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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 섬진의 들과 눈앞에 지리를 품은 수도 도량
[일상탈출-구례 사성암]
2014년 05월 15일 (목) 21:01:27 김정규 kjk@ulsanpress.net

부처님 오신 날을 지나 찾아가는 절집은 야단법석의 분주함이 사라져 좋다.
 오래된 것들의 향기와 고즈넉한 절집의 분위기는 그저 지나치는 풍경만으로도 위안을 주곤 한다.
 산 밑자락에서 택시를 탔다. 절집으로 향하는 길은 외지고 좁아 차량 교행이 힘들어 일반 차량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구불구불 돌아 구도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10분이면 족했다. 그 흔한 산문도 없다. 경사 급한 길옆으로 초록의 물결들이 가끔 비를 품은 바람에 고개를 숙일 뿐 절집으로 가는 길은 더없이 고요하다. 숨이 조금 찰 때쯤 별안간 깎아지른 절벽에 기대 둥지를 튼 사성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기척조차 없는 절집마당엔 부처님 오신 날 매단 연등만 만다라처럼 환했다.
 

   
▲ 사성암 마당 아래로 구름이 순식간에 일어선다. 발아래로 섬진강이 품은 구례의 너른들판을 품고 눈앞엔 지리산의 첩첩산중이 수묵화처럼 펼쳐지는 사성암의 풍경은 사람의 발길을 이끄는 힘이 된다.
# 원효가 손톱으로 그린 마애불
사성암(전남 문화재자료 제33호)은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들판에 우뚝 솟은 오산(530m) 정상부근에 자리 잡고 있다. 1500여 년 전 백제 성왕 시절 연기조사가 이 땅이 첫 화엄도량을 세우고자 터를 잡았고 그 이후 원효(元曉), 의상(義湘), 도선(道詵), 진각(眞覺)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절집 마당에 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유리광전이다. 40여m의 벼랑 중간에 반은 절벽에 기대고 반은 땅바닥에서 올린 기둥에 의지해 지은 법당이다. 올려다보면 웅장함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붉은 기둥과 하늘로 열린 처마의 여백이 완벽한 수묵화의 선경이다. 둘러보면 요사채를 제외한 법당들은 전부 절벽 위에 터를 잡았다. 드러내지 않고 숨은 듯 조용히 기원과 정진을 갈구하는 절집의 마음이 보인다.
 유리광전은 법당 옆으로 물처럼 흘러내린 계단을 올라야 한다. 깎아낸 돌들이 담처럼 쌓였고 그 위 사람들의 기원이 담긴 기왓장을 덮어 정갈하고 가지런하다. 유리광전은 원효가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는 약사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천 년 전 원효가 어떻게 이 까마득한 곳에 불상을 새겼는지 알 수 없지만, 약사불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사람들의 기원을 들어주고 있으니 원효의 의도는 이루어진 셈이다.

 전각에 오르면 한눈에 차고 넘치게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 앞에 넋을 놓는다. 발아래로 섬진강이 풀어놓은 구례의 너른 들이 장대하고, 눈을 들면 지리산의 첩첩능선이 장엄하다. 그 산자락 아래 연기조사가 화엄의 세상을 구현하려 세운 화엄사가 아스라이 잠겨있다.
 약사불은 왼손에 약사발을 들고 있는 3.9m의 크기로 상투 모양 머리와 주름진 옷매무새가 특이하다. 학자들은 그 표현양식이나 조각기법으로 미루어 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법당 안에는 절벽에 면한 면을 유리로 채워 약사불을 친견할 수 있도록 했다.
 
   
▲ 산왕전 옆 절벽의 선과 선들이 만들어낸 부처의 얼굴.
# 도선이 참선에 들었다던 도선굴
산 아래 낮게 깔린 구름이 순식간에 피어올라 지리의 능선을 지우고 섬진의 들판을 지웠다. 절집 앞마당조차 무채색의 세상에 빠져 고요히 가라앉는다. 구름에 잠긴 몽환의 풍경 속에서 현실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진 듯하다.
 옆 절벽으로 오르면 극락전과 선방이 벼랑 사이에 자리하고 맞은편에 800년의 시간을 견뎌온 귀목나무가 격이 깊고 당당하게 서 있다. 구름 속에서 나무는 색을 버리고 형체만 취해 더 웅장하다.
 절벽을 둘러 난 길을 따라가면 나지막한 담장을 앞에 두고 벼랑 안에 둥지처럼 자리한 산왕전과 마주친다. 사천왕상처럼 둘러싼 절벽의 선과 선들이 만나 부처의 얼굴을 보여준다.


 산왕전 옆으로 한사람이 겨우 들어 갈만한 공간이 도선굴이다. 허리를 굽혀 들어가야 할 만큼 낮지만, 안은 높고 하늘로 열려있어 어둡지 않고, 일자로 길어 바람이 자유로워 눅눅하지 않고 아늑하다. 중앙에 한사람이 겨우 앉을만한 곳이 도선의 공간이었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었던 도선이 한여름의 폭염과 한겨울의 삭풍을 이 작은 공간 안에서 견디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도선은 이곳에서 고단한 구도의 시간 끝에 신인을 만나 풍수지리를 익혔다.
 도선굴을 빠져나오면 오른쪽에 소원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예전 뗏목을 팔러 하동으로 내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슬픔에 삶을 마감한 남편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원바위에 간절히 기원후 옆 벽면의 바위가 부처의 웃는 얼굴형상으로 보이면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험함으로 이름나 있다.
 소원바위 아래에는 찾아온 이들의 기원이 적힌 쪽지들이 올망졸망 많이도 달렸다. 이들은 기원후 부처의 미소를 보았을까?
 
   
▲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소원바위.
# 모든 것이 부처의 얼굴
사성암은 본래 수도 도량으로 오산암 내지 오산절로 불리우며 평소 일반인들의 출입을 허하지 않았다.
 10여 년 전부터 개방돼 마애여래약사불을 모셨던 움막을 중창하고 부속 건물을 세웠다. 입소문으로 절집이 가진 풍경이 알려지면서 드라마 '토지'와 '추노'의 촬영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소원바위에서 난 길을 따라 20분 정도 산을 오르면 정상이다. 530m 높지 않은 산이 이만큼 발아래 거느리는 풍경이 훌륭한 곳도 드물다. 지리의 첩첩 능선은 더 두꺼워지고, 섬진의 물줄기는 더 길어져 완전한 태극문양의 형태를 보여준다. 정상 주위로 풍월대, 망풍대, 신선대 등 오산 12대가 자리 잡았다.
 물러났던 구름이 또 몸을 일으켜 온 산을 에워쌌다. 문득 시선이 갇히고 서늘함이 몸 깊숙이 찾아들었다. 습기를 머금은 초록의 새싹들이 절집 마당의 연등처럼 밝다. 그러고 보니 사성암에는 보이는 것이 다 부처의 얼굴이요, 등불이다.

 

   
▲ 절벽에 기대 선 사성암의 전각들이 봄비에 젖어 촉촉하다. 오른쪽 유리광전에서 원효가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는 약사불을 친견할 수 있다.

   
▲ 삼면을 절벽이 감싼 형국에 자리한 산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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