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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다뉴브의 독일식 이름) 강을 끼고 발전한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정치, 경제, 문화의 심장부 역할을 하고 있다. 2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대도시지만 도시 중심부로 들어가면 중세의 모습과 19세기 말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도나우 강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색은 아니지만 도시의 모습을 넉넉하고 여유 있어 보이게 한다. 이런저런 명소나 유적지를 방문하고 피곤해지면 온천에서 쉬거나 풍부한 자연에 묻힐 수 있는 매력적인 대도시이다.

▲ 헝가리 애국정신의 상징으로 불리는 부다페스트의 어부의 요새. 부다페스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 요새는 고깔 모양의 일곱개의 탑이 인상적이다.

기원전 4세기경부터 도나우 강과 부다 구릉지 사이에 인간이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기원 1세기 이후 로마 시대를 거쳐, 5세기 초에는 훈족이 왔고, 이후 여러 부족이 이곳을 차지했었는데, 10세기 초에는 마자르라고 하는 헝가리인이 들어와 거점을 확보했다. 이때쯤 부다와 페스트 남쪽에 경작지가 만들어졌다. 13세기에는 현재의 왕궁 지구에 새 도시가 건설되었고 15세기 마차시 왕 때에는 부다 성이 르네상스의 중심이 되었다. 마차시 왕은 국외로부터 예술가나 학자들을 많이 초빙해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6세기 부다는 오스만 터키에 점령되어 황폐해졌고 17세기 말 터키가 물러가고 합스부르크 지배 아래 재건될 때 독일 색채를 띠게 되었다. 1830년대의 개혁기에는 세체니 이슈트반의 지도하에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교량의 건설과 철도의 부설, 과학 아카데미 설립, 증기선 운행 등이 부다페스트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1872년에 부다와 페스트가 합체된 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의 헝가리 측 수도가 되었고 1896년의 건국 천 년부터 20세기 초까지 이 도시의 특징을 보이는 개성적인 건물 대부분이 건설되었다.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는 도나우의 서북부 일대는 '오부다'라고 불리는데, '옛 부다'라는 뜻으로 부다와 페스트 전체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지구이다. 이곳은 기원 1세기 고대 로마 시대, 판노니아 지방의 로마군 주둔지였고, 도시 아퀸쿰이 있던 곳이다.

# 헝가리 애국 정신 상징 '어부의 요새'
부다 지역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어부의 요새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어부의 요새는 헝가리 건국 1,000년 기념으로 지어졌다. 1896년에 착공에 들어가 완성된 것은 1902년. 이곳의 이름이 '어부의 요새'가 된 것은 옛날 이곳에 어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설명부터,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려했을 때 어부들이 다뉴브강으로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극적인 설까지 다양하다. 네오로마네스크와 네오고딕양식이 혼재되어있는 이 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곱 개의 탑이다. 고깔모양을 한 이 탑이 상징하는 것은 건국당시 마자르족 일곱부족이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 탑의 높이로 건국의 해를 기념했다면, 이곳은 일곱 개의 탑으로 건국의 주체를 오늘의 기억 속에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어부의 요새 성루에 올라 페스트 지역을 보는 눈맛이 압권이다.

▲ 페스트 지구에서 본 부다 왕성. 2차대전 때 파괴된 것을 복원했다.

# 전쟁의 상흔 그대로 '부다 성 왕궁터'
어부의 성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부다 성의 왕궁터다. 영광의 자리인 동시에 슬픔이 가득한 곳이다. 지어 놓으면 전쟁이 휩쓸어 폐허만 남고, 다시 지으면 또 전쟁이 몰려온 곳이기 때문이다. 부다성 왕궁터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나치 독일은 왕궁을 헝가리점령본부로 사용하고 있었다. 전쟁 말기 부다페스트를 침공해 들어온 소련군이 부다 왕궁을 포위했으니 치열한 전투가 불가피해졌고, 결국 왕궁은 무너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왕궁은 다시 건설되기 시작했으나 시대는 이미 공산주의 시대였다. 당초 고딕식에 바로크식까지 가미되어 건설된 건물은 이제 왕궁이 아니라 온전히 박물관용으로 건설된 것이다. 무늬는 왕궁이었지만 속은 헝가리국립미술관,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그리고 국립 세체니 도서관이 들어가 있다. 이 왕궁 터에도 아직 전쟁의 참상은 남아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몇 개의 건물에는 아직도 숭숭 뚫린 총알 자국이 가득하다. 왕궁 근처에는 아직도 발굴과 복원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 1898년 건설된 유럽대륙의 첫 지하철은 아직도 운행되고 있다.

