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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최고지도자다운 사과와 함께 해경해체, 진상조사의 민간 참여 등 각종 수습책과 재발방지책에 관한 구상을 밝혔다. 한 마디로 유가족의 요구를 들어주고 눈에 드러난 문제를 도려내는 국부적인 해결에 치중한 반면, 사회전반의 심각한 부정부패, 국정기조의 혼조 등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원인에는 언급이 없었다. 요컨대 전면적인 사회혁신, 국가개조 수준은 아닌 셈이다. 어쨌든 이 담화로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게 됐다. 이 시점에서 국민들이 분노를 거두지 않고 참사를 오래도록 잊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다.

첫째,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들만의 슬픔과 아픔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통제를 벗어난 현대사회의 위험이란 지역적 범위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지구적, 집단적이기 때문에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지 않으면 언제든 나의 일이 될 수 있다. 미수습 실종자가 아직도 10여 명이나 남아 있는 상황에서 슬픔과 고통으로 움푹 파인 유가족들의 마음을 치유하기엔 언어가 빈약하다. 침묵이 위안의 언어 보다 더 위안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치유의 전제는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져 실종자 수습완료, 진상규명, 강력한 재발방지책이 마련되는 것이다. 유가족은 국가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보호 받아야 한다. 이것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갈등이 더 깊어지고, 이미 깊숙이 진행된 공동체의 해체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이를 막을 힘은 개인의 아픔에서 모두의 아픔으로 승화할 때 생겨난다.

둘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을 치유하는데 힘이 돼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자식과 가족을 잃은 고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천재가 아니라 인재인데다 초동단계에서만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사실에 대해 분노하기 때문이다. 후유증이 상당히 오래 갈 것이다. 어쩌면 무덤까지 가지고 갈지도 모른다. 이들에게는 사건 수습 후가 더 위험하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고 나면 관객이 떠나고 난 뒤의 텅 빈 객석에서 홀로 처연한 고독을 느끼는 대중 스타의 심리상태와 비슷해질 수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전문가에 따르면, 희생자 가족의 경우 사고부정→분노→죄책감→사회불신 단계로 스트레스가 전이한다. 그들은 처음엔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며 분노하다가 “나 혼자만 살아서 미안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는 “세상이 싫다”는 단계로 들어간다고 한다. 자녀 잃은 부모의 경우 사소한 문제로 서로 다투다가 아이를 잃은 책임을 배우자에게 지우는 식의 언쟁이 반복되면 가정까지 해체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의 이웃이자 같은 국민이기에 그들을 방치할 순 없다. 그들을 차츰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정확하고 신속해야 할 사고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두 눈 부릅뜬 감시자가 돼줘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대국민 약속을 했다 하더라도 정치권과 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가 거국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사고원인 규명은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정당한 배상을 하기 위한 전제다. 이를 위해선 검찰 조사 외에 독립적인 특검과 국회국정조사도 이뤄져야 한다. 책임자 처벌은 이에 근거해야 하며, 인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선 특별법 제정도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해경과 해수부의 잘못된 초동대응에 대해선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고 있고, 공직자의 부정을 벌할 일명 ‘김영란법’도 통과되지 않고 있어 ‘유병언법’제정 여부를 두고 여야가 격돌할 공산이 크다. 이면에는 평소 해경, 해수부 등 관련 정부기관에 대한 감시 감독이 소홀해 결국 그들과 동업자가 되다시피 한 정치권이 책임을 면탈하려는 동기가 보인다. 따라서 시민들이 정부와 정치권에게 반성과 개혁을 촉구하거나, 혹은 대책 마련과 특별법안이 통과되도록 지속적으로 압박할 필요가 있다.

넷째, 참사의 배후원인이 금전만능의 전도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다 같이 사회적 가치관을 전환시켜야할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2014년 4월을 야만이 문명을 침몰시킨 달, 탐욕스런 아귀들이 무고한 사람을 먹어치운 달로 기억할 것이다. 4월 16일은 우리의 야만성이 세계에 알려진 국치일이나 다름없다. 단기간에 경제가 압축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몸과 얼이 조화되지 못한 기형적인 한국을 도덕강국으로 전환시킬 시발점으로 삼자. 대통령이 이 날을 ‘국민안전의 날’로 정하자는 건 뜻 깊은 제안이다. 도덕재무장을 위해선 국민 모두가 깨어나야 한다. 어떤 나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국가와 사회 환경 만들기에는 지도자 한 사람의 역할과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도자와 국민 간에 건강한 긴장이 존재하고, 서로의 역할이 상승효과를 일으켜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실천이 정치권의 공적인 노력 못지않게 긴요한 이유다.

절망과 암울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불빛을 본다. 세월호 침몰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직분에 최선을 다한 승무원, 친구와 제자들을 먼저 챙기려다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 구조에 사력을 다한 잠수부 등 10명의 의사자, 그리고 제자들의 죽음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목을 맨 단원고 교감선생의 살신성인이 빈사상태의 우리를 지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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