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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울산박물관의 기획전시실 1관에서는『조선의 외교관 이 예, 바다를 건너다』란 주제를 가지고 2013년 10월1일부터 2014년 2월2일까지 특별전이 개최되고 있다. 필자는 10월말에 전시관을 찾았다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분의 일생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발길을 돌렸다.
 

 충숙공 이예(忠肅公 李藝 1373~1445)의 삶의 이야기가 그의 고향인 울산에서 전시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울산의 이야기가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1597년 그해 겨울, 치열한 전쟁기록을 그린『도산전투도(島山戰鬪圖 : 1597.12.22~1598.10.4)』에 대한 특별전이 기획전시실 2관에서 11월26일부터 12월22일까지 개최되었다.
 

 도산전투도 특별전이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참으로 마음이 답답했다. 그것은 충숙공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는데 그 바로 앞에서 도산전투도가 전시가 된다고 하니 두 전시회가 다 우리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준 일본이란 나라의 이야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찾아 가보자.
 

 충숙공은 고려 말의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 그의 나이 8세인 1381년에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어머니가 왜국으로 납치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고, 1397년에는 울주군수 이은이 왜구에 납치되자 자진해서 왜국으로 따라가 군수와 함께 돌아오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삶은 힘 없는 이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바쳤는데 73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40여 차례에 목숨을 건 뱃길에서 왜국으로 잡혀간 우리 백성을 송환하는데 그의 일생을 바쳤다. 그런 왜국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이제 시간을 내어 그를 만나러 가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치욕을 다시는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가 떠난 후 15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이 땅에는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전쟁이 전 국토를 휩쓸고 지나가게 된다. 7년간의 긴 전쟁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지나간 이 땅에는 온전한 삶이 남아있지 못했다. 그 많은 백성에게 누가 그런 고통을 주었는가? 조만간 왜국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편과, 왜국의 침입은 결코 없다는 편과의 대립의 결과로는 너무나 참혹했다. 어리석은 위정자(爲政者)로 인해 힘없는 백성들의 삶은 참혹할 수밖에 없었다.   
 

 도산전투도 전시가 끝나기 전날인 12월21일, 긴 망설임 끝에 결국 전시관을 찾게 되었는데 마침 전시관에는 아무도 없어, 천천히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필자는 이 그림의 구입여부에 대한 논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도산전투도는 1597년 정유재란 때 현재 학성공원에서 조명연합군과 왜군간의 2차에 걸친 치열한 전투를 그린 그림으로 6폭짜리 병풍 3점의 모사품이다.
 첫 번째 병풍은 조명연합군이 여러 겹으로 도산성을 포위해 왜군을 고립시키는 장면의 그림이고, 두 번째 병풍은 조명연합군이 왜군과 태화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장면이며, 세 번째는 조명연합군이 왜군의 지원군이 도산성으로 집결하자 후퇴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는 결국 도산성 전투에서 왜군이 승리를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림과 다르다. 임진왜란 당시 울산은 왜군의 전초기지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곳이다. 서생포 왜성에서 의병들과의 치열한 전투와 도산성의 마지막 전쟁이 있는 곳으로 전쟁의 시작과 끝이 있는 지역이다. 만약 도산성 전투에서 왜군이 승리를 하였다면 또 다시 임진왜란처럼 왜군은 한양으로 진격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도산성 전투는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전투였던 것이다. 그 결과 임진왜란은 우리 지역에 너무나도 큰 피해를 주고 전쟁은 끝이 났다.  
 

 우리들의 삶이 있는 한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 된다. 우리 고장을 충절(忠節)의 고장으로 만든 박제상이 있고, 이예가 태어났고, 박상진 의사의 숨결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고장이다. 그래서 일본과의 어떤 거래가 있을 때는 늘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것만이 일본에 당한 고통을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그분들에게 감히 물어본다.
 "참혹한 전쟁의 현장인 이 도산전투도를 구입해야 합니까?"
 " ……기다려 봐라. 양심이 있는 이가 사죄를 하며 줄 날이 올 것이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을 하며 전시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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