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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도사 극락보전 옆 만첩홍매. 만첩홍매와 분홍매는 아직 한 두송이만 피어있다.
# 3월 사진여행 명소
누가 먼저 기다렸다고 할 수 있을까. 통도사 홍매화가 그렇게 아름답다는 말은 예전부터 수없이 들어왔지만 진작에 가보지는 못했다. 매년 봄을 기다리며 사진으로만 홍매화의 아름다움을 감상해오다 올해가 되어서야 그 앞에 서게 됐다. 생각해보니, 통도사의 홍매화 나무는 350년이 넘도록 수명을 이어왔다하니 홍매화가 기다린 시간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 누가 먼저더라도 봄마중에 나선 서로의 기쁜 기다림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냐 싶어 그냥 설레는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처음이지만 울산에서 통도사까지 가는 길은 익숙했다. 초행길이라 생각했는데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길이었다. 울산 도심에서 30분정도 달리다보면 금방 통도사에 도착한다. 쭉 뻗어 우거진 소나무들 사이를 지나는 통도사 진입로부터 기분좋게 만든다. 좀 더 천천히 이 기분을 만끽하며 걸어보고 싶었는데, 또 다른 기다림이 있다는 핑계로 그러지 못했다. 왜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오지 못했을까. 다음에 다시 마주할 것을 약속하고 소나무길을 지나쳤다.
 사찰 옆으로 흐르는 작은 천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봄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추운 겨울동안 얼어있던 천이 따스한 기운을 타고 깨어나기 시작했다.


 평일 이른 오전시간인데도 통도사를 찾은 사람은 꽤나 많았다. 다들 어깨에 커다란 카메라를 한 대씩 들었다. 3월이면 사진가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라고 하더니 그 명성을 알만했다.
 영각 앞에 고풍스럽게 핀 매화를 보고서는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경탄의 수준이었다. 스피노자가 말하길 경탄이란 "어떤 사물에 대한 관념으로 이 특수한 관념은 다른 관념과는 아무런 연결도 갖지 않기 때문에 정신은 그 관념 안에서 확고하게 머문다"고 했다.
 홍매화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그윽한 매화향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든다. 혹한의 추위에 얼어 죽을지라도 결코 향기는 팔지 않는다고 개화와 함께 맑게 느껴지는 향이 고풍스럽다.
 

▲ 영각 앞 자장매. 3월이면 전국의 사진가들이 홍매화를 담으러 이곳을 찾는다.
# 단연 으뜸 영각 앞 '자장매'
영각 앞의 홍매화는 통도사를 창건한 신라시대 자장율사의 법명에서 비롯돼 '자장매'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1650년을 전후한 시기에 통도사의 스님들이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심은 매화나무다.  그 이름만큼이나 자장매는  통도사 홍매화 중 으뜸이다. 수령 350년의 홍매화인 자장매는 1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대가람의 경내 영각 오른쪽 처마에 있다.


 통도사는 우리나라의 삼보사찰(三寶寺刹)의 으뜸인 불보사찰이다. 즉,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불보(佛寶)사찰로,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法)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法寶)사찰,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래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사찰로 이름나 있다. 이것은 불교의 요체인 불, 법, 승 삼보가 각 사찰에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의 특별히 강조되어 표현된 것이다.
 통도사의 창건설화는 이렇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건너가 수도를 하고 부처님의 숭고한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고자 부처님의 가사와 사리, 대장경의 일부분을 받들고 신라로 돌아왔다. 그리해 사리를 모실 절을 세우기로 하고 문수보살께 절을 세우기에 적당한 곳을 물었다.


 그랬더니 어느 날 밤 꿈에 훌륭하게 차려입은 동자가 나타나서는 "동국에 부처님을 모시도록 하라"며 일러주었다. 자장스님은 동국이 신라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나, 신라의 어느 곳이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동쪽으로 날려보냈더니 얼마 후 오리는 한 송이 칡꽃을 물고 돌아왔다. 스님은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절을 세우라는 것이 부처님의 뜻임을 깨닫고 흰 눈이 쌓여 있는 한 겨울에 칡꽃을 찾아 나섰다.
 며칠을 찾아다니던 어느 날 양산에서 좀 더 들어가는 영축산에 이르러 보니 큰못이 있었다. 그 못 주변에 신기하게도 두 송이의 칡꽃이 피어있었다. 자장스님이 인근의 경치를 살펴보니 송림이 울창하고 산봉우리들이 열을 지어 둘러쳐져 있었으며 검푸른 못물은 마치 고요히 잠들어 있는 듯했다. 스님은 세상에서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은 다시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곳에 절을 세웠다. 그 곳이 바로 통도사다.
 

▲ 부처가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띤 금강계단.
# 느린 걸음으로 즐기는 여유
통도사에는 자장매 이외에도 두 그루의 매화나무가 자라고 있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만첩홍매와 분홍매 두 그루다. 천왕문에 들어서면 정면에 불이문이 보이고 좌측에 범종루, 우측에 극락전이 있다. 이 극락전과 천왕문 사시의 우측에 통도사 종무소가 있고 그 중간에 만첩홍매와 분홍매가 있다.
 아직 만첩홍매와 분홍매는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금씩 꽃망울을 틔우며 때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백매화가 단아하고 청아하다면 홍매화는 열정적이다. 야윈 듯한 가지 위에 점점이 붉은색에 흰색 물감을 조금 떨어뜨린 듯한 화사한 홍매화는 청명한 봄 하늘과 조화를 이뤄 이글이글 타는 듯한 모양새다. 
 홍매화 감상을 마쳤다면 들뜬 마음을 살짝 가라앉히며 느린 걸음으로 사찰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통도사의 가람 형태는 신라 이래 전통 법식에서 벗어나 있다.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배치된 산지도 평지도 아닌 구릉 형태로서 탑이 자유롭게 배치된 자유식의 형태로 갖추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상로전(上爐殿)과 통도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한 중로전(中爐殿), 그리고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하로전(下爐殿)으로 구분된다.
 현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전각이 소실된 후,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12개의 큰 법당이 있고 영축산 내에는 20여 개의 암자가 들어서 있으며 전각의 수는 80여 동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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