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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GM과 한국GM이 정 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09년 6월 파산보호 신청 한 미국GM은 회사를 살리기 위한 노조의 적극적인 협조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파산 5년만에 옛 명성을 되찾았다. 미국GM이 몰락 위기를 극복하고 완벽하게 부활한 반면 한국GM은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무엇이 이 둘의 운명을 가른 것일까.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노조의 인식 차이와 그에 따른 생산성 차이가 결정적인 이유다.

 GM이 존폐의 위기까지 내몰린 근본적인 원인은 노조의 위기 불감증이었다. 노조는 회사를 적대하고 과도한 복지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일삼았다. 당시 노조도 설마 그런 위기가 찾아오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노조가 이젠 달라졌다. 밥 킹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은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조는 더 이상 회사의 적이 아닌 동지"라고 밝혔다. 위기를 겪기 전 임금동결이나 복리비용 축소를 용납하지 않으며 회사를 압박했던 강경한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그 배경에는 노조가 바뀌지 않으면 회사와 함께 공멸한다는 위기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실제로 UAW는 2015년까지 무파업을 선언하고 이중임금제를 도입해 신규 근로자의 임금을 절반수준으로 낮추는 데 합의하는 등 고비용 구조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번의 큰 위기가 미국GM에 보약이 된 셈이다. 이 같은 노조의 의식변화는 경쟁력 강화의 원동력이 되어 앞으로 닥칠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예방백신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미국GM의 사령탑에 오른 메리 바라 최고경영자는 기자회견에서 한국GM에 의미심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GM이 수익성과 생산성을 더욱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개선되지 않으면 생산량을 줄이거나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아울러 노동비용 상승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면 구조조정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전세계 20여개국에 진출한 GM의 해외공장 가운데 한국GM은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 공장으로 분류된다. 한국GM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지난 해 10%를 넘었다. 국내 10대 그룹 평균이 5.7%인 것을 감안하면 위험수위다. 설상가상으로 노조가 통상임금과 관련해 회사를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인건비 상승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GM의 한국 철수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한국GM 노조는 2011년부터 파업을 벌여왔으며 작년에도 10차례의 파업으로 생산라인이 멈춰섰다. 한국GM 노조에겐 미국GM이 겪었던 위기와 극복사례는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다. "GM이 한국에서 철수한다고 해도 받을 건 받아야 한다"는 한국GM 정종환 노조위원장의 발언에서 노사관계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이쯤 되면 GM이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GM이 한국에서 철수해도 노조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경쟁력이 없는 공장을 누군가 인수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회사를 망하게 한 '강성노조' 꼬리표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렵게 만든다.

 현대차는 운이 좋은 편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도요타, GM 등 경쟁사들의 실패와 위기 사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가 위기 불감증에 젖어 경쟁력 향상과 노사상생을 외면하는 이상 경쟁사들이 겪었던 위기는 언젠가 현대차에도 닥칠 게 분명하다. 피해갈 수 있는 위기를 맞이한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글로벌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노조가 상급단체의 정치파업에 끌려다니고 표심을 얻기 위한 계파간 파워게임에 몰두하는 동안 현대차의 경쟁력은 제자리에 맴돌고 있다. 해외공장과 비교해서도 터무니없이 낮은 생산성과 높은 임금, 잦은 파업과 해마다 이어지는 과도한 요구 등 이 모든 것이 현대차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 요인이 되고 있다.

 목표의식이 없고 현실에 안주하며 자신의 문제점을 오히려 합리화시키는 것을 일컫는 말이 있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 '비전 상실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약하게 불을 지핀 냄비 속에 들어간 개구리는 수온의 변화가 느린 나머지 자신에게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현대차가 '삶은 개구리 증후군'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선 현대차 노조의 의식 변화는 물론 노사 모두 대내외 환경변화에 대한 치밀한 준비가 절실하다. 강성노조였던 UAW가 위기를 경험하고 상생 기조로 돌아섰지만 현대차 노조는 불필요한 위기를 굳이 경험할 필요는 없다. GM처럼 회생의 기회가 없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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