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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왜 그럴까. 새해는 숙연하게 하는 힘이 있다. 몸도 마음도 엄숙해진다. 그러면서 새해에는 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이제, 2013년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겨졌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숱한 추억과 그리움을 뒤로한 채 시간의 뒤안길로 떠나갔다. 이것이 우주의 엄숙한 법칙이고, 자연의 질서라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보면 우리 인간은 하등에 나약한 존재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한해를 시작할 때면 대부분 사람은 자신을 향해 다양한 메시지를 던지게 된다. 무언가 좀 더 나은 꿈을 이뤄보겠다는 욕망으로 가득한 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의 새해맞이는 다소 직수굿해졌다. 그것이 세월 탓인지는 몰라도 예전만치 대단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저 무탈하게 한 해가 지나가 주기만을, 그래서 둥글둥글하고 뭉근하게 지나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 뒤처지고 더러는 손해 보는듯한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화를 우선순위에 둔다는 의미가 크다. 불교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연꽃이 진흙 속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듯,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듯'한 향기로운 일상을 소원한다. 그래서 내 영혼이 투명하고 담백한 감성의 습자지로 젖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새해에는 편안함이 묻어나는 이웃이 되기를 원한다. 결코 과장되지 않으면서, 입으로 흘리는 말 한마디에도 품위와 소박함이 묻어나서 누구라도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고 싶어지는 순한 불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런 신의 가피가 함께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2013년은 개인적으로 퍽이나 의미있는 한 해였다. 그간 계획해 오던 수필집 '빈들에 서다.'를 상재하였다. 그로인해 문단의 선후배며 많은 문우로부터 축하를 한 몸에 받았다. 분에 넘치는 행복을 맛 본  해였다. 그간 염치없이 주변 작가들로 부터 귀한 책을 수도 없이 받기만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치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빚을 졌는데, 이번 기회로 웬만큼 빚을 갚은 셈이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축복이 내게 주어진 것은 그 누군가의 덕이지 절대 나 혼자만의 노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 문우의 관심과 도움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는 생각이다. 취미가 같은 문우끼리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에게 무언의 응원을 보내며 채찍질해 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우선은 내 탓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 과정에서 더욱 가까워진 문우도 있지만, 본의 아니게 소원해진 이도 있었다. 올해는 서로가 교신 되는 해로 만들어갈 생각을 한다.

 절대 서두르거나 설익은 글은 세상 밖으로 내 보내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이다. 충분히 삭히거나 묵새긴 다음에 정갈한 밥상을 차려야 함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야 진정한 문향을 나와 남이 느껴 즐길 수 있을 터다.

 일찌감치 공자는 유어예(遊於藝)라 했다. 이는 삶의 은유로써,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말과도 통한다. 자기의 인생에 스스로 반할 수 있는 삶을 살라는 의미의 말이다. 나도 공자처럼 그런 경지를 맛보고 싶다. 아니, 흉내라도 내고 싶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예(藝)스러운 이는 과장되지 않으면서 말 한마디에도 품위가 묻어나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그런 이라야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는 훌륭한 작가가 될 자격을 갖춘 이라고 하겠다. 진정으로 참 되고 겸손해서 분별있는 삶을 살 줄 아는 이가 될 것이다.

 좋은 작품을 써서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 위안을 주고 타인에게 삶의 용기를 준다면 이 또한 진정한 '유어예'의 삶이 아니겠는가. 나에게  새해는 그런 신의 가피가 주어지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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