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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오스트로바 시에서 폴란드로 넘어가는 경계가 사라진지 오래다. 유럽연합이 건설한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어느새 폴란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폭이 좁은 강을 가리키며 "이쪽이 체코, 저쪽이 폴란드"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두 국가의 경계를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스트라바에서 버스로 3시간 남짓 이동하면 폴란드 제2의 도시 크라쿠프다. 오스트라바에서 시작된 동유럽의 안개는 이 곳에서 더욱 짙어졌다. 길고 더딘 겨울의 시작이지만 안개는 도시의 사연처럼 깊고 우울한 느낌을 주었다.


▲ 시장광장에서 조금 벗어난 비스와 강변의 언덕 위에 위치한 바벨성. 바벨성은 폴란드 국왕들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었고, 수도가 17세기 바르샤바로 옮겨진 뒤에도 대관식만은 이곳 대성당에서 거행됐다.
#구 시가지 일대 세계문화유산 등재
크라쿠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주둔지가 있었던 도시다. 때문에 500년 동안 폴란드 문화의 중심이었던 크라쿠프 시장광장 등 옛 모습이 파괴되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 남을 수 있었다.
 국왕이 살던 이 도시는 2000년 유럽 문화도시로 지정되기도 했다. 구 시가지 일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크라쿠프는 광장의 도시다. 예전 왕들이 대관식을 가지려고 걸었던 플로리안스카 거리(Florianska Street)를 스쳐 지나면 시장 광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광장은 유럽에 남아 있는 중세 광장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바통을 잇는 4만㎡의 광활한 광장은 예전에는 귀족들의 사교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광장 옆 성 마리안 성당에서 마침 미사가 열렸다. 1220년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성가가 가슴 속 까지 파고드는 느낌이다.
 이 성당에서는 매시간 탑 꼭대기에 나팔수가 직접 나와 나팔을 분다. 시장 광장 앞 거리에는 고풍스러운 마차가 오가며 운치를 더한다.


 광장 중앙에는 '폴란드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 뒤편의 직물회관 '수키엔니체'에서는 침대보 등 서민들의 용품과 관광용품을 판매한다. 1층 기념품점은 양쪽으로 100m가량 늘어서 있다. 시장 2층은 폴란드의 조각과 회화를 전시하는 국립박물관이다.
 시장광장에서 조금 벗어난 비스와 강변의 언덕 위에 위치한 바벨성은 11세기에 지어지기 시작해 16세기에 완성된 왕궁이자 성곽이다.
 바벨성은 폴란드 국왕들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었고, 수도가 17세기 바르샤바로 옮겨진 뒤에도 대관식만은 이곳 대성당에서 거행됐다. 지난 2010년 4월 러시아 카틴 숲 학살사건 추모 행사에 참석하러 가던 길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카친스키 대통령이 영면한 곳이기도 하다.


 구시가에서 크라코브스카 거리로 나서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골목들을 만날 수 있다. 크라쿠프의 아픈 과거가 담긴 길목이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광광상품을 팔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크라쿠프 시가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아우슈비츠다. 아우슈비츠는 90년대 초반에 제작된 한 편의 흑백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유대인 학살과 그 속에서 군수사업가인 쉰들러로 인해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다. 유대인 거주지였던 크라쿠프의 크라코브스카 거리와 아우슈비츠가 촬영지였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 전시관.
 아우슈비츠는 동유럽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일하면 자유롭게 된다'는 격구가 걸린 제1수용소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한없이 숙연해진다. 아우슈비츠는 독일식 명칭이고, 폴란드 사람들은 이 곳을 오슈비엥침으로 부른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제1수용소와 그곳에서 3㎞가량 떨어져 있는 제2수용소로 나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대인 수용시설을 활용해 만든 박물관은 아픈 옛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수백 개의 방에는 당시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안경, 신발, 사진 등이 헝클어진 채 전시돼 있으며 머리카락, 칫솔, 아기 우유병 등이 남아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수용자들을  매일 사살했던 장소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교수형이 이뤄졌던 곳도 볼 수 있었다.  수용소 남쪽 끝은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이동하는 장면을 촬영했던 장소다.
 지하에 건설한 가스실과 시체 소각장은 인간의 잔악성에 대한 좌절을 느끼게 만든다. 곳곳에는 숨을 거둔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한 꽃송이만이 아련하게 쌓여 있다.

#제2수용소 브제진카 수용소
제2수용소인 브제진카(비르케나우) 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300동의 막사가 있었다고 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굴뚝과 막사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벽돌이 뒹구는 황량한 풍경이다.
 폴란드 정부는 자국 청소년들에게 아우슈비츠를 의무적으로 방문토록 해 슬픈 역사를 곱씹고 있다고 한다.


▲ 소금광산 동굴 속에 있는 킹가성당.
 수용소를 둘러보는 내내 짙은 안개가 깔렸다. 수용소에 도착한 유대인들의 머리 위로 화장장 굴뚝에서 나온 죽음의 재가 소복히 쌓이던 영화 속 장면이 오버랩 된다.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도 크라쿠프에서 만날 수 있다. 지하 광산이 얼마나 아름답게 변신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비엘리치카 동굴의 길이는 총 300km나 되고 역사도 700년이 넘어선다.


 125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업이 계속된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수직으로 이뤄진 계단을 따라 수십m를 내려가면 소금광산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 지하갱도에서 소금운반에 이용됐던 말들의 이야기도 있다.
 한번 광산에 들어온 말은 평생 햇빛을 보지 못하고 눈이 먼 채 땅속에 머물렀다고 한다. 어떤 말은 지하갱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수많은 광산 노동자들은 지하에서 오랜 세월 일하고 묵으며 암염으로 조각된 예술품들을 만들어 낸 것도 눈에 띈다. 


 지하 110m에 위치해 있는 킹가 성당(Chapel of Saint Kinga)은 소금광산 여행의 백미다. 20세기 초 30여 년간 암염으로 만든 동굴에는 역대 왕과 샹들리에 조각들이 찬란하게 재현돼 있다.
 이곳에서 방문자들에게 들려주는 오케스트라 음악은 귀를 황홀하게 만든다. 킹가 성당의 작품들은 700년 된 동굴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 제2수용소.
 크라쿠프와 아우슈비츠, 비엘리치카는 폴란드의 '깊고 추운 땅'이라고 한다. 지형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그 만큼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란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3곳 모두 지금 세계문화유산이 돼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고 한다. 그 관광객들을 품고 껴안으면서 아픈 기억을 치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개가 걷히는 따뜻한 여름, 활기찬 크라쿠프를 다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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