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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이번에는 '안녕하세요'가 전국의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그 중심은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논란이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선거 1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대선 정국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좌파정권 10년'의 악몽에서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의 불통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스스로 불통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증좌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의 입이라는 이정현 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은 대선 1주년을 맞아 불통 논란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그는 "(대통령의) 불통 비판이 가장 억울하지만 원칙을 지키는 불통은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1년을 돌아보며 가장 억울한 부분이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던진 대답이다. "나처럼 국민을 많이 만난 정치인도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박 대통령은 '불통'이라는 비판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측근들은 대통령 특유의 소통방식이 불통 논란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과연 박근혜식 소통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측근들의 설명으로 유추할 수 있다. 측근들은 박 대통령 스스로가 보여주기식보다 국민의 삶을 소리 없이 챙기는 것을 진정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비근한 예로 지난 9월 말 대통령국정기획수석실이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를 보고하자 박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국민 참여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 '비정상의 정상화' 사이트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사이트는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 80개의 추진 상황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과제별로 국민들이 댓글로 의견을 달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새로운 과제 제안도 받는다. 공유, 개방, 소통을 키워드로 정부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정부 3.0'과 창조경제타운 사이트도 국민 참여와 소통을 강조한 정책이다.

 '수첩공주'라는 닉네임을 얻은 박 대통령은 대부분의 회의나 간담회 자리에서 참석자들의 의견을 일일이 다 메모한다. 그 메모는 청와대에서 '제2의 VIP 수첩'으로 불리는 '민원이력카드'로 재작성된다. 민원이 해결되든, 안 되든 모든 민원인에게 민원 결과가 직접 통보되며 그 결과는 빠짐없이 대통령에게 보고된다. 박 대통령은 신문도 열심히 보고 지적 사항을 직접 챙긴다. 특히 최근 들어 청와대 해당 수석들에게 직접 전화해 언론이 지적한 것이 사실인지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모든 신문이 관저, 집무실에 들어온다"며 "경제, 사회면까지 꼼꼼히 다 챙겨본다"고 전하고 있다.

 보여주기식은 '쇼'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한 박 대통령식 소통정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말이다. 문제는 소통에 대한 시각의 차이다.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른 부분이다. 이해와 수용은 학습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 희노애락을 이해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신이 아니다. 국민의 희노애락을 이해하고 수용해서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문제는 절망과 슬픔, 불안과 고통을 수용하고 이를 보듬는 일은 녹록치 않다. 수학공식처럼 맞아 떨어지고 논리적으로 결론이 확실한 것을 추구하다보면 간과하는 것이 많다. 바로 그 부분을 해결하는 통로가 정치다.

 정치는 보여주고 알리고 살피는 것을 유전인자로 타고났다. 정치에 시들했던 20대가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대자보를 붙이기 시작하고 이에 공감하는 젊은층이 SNS를 통해 자신과 같은 생각의 사람들과 타인의 글을 공유하는 일도 정치적 행위다. 민원인의 사연을 수첩에 옮기고 후속조치를 지시하는 대통령, 모든 신문을 일일이 챙겨보는 대통령을 가진 나라는 미래가 밝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줄 아는 대통령을 가진 나라는 행복하다. 하지만 그런 대통령을 가진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은 현실이다. 소통을 강조하는데도 불통으로 비난 받는다면 억울할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답은 정치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고 부드러워야 생명력을 가진다. 굳은 정치는 언제나 파열음을 내기 마련이고 이를 방치하면 결국 균열음과 함께 참담한 파국을 맞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입'부터 바꿔야 한다. 가신정치의 후예처럼 순간순간 얼굴을 붉히는 입은 궁중정치에서나 필요한 수족이다. 대통령의 생각을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호소하고 국민의 이해와 수용을 구하는 입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대통령 자신이다. 스스로 부드러워져야 한다. 우리 정치의 현실을 인정하고 갈등과 반목의 중심을 제대로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직접 들어가 상처를 헤집고 도려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 해법의 칼은 오직 한사람이 쥐고 있다. 바로 대통령 자신이다. 칼은 때론 상대와 한끼 식사를 하는 숟가락이 되기도하고 귀를 귀울이며 들어주는 자리의 차 한잔이 되기도 해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국민들은 진정 '안녕'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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