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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고도 진주(晉州)에서는 개천예술제(開天藝術祭)가 열린다.

 개천예술제는 언론인이자 시인이었던 설창수선생이 창안해 개최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예술제가 되었다. 나는 한때 이 행사의 백일장 심사에 참여한 적이 있어 늘 관심을 두고 있는 편이지만 그럴 때마다 의아스럽게 여긴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늘과 진주가 무슨 관계의 전설이 있기에 개천(開川)이란 단어를 행사 명칭으로 삼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나의 의아심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언젠가 이 예술제의 명칭을 두고 진주에서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과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여론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결과는 그대로 사용하자는 쪽으로 결정을 보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번 돌아볼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왜 백두산 천지나 강화도 마니산, 아니면 태백산과 같이 하늘과 아무런 역사나 설화도 없는 진주에서 개천예술제를 열게 되었을까? 그것은 설창수 시인이 최초로 예술제를 개최하는 것을 하늘로부터 내려온 환웅이 우리민족을 있게한 근원이 되었다는 설화의 이미지를 본따서 붙인 이름이었다. 설창수 선생은 진주에 그와 같은 의미를 고착화 하면서 예술의 으뜸이 되는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 전국 팔도를 돌면서 각도마다 한줌씩 담아온 흙을 제단에 놓고 개천예술제를 열게 했다는 것을 선생이 울산에서 시화전을 가지면서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다른 곳 의 설화라 하더라도 진주의 문화에 접목시키고 그것을 곧 진주의 문화로 만들어 버리면 될게 아니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우리의 문화, 즉 울산의 문화는 울산인에 의해서 만들어야 하고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뜻을 전제로 울산으로 눈을 돌려야 할 곳이 있다.

 울주군 두서면 활천리에 신라의 명기(名妓) 전화앵의 묘가 있다. 이 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해 1988년 사학자 이현희에 의해 관심을 유도하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전화앵이 동도(東都)의 기(妓)이며 열박령은 그의 묘가 있는 곳이라 하였다. 열박령은 울주군 두서면 활천리에 있던 고개로 지금은 경부고속도로로 변해버렸다. 또 전화앵은 꽃 같은 아름다움과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가진 여인이라는 뜻이다. 그런 전화앵의 묘를 울산문인협회의 회원으로  KBS 부산총국에 재직했던 이양훈씨가  1996년 KBS 울산국에서 근무할 당시 찾아 낸 것이다.

 이양훈 씨가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6시 내고향 프로에 널리 알리게 되자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에서 관심을 보이게 되었고 이어서 울산학춤의 연구개발자인 백성(白性)김성수 스님이 전화앵제를 열게 되었다. 백성스님은 자신의 토굴에다 전화앵의 혼백을 모시고 수년 동안 사제를 들여 제사를 지내며 기려왔다. 그는 전화앵이 신라의 기녀로 알려져 있으나 기생제도가 없던 신라에서, 특히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개국할 시기인 라말여초의 시대를 살았던 신라의 예인(藝人) 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백성스님은 또 태화루 시를 남긴 김극기와 같은 고명한 학자가 전화앵을 두고 애절하게 예찬한 시한편으로도 능히 그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닌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다. 여기에 향토문화계발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는 울주문화원 변양섭 원장은 사료에 의한 고증을 더 충실하게 하기 위해 울산발전연구원에 의뢰해 묘를 발굴한 다음 다시 묘를 말끔히 단장하고 해마다 전화앵제를 개최하고 있다.
 혹자는 한낱 기생에 불과한 여자를 그렇게 해야할 일이 있느냐 할지 모른다.

 아니다. 설사 전화앵이 천한 기생이었다 하더라도 그를 도외시할수는 없는 일이다. 논개와 황진이를 기생이라고 하여 역사에서 지워버릴수 없듯이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는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이 전화앵에 대해 더 깊은 연구와 고증을 계속하여 학술적인 가치를 높이면서 향토문화에 접목시켜야 할 것이다. 개천예술제가 한국의 대표적이 예술제가 되었듯이.

 그러나 무리한 비약이나 해석으로 역사에 우(愚)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이 정도의 사료라면 나는 이를 연구 계발하고 닦으면 또 하나의 훌륭한 향토 문화가 생겨나리라 믿는다. 향토문화는 우리의 일상과 주변에 수없이 깔려있다. 그것을 누가 먼저 찾아내 갈고 닦아서 우리의 문화로 계발하느냐에 따라 금도 되고 은도 되고 때로는 다이아몬드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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