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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체는 오래되면 퇴색한다. 아리따운 꽃들도 시간이 가면 시들어진다. 부부 관계도 그렇게 될까. 오래 전에 본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골목길을 사이에 둔 이웃집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불혹의 아주머니가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고 오붓하게 살아가다 모진 병에 걸렸다. 폐결핵이었다. 지금이야 치료가 가능하지만 그때만 해도 완치되기 어려운 병이었다. 시난고난 앓아 오던 아주머니가 어느 날 아침 숨을 거두었다.

 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남편과 시어머니는 장롱을 돌려놓았다. 가까이 사는 친척들이 비보를 듣고 달려와 보니 유명을 달리한 주인의 안방에는 장롱이 허옇게 뒤통수를 내밀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장롱이 왜 이러냐고 물으니 시어머니의 말이 가관이었다. 이렇게 해야 재혼할 상대가 곧바로 생긴다는 것이다.

 누릿한 초가지붕 위에는 망자의 흰 적삼이 얹히고 부엌에서는 사자 밥을 짓고, 안과 밖에서 장례 준비에 웅성거렸다. 그 순간 숨이 끊어진 줄 알았던 아주머니가 캑캑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그때는 장례를 치러도 요즘같이 병원 장례식장에서 하지 않았다. 명을 다하는 곳도 집이고, 장례를 치르는 곳 또한 집이었다.

 보통 숨이 끊어지면 솜으로 입과 귀를 막고 시체를 이불로 덮었다. 하지만 그 집은 무거운 장롱부터 돌려놓는 바람에 죽은 자에 대한 조치를 늦게 한 것이다. 그 덕분인지 숨이 멎은 사람이 숨이 트여 살아났다.

 장롱을 돌려야 재혼할 사람이 빨리 생긴다는 '설' 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물론 상처를 하여 재혼하는 것이야 막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어떻게 그 생각까지 할 수 있었을까. 일가친척들도 멀뚱히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가 놀란 자라마냥 목을 집어넣고는 되돌아갔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부랴부랴 장롱을 다시 되돌리느라 진땀을 뺐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그 일이 비수가 되어 칼날 같은 말이 그 집 마당에 퍼져 나갔다. 아주머니는 말할 기운이 조금만 생기면 남편을 향해 뾰족한 화살을 쏘아댔다.

 따지고 보면 아주머니의 말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오다가다 만난 사이도 아니며, 오갈 곳 없는 과수댁이 남모르게 저녁답에 슬그머니 살려고 들어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꽃봉오리 같은 십 팔세에 사주단자가 오고가서 귀밑머리 마주 풀어 맺은 인연인데 이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허구한 날 남편을 향해 원망의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면 어린 자식과 남편을 두고 가려니, 억울해서 되돌아온 건지도 모른다.

 무단이 그 일이 생각나서 남편을 향해, 만약에 내가 먼저 간다면 여느 집처럼 장롱부터 돌릴 거냐고 물었다. 남편은 대답 대신 픽 웃어넘겼다. 무슨 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인지 나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원래 부부란 입는 의복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낯익은 옷보다 새것이 더 좋다. 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새 물내 풍기는 옷도 좋지만, 늘 입던 옷이 몸에 맞고 활동하기에도 더 편한 법이라고. 그 말을 들은 남편의 눈꼬리에 까닭 모를 웃음이 묻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이 한 가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그것이 뭐냐고 남편이 물었다. 나는 새집을 지을 때 붙박이장을 만든 것이라 했다. 우리 장롱은 함부로 앞뒤로 돌리지 못하도록 아예 방에 붙어버린 붙박이장이다. 아무도 춤을 추게 할 수 없다. 남편의 입이 약간 들썩이려다 말았다.

 세상 부부는 처음 만났을 때 모두 수밀도와 같이 달콤하게 살아간다. 살을 맞대고 인정 있게 지내다가도 여차하면 모래 논에 물 잦아지듯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 부부의 정이던가. 참으로 알 듯 하다가도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이 인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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