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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밖으로 눈꽃이 흩날린다. 차분히 내리는 숫눈이 아니라 하얀 가루를 한 움큼 쥐었다 바람 앞에 손바닥 편 듯 눈은 종횡무진 내린다. 서울역 주변 나무들은 마지막 단풍 몇 개씩 품고 속수무책 눈을 맞고 있다. 그걸 내다보며 첫눈의 추억을 떠올리는데 반짝, 서쪽 창으로 햇살이 비친다. 동쪽 창밖으로는 여전히 가는 눈발이 바람에 불리어 가고 서쪽 하늘에는 설핏 기운 해가 눈부시다. 피식 웃음이 난다.

 해 나고 비 내리면 여우비라 하는데, 눈이 내리면 여우눈이라 해야 하나 중얼거리며 책을 펴드는데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화면에는 시흥 부근이라 뜨는데 눈이 벌써 다녀간 듯 밭고랑 사이로 희끗희끗 눈이 보인다. 오산을 지날 무렵엔 진눈깨비가 다시 창을 스친다. 창밖 풍경은 눈과 비와 흐림과 맑음으로 연신 바뀌고 있다.

 영동을 지날 무렵엔 높은 지대라 눈이 내릴 줄 알았는데 비가 내린다. 추풍령을 넘어 영남으로 들어서니 김천 대구까지 하늘은 잔뜩 흐려 있고 울산에 도착했을 때는 비 내린 흔적만 있고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눈부시다. 두 시간 반은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렇다고 긴 시간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많은 하늘의 변화를 한꺼번에 겪을 수 있는 긴 시간도 아니어서 친구에게 메시지를 띄운다. 이 모든 것을 지나와서야 울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나는 울산에서 태어나 잠시 출향했다 돌아온 후 울산을 떠난 적 없는 울산 토박이다. 그런데도 고향의 옛 모습만 그리워하고 도시로 변모한 울산에는 크게 정을 들이지 못했다. 지난 봄, 연두 빛이 가지에 돌고 잔잔히 꽃이 피어날 무렵 동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중부 내륙의 봄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반짝이는 태화강물이며 대나무 끝에 이는 부드러운 봄기운을 바라보며 버스를 택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흡족해했다. 하지만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내 계산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계절이 바뀔 무렵 대한민국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나라로 변한다는 것을 몰랐다. 추풍령을 넘었을 때는 전혀 낯선 지역으로 잘못 들어온 것 같았다. 더구나 문경을 지나 충청도에 들어서서는 봄은커녕 아직 겨울 속에 잠긴 삭막한 회색 풍경에 울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 하울 길. 초겨울에 접어든 서울을 떠나 늦가을에 머물러 있는 울산에 닿으니 그렇게 편안하고 푸근할 수 없었다. 시간을 되돌려 놓은 듯 바람이 스칠 때마다 져 내리는 낙엽 비 아래서 작게 탄성을 질렀다. 나무 아래 놓인 마대 자루와 낙엽을 쓸어내는 아저씨들의 비질 소리도 정겨웠고, 익숙하고 변함없는 오래 된 아파트도 반가웠다. 한때는 변화를 찾아 그렇게 떠나기를 소원했었는데.      

 늘 남의 집에 온 듯 정들이지 못했던 울산이 드디어 내 고향으로 편입된 것이다. 윗녘보다 봄이 먼저 찾아오고, 가을은 느긋이 오래 머물러 주고, 겨울 또한 한 발자국 더디 걸어오는 곳. 낯선 이도 찾아들면 어깨동무하고 품고 가는 울산,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60년이 더 걸려버렸다. 

 공자께서는 '순천 자는 존이요 역천자는 망이라' 하셨던가. 한때는 순리의 해법을 달리해 물 흐르듯 사는 것을 지루하게 해석하고, 낯설고 엉뚱한 발상하는 법으로 살았다. 늦었지만 이제는 눈도 순하게 입도 순하게 마음도 순하게 모든 것을 순리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여 살려한다.

 이번 하울 길, 온갖 기상 변화를 지나와서야 울산에 도착할 수 있었듯이, 우리 삶도 내 몫의 주어진 전 과정을 지나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받아 다시 시작해야 할 연말. 포장도 뜯지 않은 한 해가 선물처럼 놓여 있다. 하루하루가 다 과정이려니 낯설게 다가오는 시간과 악수하고 순리로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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