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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정년을 맞았다. 남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일들이 나의 일이 되고 말았다. 그저 하루를 사는 일에 바빠 시간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는 편안히 쉬라는 날이 온 것이다. 남편은 철도 공무원이었다. 하절기에는 열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로 온 몸을 땀으로 적셔야만 했다. 또 동절기에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레일 위에서 얼음이 되어 돌아왔다.

 남편은 자신의 손이 아니면 기차가 움직이지도 않을 것처럼 오로지 직장에 전념했다.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직장에서 없어도 될 사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될 사람과, 꼭 있어야 될 사람, 이렇게 세 부류가 있는데 나는 꼭 있어야 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말에 책임이라도 지려는 듯 시계바늘처럼 직장 생활에 철두철미했다. 여름이면 비상근무가 많았다. 홍수라도 날 때면 삼사 일씩 집에 못 들어왔다. 태풍이 불어오는 날은 어김없이 비상 근무였다. 추석이나 설날이 되어 혹 돌아가며 휴무를 해도 고향이 멀리 있는 직원을 배려해 주는 남편이었다. 그러니 나는 언제나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남편을 기다리는 명절이 되었다. 그렇게 살아 온 날이 몇 년이었던가.

 남들은 여행도 가고 명절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데 꼭 출근을 해야 하느냐고 투덜대기도 했다. 그러면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 여행타령이냐고 핀잔을 주면서 출근을 서둘렀다. 그도 사람의 몸인 이상 긴 근무시간이 어찌 피곤하지 않았을까마는 성격상 몸이 어지간히 아파도 표시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연가나 병가도 좀처럼 쓰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은 자고 일어나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출근하는 남편은 양팔을 훨훨 저으며 출근을 했다.

 결혼을 하고 그런 남편을 위해 나는 삼십 년 동안 도시락을 쌌다. 남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여름날 도시락은 뜨뜻미지근하고, 겨울의 도시락은 먹고 나면 오히려 더 추워지는 현상을 먹어본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40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지났다. 그이는 기차 등에다 청춘을 다 실어 보냈고, 나는 그이의 등에 내 청춘을 실어 보냈다. 그렇게 먼 나라 이야기로만 여겼던 남편이 정년퇴임을 맞았다. 퇴임식장에 시간 맞춰 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머리가 멍하고 꼭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아 인생이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의 무상함을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일까.

 뒤돌아보니 내가 도시락을 싸며 힘들어 하고 남편은 도시락을 더위와 추위를 피해가며 먹었던 그 시절이 가장 화창했던 봄날이 아니었던가. 그런 마음이 자꾸만 앞섰다. 퇴임을 앞둔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이 있다. 신의주까지 선로를 놓아서 지축을 울리며 기차를 시운전해 보는 것이었다. 남북한이 아니라 중국대륙까지 기차가 다닐 수 있게 되기를 염원했다. 그것이 어찌 남편만의 바람이랴마는 퇴임을 하려니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다. 퇴임식 때 그이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보았다. 나도 덩달아 이슬이 맺혔다. 그가 퇴임을 하건만 내가 더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어인 일인지.

 지난 사십 년을 그의 마음에 업혀 출근하고 퇴근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허하고 쓸쓸한 마음을 눈으로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는 단상에서 인사말을 할 때 목이 막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도 따라 가슴이 막혀 호흡조차 둔탁해졌다. 이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멈추어 놓고 싶었다. 시간은 기차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연착이 없다. 만약 세월도 인간의 힘으로 다스릴 수 있다면 부자들은 힘으로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햇빛도 달빛도 어느 누구에게 더 비추고 덜 비추지 않는다.

 세월이 우리 부부를 퇴임의 종착역에서 내리라고 한다. 우리는 빠른 기차에서 내려 환승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어떤 모양의 인생 기차를 타게 될까. 이제는 이모작을 찾아야 하리라. 더 천천히 가게 될까. 아니면 더 빠르게 가는 기차를 타야 할까. 인생의 이모작을 깊이 있게 보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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