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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겨울 강을 건너오고 있다. 바람 속에는 부드럽고 온기에 찬 생명의 태동이 느껴진다.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의 꽃눈을 간질이고 침묵에 든 대지를 흔들어 깨운다. 봄바람의 유혹에는 온갖 것들이 깨어난다. 언 땅을 헤집고 나오는 씨앗, 낙엽 밑이나 응달에서 겨우내 숨죽여 지내던 곤충의 미세한 알들이 그가 전하는 말을 귀담아듣는다. 얼어 지내던 내 감성의 속 뜰에도 청순한 매화향이 날아든다.

 봄바람만큼 은혜로운 배달부도 없지 싶다. 보이지 않는 가방 속에다 신비의 선물로 가득 채웠다. 비밀정원을 연두로 칠할 붓, 요상한 모양을 만드는 마술 상자, 봄노래를 연주할 악기까지…. 온갖 생명의 편지가 들어있다. 묵은 생각을 떨치고 일어설 용기를 주는 메시지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사랑의 글귀가 가득하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라는 말에는 밑줄까지 스윽 그어놓았다. 그는 위대한 화가이면서 천상의 시인이다.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서면 가슴이 설렌다. 땅속 깊숙한 곳에서나 먼 아지랑이 너머에서 북 소리, 징 소리, 꽹과리 소리를 듣는다. TV 화면에서는 다랑이 논을 가는 필부(匹夫)의 어깨와 엉덩이는 저절로 실룩샐룩, 황소의 고삐를 잡은 손목에는 힘이 들어가고 콧노래가 흥겹다.

 바야흐로 봄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도록 가르치는 봄바람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보다 들리지 않는 것을 헤아린다 함은 얼마나 감각 있는 일인가. 그것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귀중한 거라서 그를 보거나 들을 수 있는 이라면 축복받은 사람이라 하겠다. 이보다 더한 감동이 어디 있으랴.

 나는 다시 깨어나는 부드러운 대지 위를 양발로 딛고 싶다. 하늘을 향해 팔을 힘껏 뻗치고 봄바람을 맞는 들녘이 되고 싶다. 땅속에 숨어 꿈틀거리는 씨앗이 되고 싶다가,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실개천의 버들강아지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선 자리가 세상의 중심이었으면 한다. 봄에는 어떤 화두로 지낼까. 부질없는 집착이나 헛된 망상은 가뭇없이 날려 보내고 슬프거나 외롭거나, 우울하거나 원망 섞인 마음에서 달려 나와 새 생명과 손잡고 어우러져야 할 터다.

 쓸데없는 체면이나 가면 따위는 벗어던지고 오롯이 내 안에 말간 거울 하나 달아둘 일이다. 그래서 더는 칙칙하거나 습한 곳을 지나 풋풋하고 싱그러운 봄 마중을 즐길 테다. 다시 깨어나야 한다. 새 날개를 달고 창공을 나는 종달새처럼 생명의 축가를 전하며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야 한다. 봄바람이 전하는 편지도 읽지 못하는 바보는 싫다. 나름의 잎이든 꽃이든 피울 일이다.

 그래서 벌과 나비가 날아들고 융숭한 숲으로 새들이 찾아들도록 거들어야한다. 귀한 시절을 허투루 쓰지 말라고, 지금이 더없는 때라고, 봄바람이 귓속말로 다가와 알리지 않는가. 새해에는 너나없이 희망이라는 보따리를 그러안는다. 하나, 지금쯤 그 마음이 흐지부지 흔들리고 있다면 다시 한 번 다잡을 일이다.

 시간은 신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다음 세상 신 앞에서 자신이 쓴 시간에 대해 정확히 해명해야 한다'라고 요한 세바스틴은 단언했다고 들었다. 이 봄, 신이 준 귀한 선물을 그대는 어찌 쓰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싶다. 봄바람이 가는 입김으로 창문을 살갑게 두드린다. 그가 전하는 생명의 말, 희망의 말, 감사의 말을 전해 듣기 위해 더러는 새벽잠을 설치는 이라면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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