰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면서 "울산의 불교문화가 우리나라 초기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신형석 울산대곡박물관장은 "이번 특별전은 서부 울산 지역사를 불교라는 창구를 통해 살펴보고, 이를 통해 지역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특정 종교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지역문화의 다양성에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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