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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욕(無慾)만 한 탐욕(貪慾)없습니다
그것 말고
강호 제군의
고만고만한 욕망
그것들이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의 진리입니다
 
자 건배

이는 고은 시집 <순간의 꽃>에 실린 시입니다.
 무욕을 탐하는 것만큼 큰 욕망은 없다고 합니다. 언감생심! 무욕을 탐하는 성인의 발뒤꿈치에도 닿지 못할, 범인(凡人)에 불과한 나는 순간마다 많은 것을 욕망합니다.

 어디선가 뮤즈가 나타나 내게만 전설을 속삭여주기를 욕망하고, 시가 될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기를 욕망합니다.

 이제 와 고백하지만 외람되게도 마음 저편 내가 욕망한 것 중 하나는 서덕출 문학상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욕망은 서덕출 선생을 만나고부터 싹텄습니다.

 2006년 11월 1일부터 2007년 1월 8일까지 울산작가회의는 제1회 서덕출 문학제를 개최했습니다. 당시 나는 서덕출 문학제 제전위원회 사무국장이었습니다. 서덕출 동요집 <봄편지>를 복간하고 동시동요사랑 백일장을 열고 세미나를 개최, 서덕출 선생의 문학정신을 재조명하고 굽은 손 호호 불며 영천에 영면해 계신 선생의 묘소 참배까지 몇 달의 일정을 보내며 우리들은 울산의 아동문학가 서덕출 선생을 알아갔습니다. 그의 삶에 마음 아팠고 외롭게 걸었던 문학의 길에 가슴이 아렸습니다. 소박하지만 위대한 삶이었습니다. 짧은 생애였지만 잊히지 않을 작품을 우리에게 남기셨습니다.

 다음 해에는 '울산이여 동시를 읽자'는 캐치프래이즈를 내걸고 작가들이 동시를 쓰며 울산에 동심을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서덕출 문학상이 제정되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받았으면 좋겠다고 감히 욕망했던 상. 세 번째 동시집 <동시는 똑똑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선생님은 내게 인연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갈망한 상이었는데 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두렵고 떨렸습니다.

 동시인으로 살아온 12년을 돌아보았습니다. 남창다리를 지나며 쓴 시 '달리기 시합'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던 날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선 통보 며칠 후에 만난 화이트 크리스마스. 눈도 내 당선을 축하해주려고 저리 푸짐하게 오시는구나. 떨린 마음 가누며 바라보았던 그날의 하늘. 동시란 단어, 달리기 시합이란 단어가 내게 아주 특별한 단어로 새겨진 곳. 서덕출 선생의 봄편지가 태어난 곳, 눈 내리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송이송이 눈꽃송이 흥얼거리며 선생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된 곳, 서덕출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시상식이 열리는 곳, 그곳은 바로 선생이 나고 자란 울산입니다. 내가 살던 울산입니다.

 무욕의 저 세상에서 이 세상을 보고 계실 선생님, 아직 이 세상 사람인 나는 고만고만한 욕망들을 날마다 탐하면서 살아가렵니다. 내가 탐하는 욕망이 부디 선생님 마음에 쏙 드는 욕망이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올겨울 눈이 많이 온다고 합니다. 송이송이 눈꽃송이 또 사방에 울려 퍼지겠지요. 세상 모든 죄를 덮는 눈이 오시는 날, 우리 모두 잔을 높이 듭시다. 그리고 이렇게 외치는 겁니다.
 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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