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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음악적 탐구로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피아노의 거장 백건우(68)가 6년만에 울산을 찾는다. 지난 2005년 울산문화예술회관, 2008년 현대예술관에 이은 세번째 독주회 무대다. 오는 21일 현대예술관 대공연장 무대에 오르는 그는 한 작곡가, 한 시리즈의 곡에 집중해 연주하기로 유명하다. 지난 2007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2011년 리스트 전곡 연주로 국내 팬들의 귀를 즐겁게 한 그가 이번 울산 무대에서 선택한 음악가는 슈베르트. 낭만파 음악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지난 17일 현재 서울에서 무대 준비에 한창인 그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얘기들을 나눴다.


작곡가 생애·당대 문화상까지 공부하고 연주
이번 울산 무대는 순수한 정서 슈베르트 곡 엄선



#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 삼매경
최근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10시간 이상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는 그는 연습에 게으르지 않은 '거장다운 거장'이었다.
 인터뷰 역시 그가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밤 10시라는 늦은 시각에야 이뤄졌다. 그는 차분한 말투로 이번 무대와 지난 음악에 대한 얘기들을 전했다.
 우선 일정 경지에 올랐음에도 이렇게 오래 연습에 매진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무리 많이 한 프로그램이고, 연주한 곡이라도 항상 검토하고 새롭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다시 치다보면 이전에 발견못한 점을 보게 되거든요. 음악만 그런게 아닙니다. 예로 성경만 봐도 읽을 때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물론 연주하는 순간순간이 저에게는 즐겁고 새롭습니다"

# "작품 제대로 이해하고 몰두해야"
한 작곡가, 한 시리즈를 정해 작곡가의 생애와 당대 문화상 등을 공부하고 연주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났다.
 "전체적인 그림을 봐야 부분을 더 정확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음악 역시 한 곡만 들어서는 이해폭이 좁을 수 밖에 없어요. 훌륭한 연주를 하려면 우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몰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 연주를 들은 청중들도 제 생각에 공감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치밀한 연주는 연주자의 이해도를 높일 뿐 아니라 관객 감상에도 깊이와 폭을 더해주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선택한 작곡가는 슈베르트. 그가 생각하는 슈베르트 음악의 매력은 뭘까.


 "음악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란 어렵지만, 슈베르트의 음악은 친근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선율을 갖고 있어요. 청년 시절에 많은 곡을 남겼다보니 순수하고 깨끗한 정서가 느껴지면서 매우 아름답죠. 제가 들려드릴 10곡 역시 그런 특징이 담긴 곡들로 짠 레퍼토리입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Op.90' 1, 2, 3, 4번과 '음악적 순간 Op.94'중 2, 4, 6번, '피아노 소곡 D.946'중 1, 2, 3번이 그것. 한 레퍼토리를 하나의 작품으로 여긴다는 그는 앵콜연주도 안할 정도다. 울산무대도 마찬가지다. 인터미션도 없고, 앵콜 연주도 없다. 완벽한 작품을 깨기 싫어서다.
 포르테의 강한 터치로 시작하는 이번 레퍼토리는 전곡이 다 아름답지만 특히 '즉흥곡 Op.90'은 슈베르트 특유의 매력적인 선율과 정열을 느낄 수 있는 명곡이다. 그중 3번은 더없이 자연스럽고 낭만적인 선율을 자랑한다.

 

▲ 백건우가 지난 2008년 현대예술관 공연장 무대에 선 모습. 백건우는 오는 21일 오후 7시 현대예술관 대공연장에서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무대로 울산 관객을 만난다.

# 인생의 폭넓은 경험 연주에 반영
사실 요즘엔 피아노를 기계적으로 잘 치는 연주자들은 많다. 그러나 객석에 감동까지 전하는 연주자를 만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이 연륜이 쌓이듯, 연주자도 인생의 폭넓은 경험이 연주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연주는 똑같은 터치도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한다.

 


 수십년 피아노를 치며 음악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다고 했다.
 "젊은 시절엔 정복한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대했어요.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요. 몇 년 사이 어떤 작품을 마스터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부담을 갖고 노력해 왔지요. 지금은 그런 시간이 오래되다보니 음악은 내 가족같고 친구같아요. 내 자신을 끝까지 보여줄 수 있는 존재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좀 더 많은 것들을 음악에 담을 여유도 생겼어요. 그런 연주를 들려드릴테니 기대해 주세요"
# 21일 현대예술관서 세번째 독주회
배우인 아내 윤정희씨 만큼 최근엔 딸 백진희씨도 유망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해졌다. 이와 관련, 끝으로 지역 음악꿈나무들에게도 조언 한마디를 부탁했다.
 "예술이 다 그렇듯 음악은 본인이 원해서, 본래 갖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 깨달아 내보여야 돼요. 누군가 도와주고 끌어줄 순 있지만 그 이상 나가기 위해선 스스로의 결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 딸도 마찬가지였어요. 음악을 강요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 자기가 먼저 그러더군요. 음악 없인 못 살겠다고"


 피아노의 거장은 이것이 비단 음악 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삶의 길을 잘 찾아간다는 것은 물론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들이 대신할 순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자신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진짜 자기에게 맞는게 음악이라면 그때부턴 다른 건 없다는 마음으로 매진하면 됩니다. 꿈을 크게 꾸고요. 저도 그랬습니다. 우선 진짜 자기에게 맞는 인생의 모습이 뭘지 그려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선택한 길이기에 그는 이번 연주 뒤에 중국, 싱가폴 등 동남아 순회연주를 앞두고 있는 등 세계적인 거장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슈베르트 연주는 오는 21일 오후 7시 현대예술관 대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다. 관람료 8만 5,000원~3만원. 초등생이상 관람가. 문의 052-202-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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