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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 김장을 담그는 날은 우리 모두의 날이었다. 절인 배추가 쌓인 마당 한켠은 유난히 분주하지만 활기찼다. 가족·친지들은 물론이고 이웃들도 한자리에 모인 그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상은 어떠한 진수성찬보다 넉넉했고, 한겨울 먹을양식을 준비했다는 것만으로도 온 가족 모두 마음이 든든했다.

 김장 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재미로 보쌈을 해서 김장김치와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특별히 비싼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어도 어머님이 손수 양념을 버무려 고이 속을 싸매 입에 넣어주셨던 노란 배추속은 알싸하면서도 달았다.

 구부려야 할때도 많고 허리 아픈 사람에겐 치명적이기도 하니 어쨌든 김장 하는날에 며느리 들은 이튿날 약 사다 먹어야할 각오를 해야 했다.

 또 김장 하는날에 온 식구가 모여 아버지는 김장독 묻으려고 삽으로 앞마당 꽃밭에 흑을 파내고 항아리를 묻고 겨우내 앞마당 꽃밭은 둥그런 항아리 뚜껑이 여러개 묻혀서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반찬이 없어도 그 항아리를 이것 저것 열면 배추 김치, 총각 김치, 시원한 동치미, 깍뚜기에 백김치, 보쌈 김치,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풍경은 어느새 지난날이 되어 기억 속에서만 아련히 자리잡고 있다.
 '김치는 우리의 문화요, 얼이다. 역사와 함께 해 온 김치는 조상의 슬기가 담긴 전통 식품으로 쌀밥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민족의 먹거리로….' 이 글귀는 농협 이 예전에 선포한 '김치 종주국 선언문'의 일부분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주요 식생활 가운데 하나인 '김치와 김장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유력하다는 소식이다. 오는 12월 우리의 김치가 유네스코 등재 판결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김치 종주국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김치가 세계 식품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가정에서 부터 우리 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  

   하지만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김장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주말이 아니면 부모님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기 어려운 맞벌이 시대, 사라져가는 김장문화를 아쉬워하기엔 지금의 팍팍한 현실이 안쓰럽기만 하다.

 김장을 다시 활성화시키자고 외치기만 하기에는 고단한 우리네 삶을 대신해 줄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때, 우리의 김장문화를 다시 한번 살려보는 것은 어떨까.

 올핸 배추와 무 등 김장채소가 풍년이다. 재배면적이 지난해보다 늘었고, 날씨가 좋아 작황도 매우 좋다. 이 때문에 배추와 무값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농민들은 요즘 김장채소 풍년에도 혹시나 정성스럽게 가꾼 무 배추를 출하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에 어깨가 무겁다. 이런 상황에서 각 가정에서 김장을 한 포기씩만 더 담아도 우리 농민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울산농협이 김장철을 맞아 '김장김치담기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로 했다. 11월 27일 오전 9시부터 온산농협 경제사업장에서 벌이는 '김장김치담기 페스티벌'은 우리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촌을 직접 찾아가 김장을 담근 뒤 가져가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믿고 먹을 수 있는 100% 국내산 농산물로 김장을 버무리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에서/순결한 피부/때깔 좋은 배추는 향기로왔다//소금으로 숨죽여 부드러운 속살에/무채 파 마늘 갓 미나리/곰삭은 젓갈 톡 쏘는 고춧가루 /내 고장 사투리 섞어 알싸하게 버무려서/켜켜이 입혀 항아리에 담는다//김장김치 포기김치 보쌈김치 백김치/아삭아삭 맛있게 익으면/어릴 적 어머니 치맛자락 잡고 걷듯/고국을 떠나살아도 그 손 놓을 수 없어라(김후란 시 '배추김치')

 사라져가는 옛것들이 소중해지는 요즘, 이 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김장은 사랑'이다. 김치 한포기로 서로의 마음을 달래고, 어린 시절의 맛, 온가족이 함께 먹던 밥상의 추억과 함께 따뜻한 온정도 느낄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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