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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오영수선생이 남긴 주옥같은 소설의 뿌리는 고향이었다. 그 뿌리를 근간으로 하여 주렁주렁 열린 열매 역시 고향의 애정(愛情)에서 고르쇠 물처럼 담아 낸 수액이었다. 언제나 고향 자랑에 목이 쉬던 선생이 어느 날 이 고향을 찾아오다 어이없이 당해야 했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한국 현대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동리 선생과 함께 서울에서 기차로 출발해 경주역에서 내려 김동리 선생과 헤어지고는 버스로 갈아타고 울산을 오게 되었다.

 어느 검문소 앞에서 검문을 받게 되었는데 검문자가 차에 올라 신분증을 제시 할 것을 요구했다.
 "신분증 없습니까?" "아, 나는 신분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오선생님의 대답이었다.
 "그럼 직업도 없습니까?" 베레모를 쓰고 약간 퉁명스레 대답하는 선생님을 검문자는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직업을 묻지 않소? 이양반아!" "아, 직업은 작가지요." "작가라? 작가? 글자로 한번 써보시오!"
 선생이 한자로 작가(作家)라고 써보이자 검문자는 나무라며 들었다.
 "그럼, 집짓는 목수(木手)라면 되지 작가라니? 쉬운 말로 하면 되는걸…. 앞으로 신분증을 꼭 가지고 다니시오." 하고 내려가 버렸다.
 시내 다방에서 마주 앉은 선생은 이 말을 하시면서
 "사람 중에 제일 무서운게 무식인거라…" 쓴웃음을 지으셨다.

 선생은 손을 꼽으며 겨우 날짜를 잡아 한번씩 찾아오는 고향에서 간혹 이런 일을 당하면 불쾌하고 수치스럽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나서 "평생가야 책 읽을 생각을 안하니 그렇지, 책을 읽어야 지식을 얻지! 안 그렇나? 부끄럽고 창피하단 말이다. 그럴 때는 고향이 갑자기 싫어질 때가 있단 말이다."

 1960년대 중반에 있었던 일이니 까마득한 옛날 얘기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고향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때로 고향이 싫어 질 때가 있다던 고향은 작가 오영수를 너무도 따뜻하고 뜨겁게 가슴에 품어 주었다. 그의 문학을 기리기 위해 지역신문사는 오영수 문학상을 제정해 전국적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키워 놓은지 오래다. 선생이 각별한 관심으로 지켜보시던 고향의 후배문인들의 수가 그 사이 수백명으로 늘어났는가 하면 오영수 문학관을 세워 이미 곳곳에 세워져 있는 문학비와 함께 울산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관 관광부가 지난 1월 28일 발표한 2013 국민독서 실태조사에서 울산이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도시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정기 간행물을 제외한 일반 도서를 성인들이 가장 많이 읽는다는 것은 문화도시에 걸맞는 사람들로 도시를 만들어 왔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시(市)와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문화도시를 지향하며 꾸준히 걸어온 결과였다. 울산은 독서운동과 도서출판 등 문화 사업과는 인연이 깊은 도시다.

 울주군 웅촌면 대대리 출신의 엄대섭 선생은 마을문고의 창시자로 도서관 설립 운동을 펼치면서 전국에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넉넉하지 못했던 가산을 다 털어 넣으면서 맨주먹으로 도서관 설립운동을 벌이며 숱한 일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천신만고로 끌고 가던 마을문고 운동을 마침 동향인 이었던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을 후원자로 앉히면서 도서보급운동을 활발하게 펼칠 수 있었다.

 또, 이 사실을 알게 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돕고 나섬으로써 한때 성공의 길로 들어선 적이 있었다.
 장·차관(長·次官) 부인들의 자선 모임인 양지회(陽地會)를 이끌던 영부인께서 전국의 오지마을이나 불우시설 등에 도서 전달 운동을 주력사업으로 펼쳤던 것이다. 뒤에 울산 출신의 모태진 은행장에게 도움을 크게 받기도 했다. 이런 엄대섭 선생은 우리나라 도사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었다. 울주군 웅촌면 출신의 엄대섭 선생이 같은 웅촌 출신의 이후락 실장에게 후광을 입었듯이 언양 출신의 오영수 선생은 또 언양 출신의 김기오 선생을 만나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다.

 6·25전란의 혼란스러웠던 사회가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오영수 선생은 우리나라 문학 평론의 초석이셨던 조연현 선생과 협의 한 다음 동향인인 김기오 선생을 찾아가 순수문예지를 발간하는 사업을 해 줄 것을 건의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출판업을 하고 있던 김기오 선생은 사업성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순수문예지 발간을 선뜻 지원하겠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한국문학사에서 최장수의 기록을 세우고 창간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결간 한 적이 없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월간 순수문예지 '현대문학'이 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익에 관계없이 미래를 내다보며 용단을 내리고 조연현 선생을 주간으로, 고향출신의 작가 오영수 선생을 편집장으로 내세웠던 선각자 김기오 선생의 장한 용단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소설가 오영수 역시 이 권위 있는 최고의 문학지 '현대문학'의 편집을 맡으므로서 더욱 문명을 떨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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