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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 가니 엄마가 쑥국을 끓여 놓고 기다리신다. 한 입 떠먹으니 봄 기운이 온 몸에 퍼진다. 전에는 쑥을 잘 먹지 않았다. 국이나 떡을 해 놓으면 냄새가 강해서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나는 쑥 캐기의 달인이었다. 남들이 쑥이 벌써 나왔을까 할 무렵부터 들을 밟으며 쑥을 캐기 시작했다. 아기 이처럼 작고 여린 쑥을 찾아 온 마을을 헤집고 다녀도 한 웅큼 캘까 말까 했지만 3월이 오기도 전에 겨울옷을 입고 쑥을 찾아다녔다.

 해가 질 무렵까지 돌아오지 않는 나를 찾으러 나온 엄마한테 잡혀 집으로 끌려가는 일도 있었다. 그 날 밤은 영락없이 콧물을 질질 흘리며 감기를 만나야 했지만 이튿날 또 들에 나갔다. 보다 못한 엄마가 쑥을 마당에 내동댕이친 적도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집에 있지 못했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인절미도 필요없었고, 놀자고 부르는 친구도 소용없었다. 며칠 캐온 쑥을 물에 담갔다가 건져내어서 장독대에 올려두면 다음날 꽃처럼 피어나서 나를 보고 웃었다. 정말 꽃이었다.

 엄마는 내가 캐온 쑥을 모아 내다 파셨다. 쑥국을 끓여 놓아도 먹지 않자 언양 장에 내다 팔아서 그 돈을 쥐어주었다. 그렇지만 돈도 재미가 없었다. 내가 시큰둥하자 엄마는 다시 문방구에 들러 공책과 낱장으로 되어있는 종이로 바꿔오셨다. 변변한 시장바구니 없이 커다란 대야에 이것저것 담아오던 때라 엄마가 사오는 공책에는 늘 생선물이 배어 있었다. 엄마가 사온 공책에 아무리 예쁘게 글씨를 써도 냄새가 났다. 생선에서 흘러나온 물이 배인 공책을 들여다보기 싫어서 다시 들로 나갔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며칠 전, 아이들을 데리고 쑥을 캐러 갔다. 늙은 소나무와 명자꽃, 산비둘기가 우는 산 아래 논두렁에 엎드려 쑥을 캤다. 그곳에는 나보다 먼저 와 쑥을 캐고 있는 한 아이가 있었다. 어린 시절 나였다. 산비둘기가 쉼 없이 구구구 울었다. 소나무 성긴 잎 사이로 바람 지나는 소리가 들렸고, 마른 잎과 새순 사이에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솜양지꽃과 냉이꽃이 한들거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는 순간, 내 몸이 아지랑이처럼 풀어지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나를 통과하고, 산비둘기가 머리 위를 날아다닐 때 나는 알았다.

 이른 계절, 내가 찾아다닌 것은 돈이나 생선물이 배인 공책이 아니라 봄이었다는 것을. 그것이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이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찾고 있을까. 아이들의 학교 성적과 오늘 밤 써야할 원고, 저녁 찬거리. 그리고 돌아갈 길의 교통 체증과 밀린 빨래…. 그것들로부터의 자유일까? 내 곁에서 촌스런 겨울 외투를 걸치고 쑥을 캐는 아이를 바라보며 내가 찾는 것도 너처럼 봄이라고, 희망이라고, 나는 아직도 너라고 위안하며 일어나 간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점묘법을 공부하는 세상의 나무들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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