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 해가 지난 일인데도 내 기억 속 창고에는 그날 보았던 TV 속 화면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태극기를 덮은 망자의 시신이 연화장 화장로 8번으로 들어갈 때 그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을 떠나보내는 아내, 아버지와 이승을 마지막으로 이별하는 아들과 딸의 눈물로 화면이 가득 찼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시골 촌부의 소박한 웃음으로 도덕과 정의를 외치며 한 나라의 지도자이셨던 분이 왜 스스로 비극을 선택했을까. 문제의 해결방법이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목숨을 반납해야 할 정도로 절박했던 걸까. 사람의 욕심은 앉은 자리에 따라 달라졌던 것일까.

 돈은 혼자 오지 않고 언제나 어두운 그림자를 데리고 온다고 했다. 박연차 리스트로 시작된 문제의 돈이 비극을 데리고 온 시발점이었음을 방송을 통해 알게 되면서 허탈감이 일었다. 돈과 물질의 유혹에 대해 생각이 깊어졌다. 탐욕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우리는 얼마만큼 누리고 살면 만족할 수 있을까. 많이 가진 사람은 그만큼 더 행복할까. 그렇다고 많이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고 다 불행한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물질의 많고 적음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후진국으로 알고 있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고 했다. 현대인들은 더 많은 돈과 더 넓고 좋은 집,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소망이다.

 얼마 전에 경험한 내 얘기다. 저녁밥상을 물리다가 TV 화면에 자꾸만 눈이 가졌다. 백혈병에 걸린 세 살 난 어린 연호가 온몸으로 주삿바늘의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화면에 마음이 아렸다. 거기다 연호의 아버지는 병원비를 벌기 위해 당장 새벽 길거리에서 막노동 일감을 찾아야할 형편인 것에 눈가까지 젖었다. 연호를 돌봐줄 보호자조차 없는 딱한 사정에는 방금 먹은 저녁밥이 미안할 정도로 속이 불편했다. '한통의 전화성금'에 마음을 보태고 수화기를 막 내려놓던 차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좋은 일이 있으니, 빨리 우리 집으로 와주세요." 근처에 사는 동생의 기분 좋은 호출이었다. 대충 밥상을 물리고 동생네로 핸들을 돌렸다. 도착한 동생네 대문 앞에는 방금 들여온 고급 승용차가 검은색 정장을 빼입고 보란 듯이 서 있었다. 기특하고 놀라운 사실에 황소 눈으로 축하를 하면서도 속내는 부러움이 더 컸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며 지내는 동생네는 그간 바지런히 적금을 부어 마침내 목돈을 타게 되었단다. 스무 해가 다된 낡고 병든 차,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어야 하던 것을 이참에 새것으로 교환했단다. 모처럼 기분 좋은 일을 누나인 내게 자랑도 할 겸 시승식을 시켜주겠다는 거였다.

 차는 조용한 음악과 함께 출발했다. 차안은 새 차 냄새로 가득하고 편안한 승차감에 나는 공처럼 이리저리 몸을 굴렸다. 마치 서커스단 원숭이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나긋나긋한 음성, '무조건 달려갈 거야~'를 외치는 남자가수에는 또 얼마나 매력과 호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돈이 좋기는 하다며 맞장구를 쳤다. 새 차는 금세 정자바닷가를 달리고 있었다. 비릿하고 짭조름한 갯냄새가 '달짝지근' 이었다. 전망 좋은 찻집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간 곳에서는 직원의 대우도 다르게 느껴졌다. 따뜻한 헤이즐넛 커피 향은 또 얼마나 진하던지. 그때 밤바다에 비친 키다리 불빛은 저절로 휘청거렸다.

 밤늦게 돌아온 동생 집 앞에서 주차해 두었던 내 차로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왠지 기가 한풀 꺾여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건너 한 번씩 세차를 하면서 애지중지하던 내차에서 나는 엔진 소리가 그렇게 요란하게 들리기는 처음이었다. 조금 전 동생 차에 비하면 턱없이 좁은데다가 승차감도 형편없었다.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이었다. 그런 내차가 싫어졌다.

 "우리도 새 차로 바꿉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툭' 던진 말이었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부디 정신 좀 차리라'며 크게 나무랐다. 잠시 비교하며 흔들렸던 내 마음을 애써 제자리로 돌려야했다. 초저녁, TV 화면 속의 연호에게 미안해했던 마음은 간데없고 아무 탈 없는 승용차 타령을 하는 한심한 나였다.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전직 대통령으로써의 임기를 마치고 고향 마을에서 귀향보고를 하던 모습이 얼마나 존경스러웠는지 모른다. 순수 봉화마을 주민으로 돌아가 환영인파 앞에서 두 손을 흔들어 보이는 두 분의 환한 웃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