# 유럽대륙 첫 지하철 '1호선'
부다지역에서 페스트지역으로 넘어가는 수많은 다리 중에서 가장 볼만한 곳이 '세체니(Szchenyi)다리'다. 1842~1849 년에 건설된 부다페스트 최초의 다리이기도 하다. 제 2 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것을 전후에 복구했다. 밤이 되면 다리에 불을 밝히는데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다리 입구 양편으로는 혀가 없는 사자상이 각각 2 마리씩 세워져있어 사자의 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세체니다리를 통해 페스트지역으로 넘어오면 세계에서 두 번째, 유럽대륙 최초의 지하철을 볼 수 있다. 페스트지역에 지하철이 개통된 것은 1896년. 건국 천년을 기념해서였다. 이 지하철의 정식 이름은 황제의 이름을 따서 '지하철 페렌츠 요제프(Ferenc Jozsef)'였으나, '밀레니엄 언더그라운드'라 부르기도 하며, 그보다는 더 즐겨 '1호선'이라고 부른다.
 부다페스트의 자랑 '1호선'을 타는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 한 각별한 느낌을 준다. 건설 당시의 모습을 간직함과 동시에 현대의 도시 교통시스템으로도 원활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곳의 지하철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며, 그렇다고 사람들을 편리하게 운반하는 단순한 기계상자도 아니다. 에스켈레이터도 없는 층계를 걸어 내려가면 조그만 차량을 탈 수 있으며, 도착할 때의 흥겨운 음악도 예전과 같다. 현재 지하철 터널의 일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곳에 가면 예전에 사용되었던 차량들을 볼 수 있다.

# 기독교 성지 '성 이슈트반 성당'
지하철1호선을 나와 조금만 이동하면 성 이슈트반 성당이다. 기독교를 헝가리에 전파한 위업으로 기독교의 성인으로 추대된 이슈트반 성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당으로, 50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내부 기둥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기둥이 지탱하는 아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교회의 탑은 96m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고, 이 숫자는 헝가리의 건국된 해인 896년의 96을 의미한다. 도나우 강변의 모든 건축물은 도시 미관을 위해 이보다 높이 지을 수 없게 규제되어 있다.
성당의 정문 위에는 오른손에 홀을, 왼손에 구슬을 들고 있는 성이슈트반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성당 안 주제단의 뒤쪽에 가면 성이슈트반의 오른손이 봉헌된 '신성한 오른손 예배당'이 있다.

▲ 헝가리 영웅 14명의 입상이 세워져 있는 영웅광장. 가운데가 말레니엄 기념탑.

# 역사속 위인 열전 '영웅광장'
이슈트반 성당을 뒤로하고 부다페스트의 문화 거리인 '안드라시 거리'를 지나면 그 끝에 영웅 광장이다. 영웅광장에 도착하기전 한국대사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영웅광장은 헝가리 1천 년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상징물이다.
 영웅 광장 가장 자리엔 열주(列柱)로 이뤄진 구조물이 반원형으로 만들어져 왼쪽에 7명, 오른쪽에 7명 등 모두 14명의 청동 입상이 서 있다. 열주가 시작되는 왼쪽 열주의 위에는 노동과 재산, 전쟁의 상징물이, 오른쪽 열주가 끝나는 윗부분엔 평화, 명예와 영광을 나타내는 인물상이 있다. 이 열주 기념물은 바로 뒤편에 있는 시민공원인 바로시리게트에 있는데 영웅 광장은 그 입구처럼 보이게 설계 되었다. 14명의 영웅 중 첫 번째 자리엔 국부로 추앙받는 성 이스트반(Szent Istvan 왕, 970~1038)이 있으며 그 옆엔 성 라슬로(Szent Laszlo 혹은 Saint Ladislas, 1040~1095)왕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국토를 크로아티아까지 확장했고 크로아티아를 가톨릭국가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마르깃섬의 주인공 마르깃 공주의 아버지인 벨라 4세는 다섯 번째에 자리를 잡았고 헝가리 르네상스의 주인공 마티아스왕의 청동상도 있다. 오른쪽 원주로 들어서면 왕과 함께 헝가리 독립을 추구한 투사들도 등장한다. 14번째에 자리한 라요시 코수트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반란을 주도했으나 러시아군에 의해 좌절된 민족주의 지도자이다.
 영웅 광장 가운데에는 36m 높이의 밀레니엄 기념탐(Millenniumi Emlekm)이 서있고 꼭대기엔 날개 달린 천사장 가브리엘의 상이 서 있다. 그 앞엔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는 무명용사 기념제단이 있다. 바닥에 깔린 동판에는 '마쟈르인들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그들 자신을 희생한 영웅들을 기억하며'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 100여개의 온천
영웅광장 주변은 페스트 시민공원 이고, 안쪽에는 실외 온천인 세체니온천이 유명하다.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걷다보면 따뜻한 연기가 새어 나오는 곳이 많은데 이곳은 다름아닌 온천이다. 헝가리의 온천으로 전국적으로 135개가 있고 그 중 부다페스트에만 100여개의 온천이 있는데 온천마다 각기 다른 특색과 효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이곳의 온천은 비교적 뜨겁지 않으며 풍부한 미네랄이 포함되어 오랜 여독을 풀기엔 그만이다.
 
'…어둠이 선율에 젖어 우네 / 작별의 흔적을 남긴 채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이별을 반가이 맞이해 /…' 체코 프라하로 이동하기 위해 부다페스트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글루미 선데이'의 선율이 울렸다. 겨울 안개에 쌓인 부다페스트의 매력을 다 살피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 아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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