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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만 준다면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해결사가 판을 치고 있다. 어르신들에게 매달 용돈을 드리고 대학을 짓고 도로도 뚫겠다. 선거판은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사람들의 각축전 양상이다. 오래전 '공중부양'으로 쓴 웃음일 짓게 한 대통령 후보 허경영은 결혼하면 5,000만원을 주고 국민 모두에게 집을 제공한다는 공약으로도 모자라 공중부양의 능력까지 포장하고 다녔다. 불감풍하(不敢馮河). 걸어서는 황하를건널 수 없다는 말이다. 시경(詩經)의 소아편(小雅篇)에 나오는 말로 서주 말엽에 법도를 무시한 정치가 판을 치자 신하들이 한탄하며 적은 글이다.

인간의 이중성을 지적한 말은 수없이 많다. 그만큼 약점을 감추고 장점만 드러내려는 인간이 많다는 뜻이지만 개인을넘어 공공의 문제가 되면 이중성은 패악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장두노미(藏頭露尾)다.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한 모습을 이야기하는 이 말은 '국민검사'에서 '국민기만'으로 낙마한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에게 딱 들어맞는 사자성어다. 우리 사회는 자기검증이라는 장치가 실종됐다. 인사시스템이든 사회적 공론화 장치든 무수한 검증의 공적 기능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검증이다. 자기기인(自欺欺人).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행위를 비유하는 사자성어다.

한 때 70% 고지를 바라보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 이를 두고 말로 먹고사는 정치논객들은 레임덕의 시작이라고 말장난을 하지만 속단이다. 여론은 춤추는 것이고 쉽게 변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스스로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맹신이다. 박근혜 정부의 '오적'이 유통기한을 연장 할수록 대통령은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를 찬찬히 들여다 보자. 지방선거가 코앞이지만 정국의 주도권은 이미 야당에 넘어간 상태다. 세월호 참사를 절호의 기회로 삼은 종북 세력은 모든 가능한 수단을 이용해 총 공세를 펴고 있다. 인사를 할 때마다 문제가 터지고 지지율은 조사하기가 겁이 날 정도다. 너무나 오래 길들여진 나태와 안일의 공직사회는 어처구니없게도 니탓이라 손가락질 하는일엔 재빨랐다. 꿈을 펴지 못한 어린학생들이 참담한 시신으로 돌아오자 대통령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지만 주말마다 촛불은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세월호가 정치적 제물이 되어 지방선거를 뒤덮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청와대에 있다.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 모든 문제의 중심에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다. 인사의 난맥은 물론 지방선거 프레임까지 '박심'을 팔아 보신과 권력욕을 주무르는 무리가 청와대 안에 존재하는 인상이 짙다. 언젠가 박 대통령은 스스로 아침마다 모든 신문을 다 읽는다고 이야기했지만 과연 그런가, 의문이 들 정도다. 여론보다 무서운 것이 '국민정서'라는 판에 국민의 정서를 제대로 읽은 정치가 오늘의 현실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바로 그 답답함의 핵심은 대통령의 통치술이다. 스스로 청와대를 제대로 장악하고 있는지 돌아볼 시점이다. 레임덕 이야기가 튀어나올 정도로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스스로 전지전능하다는 과신은 버려야 한다. 

인간의 본성을 '악'으로 읽은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힘'의 관계로 해석했다. 통치자는 바로 힘의 균형축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중심에 위치해야 한다. 오늘의 코드로 읽으면 그 힘은 바로 '국민정서'다. 걸어서는 결코 황하를 건너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균형축이 보인다. 어디를 잡아야 무게 중심이 유지되는지를 알면 혼란과 무기력이 사라지고 '국민정서'에 끌려가는 정치가 아닌 '국민정서'를 주도하는 정치를 펼 수 있다. 문제는 원칙을 목숨처럼 생각하고 정도와 바른 길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는 소신이다. 청와대의 시스템이 오작동을 하고 있는 판이니 대통령의 소신은 청와대 밖으로 전달되기 어렵다. 역으로 청와대 밖의 '국민정서' 역시 대통령의 귀를 울리지 못한다. 윤창중 사태부터 안대희 낙마까지 청와대가 보여준 일련의 혼란은 대통령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코미디로 만들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을 둘러싼 가신에 있다. 걸어서도 황하를 건너갈 수 있다고 말하는 가신부터 잘라야 한다. 제대로 된 정보, 거친 언어를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들로 자신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뻘밭같은 거친 강물을 건너갈 배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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