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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의 우호협력도시인 체코 모라비아 실레지아 주의 오스트라바 시에 위치한 비코비체(Vitkovice)제철소. 녹슬고 오래된 용광로에는 승강기를 설치해 공장전체를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설치했다.
#체코 최대 공업도시
체코 최대의 공업도시인 모라비아 실레지아주의 오스트라바 시는 인구 36만명의 체코 제 3의 대도시다. 수도 프라하에서 280km 떨어진 체코공화국의 동북쪽 오데르강(江)의 넓은 골짜기에 있는 모라비아(Moravia)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폴란드와 유럽의 기점인 슬로바키아와 인접해 있다. 오스트라바 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때에 합스부르크가의 규율 아래에 있었으며, 그 뒤로 계속해서 산업의 도시로서 남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급속히 발전했고, 벨벳혁명 이후에 비공업화로 잠시 이 지역에 실업자가 증가하기도 했었지만, 36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지금도 마인 지역의 석탄공장이나 야금공장, 화학공장 등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양산에 들어간 현대차 체코 공장도 오스트라바 시와 인접한 노쇼비체에 위치해있다. 이 때문에 시가지에서 현대자동차 사원복을 입은 현지인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스트라바 시의 최고 번화가인 스톨토니에는 주말마다 현대자동차 직원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오스트라바 시는 울산과 마찬가지로 한때 '블랙시티'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공장과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과 탄가루 등으로 뒤덮히던 공해도시의 대명사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이 곳은 일년 내내 스모그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산업문화도시로 재도약
산업화, 공업화된 오스트라바도 전체적인 도시 풍경을 보면 많은 교회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연못들의 풍경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삶의 문화적인 질도 1991년에 오스트라바 대학과 오스트라바 예술학교가 생기고, 예술과 각 문화방면에 대한 교육이 실시되면서부터 점점 향상되고 있다.


 오스트라바 시는 최근 산업화된 도시에 인간적인 면을 부여하여 '인간적인 오스트라바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오스트라바 시는 '도시재생'을 통해 산업도시에서 '산업문화도시'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도시재생의 핵심은 이곳에 산재한 오래된 산업시설들을 활용해 박물관, 전시관 등 문화 시설화 하는 것이다.

#새옷 입은 '비코비체 제철소'

   
▲ 가스저장시설을 개조한 공연장 내부 모습.
오스트라바 시내에 위치한 '비코비체 제철소'. 1829년에 설립된 체코 최대의 제철소인 비코비체(Vitkovice)는 Mittal Steel Ostrava, Valcovny plechu Frydek-Mistek과 함께 체코의 심장으로 불렸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전환기를 겪으면서 체코의 철강산업은 사양길에 들고 말았다. 이들 제철회사들은 2000년대 초 EU로부터 민영화 등 강한 구조조정 압박을 받았고, 비코비체는 러시아 철강회사에 매각됐다. 비코비체는 이후 생산량 축소와 감원 등의 아픔을 겪었으며, 노후 공장 시설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돌파구는 '도시재생'이었다.
 회사와 지자체는 노후 공장시설을 철거하기 보다는 체코 산업화의 상징으로 보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행히 재생에 필요한 자금은 대부분  EU에서 지원 받을 수 있었다.


 노후된 공장을 거대한 산업 박물관으로 전환하는 사업은 회사는 물론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뤄졌다. 녹슨 시설들은 모두 더 이상 녹이 슬지 않도록 모두 화학적 처리를 했고, 거대한 용광로가 있던 자리에는 승강장을 설치, 전망대도 만들었다. 공장 곳곳에는 오래된 기관차들을 비롯 이곳에서 생산된 철로 만든 생산품을 배치했다.


 특히 비코비체에서 눈길을 끈 것은 사계절 다목적 공연장으로 변모한 거대용량의 가스 저장소였다. 제철소의 엔진을 돌리는 엄청난 양의 가스를 저장하던 이곳은 리모델링을 통해 현대식 공연장으로 변모해 수많은 관람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 오스트라바 석탄박물관 전경. 이곳에서는 구석기시대 마리아상이 출토되기도 했다.
 제철소의 심장이었던 발전시설이 있던 곳도, 그 자체로 거대한 박물관이 돼 있었다. 제철소에 보내기 위해 100년 전에 만들었던 거대한 발전기를 비롯 전기를 이용해 구동되는 기계와 자동차, 심지어 잠수함까지 갖춰 놓았다. 지금도 노후 건물과 유휴 시설을 활용해 관람객들이 직접 제련, 제철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있다. 누구든 비코비체 들어서기만 하면 한때 유럽의 중심이었던 체코 산업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도시재생 또다른 상징 '석탄박물관'
오스트라바의 도시재생의 또 다른 상징은 '석탄박물관'이다. 석탄은 오스트라바 시가 제철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원동력이었다. 오스트라바 시와 그 주변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코크스탄으로 적합하며, 1763년 발견됐다. 대규모의 채굴이 시작된 것은 1850년 이후이다. 1960년에는 약 2,500만t을 캐내 체코 전생산량의 4/5를 차지할 정도였다.


 오스트라바 시는 20여 개의 탄광을 바탕으로 야금·코크스화학·보일러·크레인·광산용 대형기계·화학비료 등의 공장이 들어섰다. 1829년 설립된 제철소 등 중요기간산업이 집중됐다. 


 오스트라바 석탄박물관이 특히 유명한 것은 구석기시대 조각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란데츠케 비너스라고 명명된 모던한 느낌의 조각상은 유럽에서 발견된 비너스 중 가장 날씬한 비너스라고 한다. 비슷한 시기 혹은 더 오래 전에 만들어졌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다산과 생산을 강조해 특히 여성의 신체를 극도로 풍만하게 묘사한 반면에 이곳에서 발견된 란데츠케 비너스는 아주 사실적이란 설명이다. 이 비너스상은 현재 오스트라바 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며, 관람객들에게는 모형 목거리를 제작해 나눠주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사회주의 시절 정치범들의 노역장으로 활용되면서 아픈 기억이 많다. 1950년대에서 60년대 초에 걸쳐 올림픽에서 두 번 금메달을 차지한 체코의 유명 마라토너인 에밀 자토팩의 이야기다. 자토팩은 오스트라바 석탄광산에서 진폐증으로 죽었다. 공산체제는 그에게 정권과 체제에 대한 찬양을 요구했고, 그는 양심에 따라 그것을 거부했다. 정치범으로 몰린 그는 결국 이곳 석탄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다 결국 진폐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 석탄박물관 외벽에 걸린 비코비체 전경 현수막.
 관람객들은 승강기를 타고 직접 갱도를 따라 들어가 채굴현장을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도시재생 현장을 동행한 모라비아 실레지아주 이반 스트라촌 부지사는 "처음에는 시민들이 노후된 공장과 광산의 철거비용 때문에 문화시설로 전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기도 했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관광객이 급격히 늘고 이에 따른 고용 창출이 확대되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시재생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도시재생은 지방정부의 체계적인 계획과 기업의 참여, 시민들의 동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특히 오스트라바가 그동안 유럽 산업발전에 끼친 영향 등을 고려해 유럽연합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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