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산처럼 표정이 풍부하고 의미가 다양한 사물이 있을까? 물론 사물의 표정이란 사람의 감정이 투영된 것이겠지만, 우산은 적절한 크기와 존재감으로 영화와 같은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소도구이다.

 동풍이 부는 봄의 첫날, 우산을 타고 내려온 유쾌한 보모 '메리 포핀스'가 있다. 그녀는 커다란 가방을 갖고 있는데, 그 가방에선 신기한 물건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메리 포핀스가 타고 날아다니는 우산. 그 우산은 우리를 상상의 시공간으로 들어가게 하는 신비한 능력을 지녔다.

 이연걸이 주연한 영화 <황비홍2>는 화려한 우산 액션이 볼만하다. 황비홍은 상대방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도구로 우산을 사용한다. 물론 그 무술은 초절정이지만, 우산을 호신용 도구로 사용한 것은 막대기처럼 길쭉한 생김새로 미루어 우산이 발명된 초기부터의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우산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사랑은 비를 타고>이다. 주인공 돈 록우드는 사랑의 기쁨에 들떠 검은 박쥐우산을 들고 빗속에서 탭댄스를 추면서 그 유명한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란 노래를 부른다. 이때 우산은 쏟아지는 비처럼 사랑의 환희를 표현하는 낭만적인 소품이다.

 이처럼 우산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어 사용된다. 하지만 역시 우산은 비를 막아주는 도구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인연이 되어 만나거나 헤어진 숱한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우산은 한정된 공간을 가지고 있고, 둘이 같이 쓰기엔 빠듯한 그 공간에 누군가를 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각별한 사이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연인들은 상대방이 우산을 갖고 있더라도 굳이 하나의 우산을 같이 쓴다. 우산대는 남자가 쥐고, 여자 쪽으로 우산을 슬쩍 기울여 자신의 어깨는 고스란히 비에 젖음으로써 상대에 대한 마음 씀과 배려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산은 원래는 비가 아닌 햇빛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산을 뜻하는 '엄브렐러(Umbrella)'는 그늘을 뜻하는 라틴어 'Umbra'에서 유래된 것이다. 현재의 양산이 우산의 조상인 셈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우산을 쓰는 것은 나약한 행동으로 여겨져 남성들은 비 오는 날이면 우산 대신 모자를 쓰고 마차를 타거나, 아니면 아예 그냥 비를 맞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과 같은 우산은 영국의 조나스 한웨이라는 무역상이 발명한 것이다. 그는 우산을 보급하기 위해 1750년부터 30년 동안, 비가 오나 안 오나 외출할 때마다 우산을 가지고 다녔단다. 대단한 정성이다.

 조나스 한웨이의 정성이 통했는지 이제 우산은 비 오는 날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되었다. 갈수록 대기가 오염되면서 비를 맞으면 대머리가 된다는 산성비 공포까지 확산되어, 비 오는 날 그대로 비를 맞는 것은 용기를 넘어 무모한 행동으로 비쳐지게 된 것이다. 우산의 형태는 우산대에서 살이 뻗어나가는 초기의 모습에서 거의 변하지 않은 반면, 우산에 대한 인식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급속히 달라지게 된 셈이다.

 비를 막아주는 우산의 기능 때문에 이제 우산은 어떤 위험으로부터 막아주고 보호해준다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핵이 없는 나라가 핵을 보유한 인접국의 보호를 받는다는 '핵우산'이란 말이나,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공제회 명칭이 '노란우산'인 것은 이러한 의미의 확대를 보여준다. 우리 각자도 서로의 우산이 되면 좋겠다. 이 팍팍한 삶을 견디고 살아가게 하는 것은, 비좁지만 우산 안에 불러들여 비를 덜 맞도록 가만히 우산을 기울여주는 일이다.

   이문조 시인의 시처럼 서로서로가 '몸도 마음도 젖지 않게 해주는/ 다정한 우산'이 되면 좋겠다. 어깨를 감싸 안고 나란히 걷는다면 먼 길도 성큼 가까워 보일 것이다.
 가정은 아이들의 우산이고, 국가는 국민들의 우산이다. 우리 우산은 튼튼하고 견고한지, 아니, 우산이 우산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