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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평소 자주 찾던 책방 몇 곳을 순례했다. 입시철 때문인지 책방의 전면은 논술과 관련한 책들이 즐비했고 평소보다 사람들도 많았다. 언젠가부터 책방들은 입시관련 책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베스트셀러와 할인도서를 목좋은 자리에 대접하고 있다. 인문학 서적 역시 언제부턴가 심리와 역사 철학서로 분류하던 고전적인 방식을 버리고 인문교양이라는 총체적 집합체로 자리해 버렸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관심사를 손에 쥐고 몰두해 있는 풍경이 참 편안하게 느껴지는 휴일 풍경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인문학 열풍에 빠졌다. 거의 모든 분야에 인문학적 통섭이 실험됐고, 인문학과 연결된 것이라야 대접받는 풍토가 생겼다. '밥'이 안되던 인문학이 '밥'을 만드는 인문학으로 변한 셈이다.

 사회가 인문학에 열중하는 분위기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인문학 열풍의 건강성이다. 인문학은 '학'이라는 무거운 질감과는 달리 우리의 일상이다. 일상의 체험이나 관념, 생각과 행동이 인문학으로 이어지는 것이지만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무거움이 고개를 떨군다. 우리가 숨쉬고 밥을 먹듯이 인문학도 우리 주변에 너무 가깝게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이같은 일상적인 것에 옷을 입히고 분칠을 한다. 경영에 인문학이 접속하고 과학에 인문학이 둥지를 튼다. 지향점은 '성공'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고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효용성'이 바탕에 깔려 있다. 최근엔 심지어 처세술이나 재테크에까지 인문학이 파고들어 '이기는 인문학'을 주문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인문학 열풍의 이상기류는 우리 사회에 다양한 형태의 문제를 쏟아내고 있다. 그 하나가 양극화다. 삶의 질이 양극화 된 지는 오래지만 지금은 생활이 아닌 생각의 양극화가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는 양상이다. 이른바 이념적 양극화다. 이쪽과 저쪽이 갈라져 거칠고 살벌한 언어를 쏟아낸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 지위에서 상층부를 차지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더 강하다. 자신의 믿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정당성을 기반으로 상대편을 적으로 내몬다. 문제는 이들이 내뱉는 살벌한 언어가 아니라 무책임함이다. 자신들의 한마디 말이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동이 아니라 주장이라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믿음의 토대가 스스로 체득한 '사실'이 아니라 이른바 '토마토 효과'처럼 맹목적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정의구현사제단의 한사람인 박창신 신부의 발언도 그렇다. 검찰이 박 신부의 발언을 두고 수사에 나설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SNS상에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박 신부는 지난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하며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 개입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다. 현재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부분은 박 신부의 강론 중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관련 "일본이 독도에 와서 자기네 땅이라고 하면서 훈련을 하면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쏴야 한다. 그럼 유엔군사령관이 북과 관계없이 그어놓은 NLL에서 한미군사훈련을 계속하면 북에서 어떻게 하겠냐? 쏴야지. 그것이 연평도 포격사건"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신부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 우회적이지만 비판을 가한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신부의 '연평도 발언'을 겨냥,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이런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문제가 되는 박 신부의 발언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국가기관이 개입한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라고 규정하며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촉구한 것과 이러한 움직임을 "'종북몰이'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종북몰이가 아니라 부정선거라고 박 신부는 주장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NLL과 연평도 폭침 사건에 대한 박 신부의 발언을 겨냥하고 있다.

 박 신부의 발언 이후 종교의 정치 참여에 대해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홍역을 앓고 있다. 어떤한 경우에도 종교는 현실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쪽이 있는 반면, 종교가 지향하는 문제는 인간의 삶과 지극히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정치 역시 종교인이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지금의 첨예한 대립을 보면 문제의 발언이 신부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그 발언이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발언의 근거다. 박 신부의 발언은 사실관계가 잘못된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독도와 연평도를 동일 선상에서 보는 시각으로 대통령 선거까지 부정으로 몰아가는 인식은 스스로 맹목적인 믿음에 근거한 주장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꼴이다. 본질의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면 될 일을 두고 '종북몰이'로 비화하는 정치권 역시 사실관계를 부정하는 오류에 빠져 있다. 선거철만 되면 종교계를 찾아 '앵벌이'를 하는 정치인들이 상황이 변했다고 정치에 종교를 출입금지하고 금줄을 치는 것은 누가봐도 웃을 일이다. 불편하다고 분노하면 불편함은 불쾌해지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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