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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겨울의 주인공은 단연 안개다. 낮 길이가 짧고, 그 시간 내내 안개가 그칠 줄을 모른다. 10월말부터 시작되는 안개를 동유럽 사람들은 숙명처럼 함께하고 있다. 체코 프라하의 11월도 안개가 점령했다. 하루 종일 짙게 깔리는 안개를 보면서 '우울'이란 단어를 떠올렸지만, 정작 프라하 사람들의 얼굴은 밝았다.


사람들의 얼굴 뿐 아니라 불타바 강 주변의 옛 성들도 안개 속에서 더욱 빛났다. 안개가 짙게 낀 프라하의 밤 야경은 왜 이곳이 유럽4대 관광도시인지 말해준다. 체코는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1948년 2월 사회주의 혁명을 거치면서 구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했지만, 1989년 벨벳 혁명 이후 사회주의체제 국가에서 자본주의체제 국가로 바뀌었다. 41년간의 아픈 역사를 딛고 비단처럼 부드럽게 혁명을 이룬 나라다. 체코는 보헤미아 역사에서 내려오는 뿌리 깊은 인본주의로 말미암아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은 전통과 문화의 꽃을 피웠다.

   
▲ 카를다리가 끝나는 곳, 흐라차드니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프라하성. 길이 570m, 폭 128m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성중 하나다.


서유럽의 색채가 짙은 체코 곳곳에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양식 건물이 남아 있다. 수도 프라하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답게 중세의 기풍이 곳곳에 서려 있다. 이 때문에 영화, 광고 촬영지로 인기 있다.


198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프라하는 지난 2005년 방영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곳이다. 특히 색다른 신혼여행 관광지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유럽도시 중이 하나다.



#카를다리·프라하성
프라하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유명관광지 중의 하나가 카를다리다.


 프라하를 상징하는 3대 건축물중 하나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시대의 다리로 손꼽힌다. 카를다리는 불타바 강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 광장이 있는 구 시가지와 프라하성이 있는 말라스트라나 지구를 연결하는 다리다. 지난 500여 년간 두 지역을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프라하의 최고 중흥기였던 카를 4세 시절 건축가 가페터 파를러가 맡아 1357년에 공사를 시작해 1402년에 완공했다. 총 길이 520m에 폭 10m의 고딕양식으로 지어져 오늘날까지 튼튼하게 남아 있다.


 카를다리에는 바르크 양식의 아름다운 30개가 서 있다. 이 석상은 대부분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까지 만들어졌다. 아쉽게도 당시 석상은 모두 박물관에 보관돼 있고, 모형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한다.


 카를다리 위에서는 수공예품을 파는 노점상이 즐비하고, 거리 음악가들의 연주회가 열리고 있었다. 카를다리는 불타바 강 위에 그림처럼 펼쳐진 프라하 성을 감상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 카를다리 위의 악사들.
 다리가 끝나는 곳, 흐라차드니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프라하 성은 체코의 상징이자 프라하 관광 하이라이트다. 길이 570m, 폭 128m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성중 하나다. 9세기 중엽에 짓기 시작해 14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고, 18세기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이 가미되면서 세련된 모습이 됐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단일 건물로 보이지만 성안에는 여러 개의 건물이 시대별로 다양한 용도와 양식으로 중·개축돼 복합단지로 구성돼 있다. 카를다리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성의 야경도 압권이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
카를다리에서 구시가로 들어서면 중세시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의 13개 탑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화약탑을 만난다. 1475년에 고딕양식으로 지어 졌으며 탑의 높이는 65m이다. 18세기 화약 저장소로 사용된 것이 이름의 유래가 됐고 현재, 탑꼭대기를 전망대로 개방하고 있다고 한다.


 화약탑에서 오래된 첼레트나 거리로 들어서면 바로 구시가 광장이 나온다. 첼레트나 거리에서 프라하성으로 이르는 길은 옛날 왕들이 말을 타고 시정을 둘러보던 루트로 '왕의길'이라고 불린다.


 구시가 광장은 천년 고도 프라하의 역사가 응축된 장소다. 14세기 시청사가 들어서면서 행정의 중심지로 발달했고, 중세시대에는 시장과 공개 처형장 등으로 사용됐다.


 시민들의 개혁운동 이었던 '프라하의 봄'도 이곳에서 시작됐고,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선포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건축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각기 다른 시대에 다양한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광장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광장 중앙에는 '진리는 승리 한다'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새겨져 있는 얀 후스 동상이 있다. 얀 후스는 중세 가톨릭 개혁운동을 하다가 화형을 당한 마르틴 루터 보다 100여년을 앞서 개혁운동을 했던 체코의 상징 영웅이다. 광장 한쪽에는 구시청사와 천문시계가 있고, 그 반대편에 틴 성당이 있다.
 
#구시청사·천문시계
구시가 광장 한 켠에 있는 시청사는 프라하의 명물이다. 천문시계가 있어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빈다. 건물은 1338년에 지어졌으나 수세기에 걸쳐 중개축되면서 여러 건물이 합쳐진 복합 건물이 됐다. 현재 70m의 탑이 있는 서쪽 건물이 구 시청사, 북쪽 건물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괴된 후 공터로 남아 있다.


 시청 외벽에 있는 천문시계는 1490년 하누쉬(Hanus)란 시계공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계로 명성이 나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공사를 마친 시계공이 다시는 같은 시계를 만들 수 없도록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두 개의 원판으로 된 천문시계의 위쪽은 시간과 천체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아래는 12개월을 상징하는 달력으로 모두 천동설을 기초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매 시간 정각이 되면 해골모양의 인형이 밧줄을 당기면 두 개의 창문이 열리고, 예수와 12사도 인형이 차례로 모습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황금색 수탉이 회를 치면 30초도 안 되는 짧은 퍼포먼스가 끝이 난다.


 짧은 퍼포먼스는 '여명의 시간이 오면 허영도 돈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는 것을 매 시간마다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 바출라프 광장.
 틴 성당은 성 비투스 성당 다음으로 프라하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다. 14세기 이전에는 이곳을 오가던 외국 상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곳에서 15세기 전반에는 후스파의 본거지로 다시 카톨릭 성당으로 사용됐다.
 
#바출라프 광장
바출라프 광장은 프라하 최대의 번화가이자 굴곡 많았던 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성지이다. 광장의 이름은 체코의 수호성인인 '성 바츨라프'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광장 중앙에는 말을 탄 그의 기마상이 있다. 광장이라기 보다는 큰 대로로, 광장 북쪽 끝에는 국립 박물관이, 구시가 광장이 연결되는 남쪽 끝에는 메트로 뮤스텍 역이 연결돼 있다.


 거리 양 옆에는 호텔, 고급 레스토랑, 백화점 등이 줄지어 있다. 마치 우리의 명동을 방불케 하는 이 거리에는 일 년 내내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바출라프 광장은 체코 민주화의 상징인 '프라하의 봄' 때 체코의 젊은이들이 소련에 대항해 자유를 외친 곳이다. 당시 분신한 두 젊은 청년의 사진과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가 바츨라프 동상 앞에 놓여 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청년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소리가 먼 동양에서 날아온 이국인의 가슴에도 울리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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