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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놈의 시각으로 그린 그림을 시민의 혈세로 구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란의 종지부를 찍게 만든 사료적 가치가 충분한 그림이므로 마땅히 구입해야 한다. 찬반 논란을 벌였던 도산전투도 구입 예산이 결국 5억원을 삭감하는 선에서 구입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울산시가 정유재란(1597년) 당시 울산 학성의 전투장면을 그린 '도산전투도'를 구매하려는 명분은 사료적 가치다. 비록 도산전투도가 일본인이 자국의 시각에서 그린 그림이지만 울산의 역사와 왜란의 교훈적 가치를 고려해 울산박물관에 소장하는 것이 옳다는 논리다. 모사본이라는 논란도 원본이 소실됐고 비슷한 시기에 그린 모사본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예산이 통과된 만큼 울산박물관은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소장자와 최종 구입가격을 협의하는 쪽으로 소장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논란이 치열했던 도산전투도에 대해 울산시의회의 심의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이렇다. 반대논리를 편 김정태 의원은 "조·명 연합군이 두차례에 걸쳐 탈환하려 한 전투가 모두 패한 현장을 그린 그림으로 일본 입장에서는 자랑이고, 우리 입장에서는 뼈아픈 전투인데 이 그림을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매해야 할 필요가 있나"는 감정론에 호소하는 주장을 폈다. 소장을 주장하는 김우림 박물관장의 논리는 "도산전투도는 조선의 시각에서 그린 '평양성탈환도', 명나라의 시각에서 그린 '정왜기공도병'과 함께 중요한 가치를 가졌다. 전문가들도 소장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작품의 가치에 핵심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왜놈이 그린 자국의 승전기념 그림을 우리가 굳이 거액을 들여 소장해야 하느냐의 주장은 감정론이다. 박물관장의 주장이 사료적 가치라는 이성론에 근거했기에 결국 거액의 예산이지만 통과됐다고 본다. 문제는 정말 모사품의 가치가 그 정도가 되느냐는 점이다. 지금 울산박물관에서 특별전시를 하고 있는 도산전투도는 정유재란 당시 도산성(현 울산 중구 학성공원)에서 조선·명나라 연합군과 왜군이 싸우는 장면을 일본인 오키(大木)가 1차 전투 참가자들에게서 듣고 그린 6폭짜리 병풍 3점의 모사품이다. 첫 번째에는 조선·명나라 연합군이 도산성 왜군 진영을 진격하는 장면, 두 번째에는 연합군이 도산성을 포위하는 장면, 세 번째에는 연합군이 후퇴하는 장면을 각각 그렸다. 원본은 소실됐고 18세기 이후 제작된 모사본 3점이 있었다. 이 모사품을 일본인 사카모토 고로(板本五郞)가 소유하고 있고 이를 울산박물관에서 구입을 추진하고 있다.
 
사카모토 고로는 누구인가. 그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1923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소학교만 간신히 졸업했지만 24세인 1947년부터 도쿄에서 고미술 화랑 후겐도를 운영하며 세계적 화상으로 성공했다. 지난 1987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봉황공작도' 병풍을 기증하기도 했다. 국보급 병풍을 기증한 그는 10년후 도산전투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팔려고 시도했다. 지난 1997년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에 판매가격으로 50억원을 제시했고 높은 가격 때문에 무산됐다. 당시 중앙박물관에 제시한 50억원은 중앙박물관 한 해 총예산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림 소장자는 이후 2009년 울산시박물관이 개관에 앞서 유물구입 공고를 내자 다시 30억원에 구입하라는 제의를 했고, 역시 가격 때문에 보류해 오다 이번에 공식적으로 구입 절차에 들어간 셈이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고미술품 수집가인 고로가 우리와 연관된 자국의 미술품을 고가에 팔아먹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왜놈의 고미술상이 고가에 자국의 고미술품을 팔아먹어려는 건 상술이다. 사료적 가치나 작품의 의미를 떠나 가능한 높은 가격으로 자국의 '국보급' 미술품을 팔겠다는 건 평생 미술품 딜러를 해 온 자신의 삶과 맞아 떨어진다. 문제는 굳이 그런 상술에 울산박물관이 휘둘릴 필요가 있느냐는 점이다. 이를 두고 일본인과 울산박물관에 다리를 놓은 전윤수 서울북촌박물관 관장은 "울산의 역사를 가진 이 작품을 울산박물관이 소장한다면 그 어떤 유물보다 울산박물관의 마스터 피스(명작)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울산박물관에 있는 반구대암각화도 실제 암각화를 모사한 전시품이다. 국보지정을 추진중인 동래부순절도와 자치통감(권226∼229)도 울산박물관에 있다. 이 뿐인가. 울산부선생안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부터 1906년의 대한제국 말기까지 울산에 부임한 지방관료 명단과 재직기간 동안의 당면과제 및 해결책을 같이 기록한 사료다.
 
왜놈이 그린 작품이라고 구입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부적절하다. 누가 그렸던 무엇을 그렸고 가치가 있으면 소장할 수 있다. 하지만 고미술품 딜러의 상술에 휘둘리면 안된다. 미술품의 가격은 주관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50억을 제시하고 미국에는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고로의 상술에 울산박물관이 휘둘린다면 문제다. 냉정하게 따지고 협상에 임하고 턱없는 가격을 고집하면 굳이 사지 않아도 그뿐이다. 팔아먹겠다고 나선 자가 죽고 나면 그 후손 역시 팔아먹을 생각을 이어갈 것은 자명하다. 언제든 시민이 수긍할 가격에 구입하면 논란은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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