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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 서양화가 이명호(53)씨가 러시아 사할린에서 개인 초대전을 갖는다. 현지 문화예술기관과 한인미술인들의 초청으로 마련된 이번 개인전은 오는 17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사할린주(州)의 주도(州都) 유즈노 사할린스크시(市) 사할린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다. '판도라의 창'이라는 부제의 이번 전시에서 이 씨는 지난 2011년부터 최근까지 작업해 온 작품 33점을 출품한다.

오는 17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사할린주 주도 유즈노 사할린스크시 '사할린 아트 뮤지엄'에서 개인초대전을 여는 이명호 화가. 그는 "이번 초청전이 그 곳 문화예술인들과 지속적인 교류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사할린에 살고있는 종형제들 소개 계기로 전시 개최
초청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건 지난 해 하반기부터였다. 사할린에 살고있는 이 작가의 사촌형제들이 사할린 미술인 모임에 그의 작품을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결국 1년에 한 차례씩 마련하는 사할린 아트 뮤지엄의 해외작가 초청전 작가로 최종 선정된 것이다. 지난 1월 뮤지엄 측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 작가는 이달 초 50호~100호 내외 33점의 작품을 이미 사할린으로 보냈다. 개막에 앞서 전시장 작품 디스플레이 과정부터 참여해 달라는 뮤지엄 측의 의뢰에 따라 이 작가는 오는 10일 러시아로 출국한다.
 
# 불꽃처럼 톡톡 튀는 색감에 팝아트적 요소 가미
지난 5월 이 씨는 '제33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비구상 부문의 최우수상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번 초청전에는 화려한 색감으로 팝아트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작품들이 주로 소개된다. '달콤한 나태에 빠진 도시' '테이블 주위의 단상' 등 대부분의 전시작품은 색의 보석함을 열어젖힌 것 같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세상을 펼쳐보인다. 불꽃 튀는 색의 파편들이 폭발하듯 이미지를 선도하며 압도한다. 다채로운 색(色)의 향연을 펼쳐보인 것은 대상의 실체를 환원된 색과 형태로 채우고자 한 작가의 의도다.

 이 씨는 "이미지에 대한 감동과 역동성을 말하듯 풀어내고자 쓴 색의 조각들은, 삶의 한 단편들이 모여 인생을 이루듯 전체적 속성에 기여하며 새로운 의미를 이끌어 내는데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작품 속 이미지들은 모형자동차, 사탕이 담긴 깡통, 의자, 동물처럼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친근한  대상들이다. 하지만 작가의 독특한 시각은 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기념비적 대상물은 이 사물들을 화면에 배치함으로써 그 속에 잠재된 인간의 의식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위 이미지들과 더불어 그의 캔버스에는 앤디 워홀이나 마릴린 먼로가 그림에 등장하는 팝아트적인 요소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은 사회주의 체제의 주민들에게 낯설면서도 신선한 작업을 보여주고싶다는 뮤지엄 측의 기획 취지에 부합되는 그림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이 작가는 "사할린은 러시아 사회주의 체제의 이질적인 느낌과 한인교포사회의 아픈 역사가 공존하는, 복합미묘한 곳이다. 이번 초청전이 그 곳 문화예술인들과 지속적인 교류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명호 作 '화엄경(Acrylic on canvas 130x162 2012)'
17일부터 내달 4일까지 최근작 33점 선봬
자동차·깡통·의자·동물 등 일상 속 대상에
다채로운 색채 입혀 강한 생명력 불어넣어


# 서구적 겉모습과 달리 불교철학으로 채워진 내면
겉모습은 이렇듯 서구적이지만, 내용은 삼라만상이나 화엄경 등 불교철학을 아우르고 있다. 그의 작품이 철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화엄경'이란 작품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무수히 많은 날카로운 형상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언제든 찌를 태세로. 그러나 그 속의 나 역시 그에 찔리지 않기 위해 똑같이 외부를 향해 칼날을 겨누고 있다.  예술이란, 혹은 우리네 삶이란 언제든 외부에서 뻗쳐오는 나쁜 유혹에 물들지 않고 내 세계를 지켜 나가려면 이처럼 치열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작가의 삶의 철학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특히 나침반의 방위표 같기도 하고, 삼각뿔의 윗부분 같기도 한 이 날카로운 형상들은 이 작품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라 '아프로디테의 눈물'과 같은 다양한 작품에서도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강력한 장치로 사용된다.
 
# 사할린과 각별한 화가의 가족사도 현지서 주목
사할린은 이씨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씨의 부모가 해방전에 사할린 탄광에서 일을 한 것이다. 이씨의 큰누나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씨의 부모들은 운 좋게도 해방 전에 귀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이 있던 큰아버지 가족들은 결국 귀국하지 못했다. 그래서 종형제들이 지금도 사할린에서 살고 있다. 사할린의 주도(州都)이자 미술관이 있는 유즈노사할린스크에는 약 4만 3,000여 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

해방 전 사할린 탄광에서 일을 한 화가의 아버지(오른쪽 두번째).
 사할린 현지 언론들도 이씨의 이런 가족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씨가 이번 전시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술관 측에 자연스럽게 이런 사실을 얘기했던 것이 현지에서도 화제가 된 것이다. 이씨는 현지 방송국 요청으로 가족사 관련 자료를 이미 현지로 보낸 상태다. 이씨는 "부모님의 한이 서린 땅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 교류를 위한 개인전을 열게 돼 감개가 무량하다"며 "양국의 미래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명호 작가는 울산 울주군 법서읍 구영리에서 태어나 범서중학교와 학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파리대학(프랑스 에꼴 데 오뜨 에띠드 폴리틱), 동국대, 경상대 등에서 정치학·교육학 등도 함께 공부한 특이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유아교육학과 교육학 학위를 취득한 이씨는 수원여자대학 아동미술과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저서로 '창의적 아동미술교육' '꿈꾸는 자연예술가' 등이 있다. 현재는 구영리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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